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의 크피르가 비행 중이다. 위장 패턴이 다른 걸로 봐, 위의 회색 기체는 공중전 전용인 듯 하고, 아래 쪽 얼룩무늬는 대지 공격에 쓰이는 기체같다. 하나는 대지 공격, 하나는 위에서 상공 엄호. 그런데 둘 다 날개 끝부분에 이스라엘 국산 공대공 미사일 샤프릴을 달고 있다. 출처: laodong.com.vn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가 있었다. 예전 우리나라 책방 잡지 코너에 비치되는 월간지로, 미국 걸 라이센스, 한글로 펴내는 거니 원래는 미국 잡지였다.
당시 미국엔 매달 1천 만 부 이상 나가는 잡지가 3종류 있었는데, 하나가 TV 가이드, 하나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세 번째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였다. 그래서 그런가? 영어로 된 잡지도 발품만 팔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잡지, 목사 자녀들이 모여 창간해 그런가? 당시 소련의 일인자로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을 완전 술수 부리는 거라며 조심해야 한다는 등, 소련에 대한 심한 회의(懷疑)와 함께, 미국적 가치관과 보수를 지향하기도 했는데(알다시피 미국적 보수는 기본적으로 건강하다. 신 보수라는 네오 콘 같은 게 문제지), 허나 대부분의 기사는 교양이나 실생활에 도움 되는 등 매우 유익했다.
물론 밀리터리 기사도 있었다. F-14 톰캣 개발 이야기가 있어, 우리가 그냥 보는 톰캣의 동체 라인이, 수 백 수천 개의 형태 테스트 끝에 결정된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당시의 밀리터리 쪽 베스트셀러를 다이제스트해,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원본을 몇 페이지 내외로 추려읽을 수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Bridge too far, ‘머나 먼 다리’라는 책이다. 유명한 르포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에 의해 쓰인(이 양반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롱게스트 데이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사상 최대의 연합군 공수 작전을 다룬 책.
유럽에서의 제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영국과 미국, 폴란드 낙하산 부대가 단숨에 독일 영내로 들어가는 진격로를 트기 위해, 낙하산 부대를 대량으로 투하한다. 목표는 독일이 장악하고 있는 다리들. 마켓 가든 작전이다.
*적지로 강하하는 연합군 낙하산 대원들. 출처: in1.ccio.co
물론 책 제목 대로, 목표로 한 다리는 너무도 멀었다. 특히 붉은 악마(영국군 낙하산 부대)에겐 대 재앙이었다. 그들이 낙하한 지역에, 운 나쁘게도 나치 독일의 강력한 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것도 친위대 기갑부대들. 잘못 걸려도 이처럼 잘못 걸린 경우는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장렬하게 싸운다. 책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그 붉은 악마들의 싸움이다.
*붉은 악마들의 고단한 전진. 앞의 두 병사는 크런치 기관단총 ‘스텐 건’이고, 뒤 쪽은 ‘웨블리’ 권총인듯. 그러나 여분의 탄창이 언제까지 받쳐줄까? 출처: wikipedia.org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뒤에는 강, 앞에는 독일군. 고립무원의 영국 병사들은 강변의 한 건물로 밀리고 밀려, 그 속에서 힘겨운 방어를 하는데, 낙하산 부대라는 게 중화기가 원래 드물지 않나? 그래서 볼트 액션식 엔필드 소총과, 쏠 때마다 터러럭! 터러럭! 거린다 해서 클런치라 불리던(초코렛 이름과 똑 같다, 씹을 때 소리가 좀 나지 않나?) 기관단총 스텐 건만으로 버티는데…
물론 원시적 단계의 대전차 로켓포 RIAT라는 것도 소수 있기는 했으나, 이 건물 안 붉은 악마는 그 것도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공격하는 독일군은 병력도 많은 데다 대포와 전차를 가진 막강 화력.
