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투자계약증권을 선보인 열매컴퍼니는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미술품 가격 산정의 객관성, 투자자 보호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금융당국의 규제 아래 조각투자가 제도권 안에 들어오면서 시장의 안정적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열매컴퍼니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1호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목표 금액인 12억3200만원을 청약 개시 1시간만에 달성했고, 지난해 12월 최종 청약율은 650%에 달했다.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를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수장고에서 만나 사업 현황과 향후 계획을 물어봤다. 김 대표는 “미술품뿐 아니라 다양한 자산을 다루는 투자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미술품은 국경이 없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림이 좋아서 시작한 사업
1981년생인 김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공인회계사(KICPA) 작격을 취득한 뒤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으로 활동하면서, 미술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는 ‘이중생활’을 했다. 단순히 취미 수준이 아니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 김 대표는 “드디어 석사를 졸업하니까 프로필을 바꿔야 한다”며 자랑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한다는 것이다.
미술품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미술품을 사고파는 일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간송미술관에서 운영팀장·감사로 일하기도 했다. 회계사,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을 할 때와 비교하면 연봉이 5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미대 진학을 꿈꿀 정도로 그림을 워낙 좋아했다”며 “워낙 좋아하다보니 향유를 넘어 투자로도 접근하고 싶었는데, 글만으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 했다. 이런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미술판’으로 뛰어들었다. 미술관에서 일하며 그림의 오묘한 아름다움에 더욱 심취할 수 있었고 미술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험을 쌓으며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직접 투자도 해봤다. 하지만 월급쟁이가 유명 작가의 작품을 원하는대로 살 수는 없다는 현실을 자각했다. 그는 “월급쟁이가 혼자 투자할 수 없다면, 여럿이? 그래서 조각투자 방식을 생각한 것”이라며 “또한 이번에 그 방식이 제도권화됐기에 고무적”이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15일 열매컴퍼니가 금감원에 제출한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투자계약증권은 공동사업에 금전을 투자하고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 결과에 따른 손익을 받는 계약상 권리가 있다.
특히 이는 지난해 7월 금융감독당국의 조각투자업체 사업재편 이후 증권신고서효력이 발생하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열매컴퍼니는 ‘퍼스트무버’라는 상징성을 획득해 한걸음 앞서나가게 됐다.
미술품 투자, 직접 하면 되는 것 아냐?
미술품 투자를 개인이 직접 하면 되는 것 아니냔 의문도 따라붙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그럴 수도 있다”면서도 “저희 플랫폼에서 미술품 거래를 경험한 뒤 실패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미술품 거래는 전문가 영역의 시장이기에 진입 장벽이 꽤 높다는 이유에서다. 흔히 접하는 주식시장과 비슷한 측면도 있다. 제대로 물리기 전에는 그 영역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직접투자는 생각보다 손실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다. 그는 “주식과 똑같다”며 “아무리 좋은 미술 작품이라도 가격상승 여력이 적거나 고점에 샀거나 거래량이 적다면 실패하는 것”이라고 했다.
열매컴퍼니가 운영하는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는 이런 장벽과 우려를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상당 부분 허물어준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조각투자에서 거래할 미술품을 선정할 때 의사결정 기준의 90%는 데이터에 기반한다”며 “자체 가격산정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 관련 국내 특허도 출원해 등록됐다”고 했다.
이어 “아직까진 국내에서 이런 시스템을 만든 곳은 저희밖에 없고, 국내 시장 분석에만 27만건가량의 데이터를 활용한다”며 “국내외 유명 옥션사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 가격뿐 아니라 해외 데이터도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장 분석과 예측을 하는 전문 인력의 평가도 가미된다.
김 대표는 “그동안 176점가량의 작품을 모아 126점을 파는 등 매각률이 70%에 이르는 점도 차별점으로 제시할 수 있다”며 “이처럼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어 특별히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 투자자들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회사 운영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미술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는데, 자금부족으로 대규모 매입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의 영역이었다. 심각하게는 금융당국에 의해 이같은 조각투자가 제도권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한동안 사업 자체를 사실상 중단한 경험도 있다.
김 대표는 “회계법인과 사모펀드에서 일하며 자본시장법을 스터디한 덕분에 기존 플랫폼을 만들 때도 제도권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그래서 문제될 만한 소지가 있거나 서비스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는 영역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외부 투자자 인정도 받고 글로벌로
오히려 사업 초기에 전통적 미술품 콜렉터들의 부정적 시선이 어려운 측면으로 작용했다. 시장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성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술품을 빠르게 유동화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인정되면서 외부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열매컴퍼니는 소프트뱅크벤처스, KDB산업은행, KDB산은캐피탈, 베이스인베스트먼트, 이앤벤처파트너스, ES인베스터, 한양증권, 위메이드트리, 한화투자증권-유온인베스트먼트, DS자산운용, 롯데렌탈, KT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262억원을 투자받았다.
특히 SI(전략적 투자자)에 해당하는 위메이드트리, 롯데렌탈과는 사업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 사업자인 위메이드와의 협력은 조각투자가 토큰증권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에서 사업 시너지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며 “롯데렌탈과도 렌탈 관련 사업 협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제도권에 진입한 만큼 최근에는 투자자 보호 요소를 강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손실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상품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가치가 높거나 가격 상승 가능성이 높은 자산 중심으로 발행하고 파트너사가 가격 하방을 맊아주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그는 “미술품 가격은 희소성이란 속성이 있기에 역사적으로 상승해왔다”며 “또한 고액 자산가 수도 늘어나고 있어 이들의 구매 수요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무엇보다 미술품의 경우 거래 수수료가 높은 시장이라는 점에서 열매컴퍼니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려는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대표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기에 협상력 강화를 통한 수수료 인하가 지속될 수 있고, 이는 미술품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미술품 가격이 무조건 오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자산 대비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고, 유동성이 부족한 미술품을 금융상품처럼 활용하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에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열매컴퍼니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핵심 시장은 미국이다. 김 대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글로벌 작가의 작품은 미국인도 좋아한다”며 “미국 시장을 우선 공략할 계획이고, 한국의 작가를 글로벌 시장에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도 성장하고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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