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선거를 사흘 앞둔 10일 찾은 타이베이는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투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투표 의향을 묻는 질문에 “당연히 권리를 행사하겠다”라고 대답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대만 국민들은 13일 향후 4년간 국가를 이끌 차기 지도자를 뽑는다. 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만은 직선제 실시 이래 처음으로 같은 정권에 3기(12년) 연속 집권을 허락하게 된다. 제1야당인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가 당선되면 대만 정권 교체는 물론 대만 해협을 둘러싼 양안(중국과 대만)과 한국 등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정세가 격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2일 발표된 마지막 각종 여론조사에서 라이 후보가 허 후보를 오차범위(±3%포인트 내외) 내에서 앞서는 초접전 구도가 형성돼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는 지지율 3위로 추격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무당파 중도층과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이 선거의 막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선거 직전 주요 후보의 전국 유세가 한창인 가운데 라이 후보는 “민주주의 진영에 함께 서서 (중국에 대한) 억제력 보여줘야 한다”며 반중 표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날 오전 대만 중부 장화시 시내에서 유세를 시작한 라이 후보가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소리치자 지지자들은 ‘당선’을 뜻하는 ‘둥쏸(凍蒜·얼린마늘)’을 외치며 화답했다. 라이 후보는 전날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중국과 교류와 협력의 문을 열려 있다”면서도 “진정한 평화는 침략자의 선의가 아닌 실력에 의해 실현된다”며 중국의 권위주의에 맞설 것을 강조했다.
타이베이에서도 라이 후보의 지지자들은 중국에 맞서 대만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달 들어 중국이 대만 주변에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점이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발심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군용기와 군함 등을 동원해 대만 인근에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전날 중국이 발사한 위성이 대만 상공을 지나면서 발령된 공습 경보에 시민들이 놀라는 일도 발생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까지 인민해방군 소속 군용기 8대와 군함 5척이 또다시 대만 주변 공역과 해역에서 포착됐다. 이들 가운데 무인기 1대는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방공식별구역(ADIZ) 서남 공역에 깊숙이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통 선거와 관련해 양안 관계보다는 경제 문제에 초점을 둔 유권자도 많았다. 현 차이잉원 정부의 8년 집권 아래 인플레이션 등을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이 커진 데 따른 불신이 고조되면서다. 국민당을 지지한다는 50대 남성은 “여당 집권 8년간 민생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다”며 “국민당 후보를 당선시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경제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예산회계통계국(DGBAS)에 따르면 지난해 임대료 지수 상승률은 2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만의 전체 생계비 지수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 연임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청년·노동자·농어민 등 관련 지원 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점 역시 민진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
국민당 허우유이 총통 후보는 야당 연합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9일 대만 중서부 자이시에서 단결승리대회를 열고 제2야당 민중당의 커윈저 후보를 향해 “함께 민진당을 퇴출시키자”고 요청했다.
경기 둔화 속에 중국의 추가 경제 제재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중국은 앞서 대만산 화학 제품에 적용하던 관세 인하 조치를 중단했다. 중국은 이어 “현재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규정된 특혜 관세를 여전히 받고 있는 농·수산물, 기계 제품, 자동차 부품, 섬유류 등을 포함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 후보가 낙마할 경우 중국이 경제 보복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라이 후보와 허 후보가 박빙을 이루면서 마음을 결정하지 않은 20%의 부동층이 최종 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정치 성향을 숨기는 ‘샤이 유권자’와 무당파 유권자들 역시 포함된다. 전쟁 문제를 비롯한 양안 이슈에 지쳐 중도 성향의 커 후보를 지지하는 표심이 막판에 어디로 이탈할 지 관심이 쏠린다. 타이베이 시민인 쑹펑황(29)는 “아직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더 좋은 경제 정책을 내놓은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