#세계로 떠난 93년생 부부
36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저절로 영어가 늘까?
호주 워킹홀리데이 가면 영어도 많이 늘겠네?
호주 워킹홀리데이 중이라고 하면 으레 듣는 질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뻔하지만 당연하다. 열심히 하면 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에 그저 왔다고 해서 저절로 영어 스피킹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은 그저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자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배경이 될 뿐, 모든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 또한 마찬가지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주된 목표는 저마다 다 다른데, 누군가는 영어, 만약 비영어권이라면 그 나라 언어 실력의 향상, 누군가는 여행 혹은 해외 생활 경험, 또 누군가는 돈 혹은 외국인 친구 만들기 등 여러 가지이다. 어느 하나도 그저 해외에 갔다고 해서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없다. 해외에 오래 있을 요량이라면 시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도 있겠지만 워킹홀리데이는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이니 입국 전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구체적인 계획 역시 목표에 따라 달라지겠다. 만약, 워킹홀리데이의 1순위 목표를 ‘영어’로 잡았다 치자. 그럼 우선 본인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좋다. 레벨테스트는 한국이 아닌 호주 소재의 어학원에서 무료로 받기를 추천한다. 입국 후에는 물론 대면으로 받을 수 있고, 입국하기 전에도 미리 온라인으로 쉽게 받을 수 있다. 보통, Beginner(초급), Intermediate Low(중급 하), Intermediate(중급), Intermediate High(중급 상) 그리고 Advanced(고급)으로 나뉘는데, 실력을 이론적으로나마 평가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수준에 맞는 영어 책을 가져갈 수도 있고, 구직 이력서에도 저 단계를 기재함으로써 본인의 영어 수준을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력을 파악했다면, 큰 목표를 잡아보자. 예로, ‘내가 지금 Beginner이니 최소 Intermediate High까지는 올리자’, ‘Intermediate Low가 나왔으니 낮은 점수로라도 Advanced가 되어보자’ 혹은 ‘이론적으로는 Advanced이지만, 현지인과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으니 최대한 많은 프리토킹을 시도해 스피킹에 완전히 익숙해지자’라는 등의 큰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이러한 대 목표를 만들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How to’ 세밀한 계획을 만들면 된다. 일자리, 개인 공부법, 현지 어학원, 언어 교환 등등. 본인 성향과 맞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귀가 따갑게 강조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그러지 않아서 도중 몇 번이나 길을 잃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여행’과 ‘영어’가 우선이었다. 이는 비단 호주 워킹홀리데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는 해외 살이 전체에 대한 대 목표였다. 두 가지 목표를 만족할 만큼 달성하려면 계획과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린 그것 없이 무작정 가서 일상을 시작했다. 한 달에 몇 번, 얼마나 여행을 다니고, 영어는 어떻게 더 늘릴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으니 별다른 고민 없이 일을 구했다. 남편이 잡은 일이 문제가 되었다. 면접 때 그런 말은 없었는데, 초과 근무가 상당히 많았고, 가끔은 주말 출근도 했다. 그만큼 수입은 높아 돈은 많이 모았지만, 도저히 여행 갈 시간과 따로 영어 공부를 할 체력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출퇴근 후 보상 같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쉬기에 바빴다. 평범한 한국의 맞벌이 부부 같은 일상도 아늑하고 좋았으나, 본래의 목표였던 여행과 영어는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
나 또한 종종 마음이 복잡했다. ‘돈’은 애초에 목표가 아니었지만, 명확한 계획과 기준이 없으니 흔들리기 일쑤였다. 세계에서 최저 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인 호주답게, 하나의 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오전/오후와 평일/주말에 나눠 투잡, 혹은 쓰리잡까지도 한다. 나는 딱 이 일만 하는 것이 개인 시간과 체력 확보에 좋은데도, 나만의 명확한 기준과 계획이 없으니 높은 시급에, 주변 환경에 흔들렸다. 그래서 결국 추가 일자리를 알아보고 면접을 다니느라 시간 낭비도 꽤 했었다. 결국에는 호주를 일찍 떠나게 되어 소용이 없었지만.
호주에 오기 전까지 있던 아일랜드에서 꽤 바쁘고 험난한 나날들을 보냈기에 멜버른에서의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이 별로라 느껴지진 않았지만, 확실히 무계획으로 오니 만족할 만한 성취는 쉽지 않았다. 그러니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우리 부부를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바란다. 단순히 해외 경험, 해외 살이가 목표라면 굳이 빡빡하게 계획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것들은 강한 의지와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에는 ‘구체적인 계획과 명확한 기준’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1년 동안 최대한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면 외곽의 농장, 공장에 가거나 시간을 최대한 쪼개 두세 개의 시티 잡을 잡는다거나, 영어 스피킹 실력을 빠르게 늘리고 싶다면 아르바이트도 최대한 영어권 현지인을 많이 상대하는 곳으로 잡고, 남은 시간에는 어학원이나 언어 교환 등으로 공부할 계획을 만들 수 있겠다. 한국인이 없는 셰어하우스에 입주해 하루 종일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좋다. 1년은 짧아 보이지만, 여행이 목표라면 일단 덜 힘들고 덜 일하는 일자리를 잡아 여행 다닐 시간과 체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역을 나눠 미리 여행 계획을 월별로 만들어 숙소나 항공권을 미리 예약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
오기 전에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영어, 돈, 여행, 외국인 친구 등 몇 마리 토끼든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특히 해외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겐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부터가 머리 터지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 될 수 있다. 하나하나 해결해 가더라도 낯설고 지치는 일상에 적응하느라 처음 비장하게 잡고 왔던 목표들은 온데간데없어질 수도 있다. 나와 남편이 그랬다. 딱히 정해놓은 계획도 없이 하루를 여유 없이 버티다 보니 여행은 생각나지도 않더라. 그러니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본인만의 명확한 기준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알차게 기억될 우리의 1년 워킹홀리데이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