*마켓가든 작전의 디오라마, 붉은 악마들은 이런 돌격포까지 상대해야 했다. 출처: sierratoysoldier.com
그들은 항복을 거부한 붉은 악마와 건물에다, 갖은 포화를 다 퍼붓는다. 그것도 1층에서 2층, 3층, 다시 지하 쪽으로 옮겨가며(이 장면은 나중 영화화 됐을 때 나온 거 같다). 그게 얼마나 참혹했는지, 당시 독일 군 장교가 이 상황을 보며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저자가 전후(戰後) 독일까지 가서 인터뷰한 내용이리라.
“나는 그 건물 안의 영국인들이 정말 불쌍했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고.”
나중 이 ‘머나먼 다리’는 영국을 비롯 할리우드 빅스타를 출현시켜, 스케일 큰 전쟁 영화로 만들어진다. 또 케이블 TV의 다큐멘터리 제2차 대전 시리즈에도 자주 나오고…
*당시로는 3시간 런닝타임 대작인 영화 포스터, 1977년에 개봉했는데, 배우들이 모두 당대 스타들이다. 출처: blogspot.com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는 흥미로운 게 또 있었다. 바로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크피르’이야기다. 이스라엘이 프랑스 제 전투기 미라주를 훔쳐 낼 때의 숨은 이야기. 물론 대부분의 네티즌들 익히 아는 이야기다.
프랑스에다 주문한 미라주5, 50대를 중동전이 터진 뒤, 프랑스가 넘겨주지 않는 사건. 돈도 다 내고, 공장에서 50대의 미라주5가 다 완성되어, 인도 절차만 남아 있는 데도.. 긴 드골 대통령의 야멸찬 거절. 그래서 이스라엘은 모사드를 동원, 그 전투기의 설계도를 도둑질, 그대로 미라주5를 빼닮은 기체를 생산해 낸다.
그 녀석이 지금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삼각 날개 크피르다. 그런데 눈썰미가 있거나, 항공에 관심이 많은 네티즌이라면, 고개를 약간 갸웃둥 할 수도 있다.
“아니, 원래 미라주 3(쓰리)잖아? 미라주 3 전투기. 그런데 미라주 5는 또 뭐야? 서로 다른 거야?”
크피르를 알려면 이 미라주5를 알아야 한다. 미라주3 전투기하고는 많이 다를 수 있는 사촌 쯤 되는 기체.
미라주5는 뭔가?
*이게 미라주5다. 미라주3와는 다른 신형기. 출처: wikimedia.org
미라주3나 미라주5나 닷쏘사,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핏줄 전투기다. 그래서 모양도 비슷하다. 그러나 결코 닮지 않았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기체다. 임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라주 3는 그냥 전투기다. 공중전을 벌여 적기를 격추시키는 하늘의 사냥꾼. 그래서 미라주를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전천후 요격 전투기’
그러니까 한 마디로 밤이나 낮이나, 아니면 악천후에서도 적 전투기를 잡는 전투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라주5는 전투기가 아니다. 공격기다. 폭탄과 미사일을 달고 다니며, 지상의 적을 공격하는 지상 공격 전용기. 다시 말해, 순전한 공격기다. 물론 공중전을 못 하는 건 아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공이 아니다. 피치 못할 때에 한다. 그 외에는 피하는 편이 좋다.
3차 중동전이 일어나기 전이다. 항상 전쟁을 상정하고 준비해야 하나, 아직까진 평화로운 시절. 당시 이스라엘 공군의 주력은 미라주3(쓰리) 70대였다. 그리고 이 기체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이렇게 빠르고 민첩한 걸 가진 적이 없었으니까. 이집트의 신예기 미그21하고의 도그 파이팅을 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미라주3에는 고성능의 레이더까지 있었다. 흐린 날이나 야간에도 사람의 눈을 대신해 운영할 수 있는 레이더. 윗글에서 잠깐 언급했듯 유럽 형 전천후 요격 전투기로. 비가 와도 구름이 낮게 끼어도 지장 없는 타입. 유럽대륙, 특히 프랑스 산 전투기였던 까닭이다. 당연히 자기 나라 환경을 고려한 전투기.
프랑스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은 프랑스 인에게 모든 걸 다 줬다. 커다란 사막이 없다 뿐이지, 눈 덮힌 알프스에서부터 남쪽 지중해까지 없는게 없다. 그리고 평야가 드넓어, 식량까지 자급자족 된다. 정말 좋은 나라다. 그런데 딱 하나, 주지 않은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날씨’.
우리가 제2차 대전 사를 볼 때, 발지 전투나 ‘마켓 가든’ 작전 등에서 날씨 때문에 애먹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발지에서 결정적으로 승세를 잡은 것도 날씨가 맑아지면서 부터다. 대대적 공중지원이 시작됐으니까. 이렇듯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 대륙은, 우중충한 날이 많다.(거기 살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나…)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는가? 중동이다. 또 그들 공군이 싸우는 곳은 사막의 하늘. 땡볕 내려쬐는 청천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군은 미라주 3을 운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물론 3차 중동전쟁 전이다). 프랑스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
“미라주3한테서 레이더를 빼면 어떨까?”
레이더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데가 중동 아닌가? 더구나 레이더를 빼면, 그것만 빠지는 아니라, 레이더와 연결되는 전자 부품들이 빠진다. 당시 미라주3 레이더는 ‘시라노’라는 카세그레인 식 안테나로, 연결 장비까지 하자면 꽤 크고 무거운 모델이었다. 그런데 별 쓸모가 없는 이걸 빼내면,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 3득, 4득도 될 판이다.
무게가 가벼워지며, 빈 공간도 생겨난다. 거기다 연료를 대신 채울 수 있고, 무게가 빠지니 그만큼 폭탄도 더 매단다. 그러면서 또 기체 가격이 싸지는데, 이득은 이 것 뿐이 아니었다. 전투기에서 고장이 제일 잘 날 뿐 아니라, 그만큼 정비가 까다로운 데가 어디인가?
레이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정비병들 수고가 덜어지는 것은 물론, 기체의 가동률도 덩달아 좋아진다.
“아니, 그럼 날씨는 그렇다 치고, 적기와의 공중전은?”
이런 질문에는 이런 응답이 나온다.
“주 전공은 공중전이 아니다. 대(對)지상 공격이다.”
“물론 피치 못 할 사정이라면 공중전도 못 할 게 뭐 있어?”
“적당히 하다 도망쳐도 되는 거고.”
*한 참 세월이 흐른 뒤, 프랑스의 엘레르 사가 출시한 1/72 벨기에 공군의 미라주 5 공격기, 벨기에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5형을 수입했는데, 벨기에의 캐피털 레터 ‘B’가 붙어 미라주 5B형이라 한다. 출처: scalemates.com
정말 괜찮은 기체 아닌가? 돈도 적게 들고, 무장량 괜찮고, 가동률도 좋아지고.
이스라엘은 즉시 프랑스 닷쏘 사와 상의, 일거에 50대를 주문한다. 이제까지 없던 ‘사막 형 초음속 공격기’ 미라주5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레이더가 빠지니 뭉툭한 기수가 사라지고, 뾰족한 기수가 대신한다. 그 만큼 날씬해지는게 보기에도 괜찮았다.
*프랑스 공군 마크의 미라주 5, 레이더가 빠져 그런가? 앞부분이 쐐기 모양이라 상당히 날씬하다. 출처: theworldwars.net
바빠지는 닷쏘 사 조립라인. 전국에서 들어온 부품들이 이 조립라인에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미라주3와 비슷했으나, 여러가지가 생략된 신 공격기 미라주5였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20대가 완성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이스라엘에다 50대 모두 다 넘겨주게 된다.
그런데 이때 전쟁이 터진다. 6일 전쟁이라고도 하고, 제3차 중동전이라 하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다. 초반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는데 들어간 시간은 6일.
그래서 6일 전쟁으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 6일 동안 몇 대의 자기네 미라주가 격추됐고, 고장이 나거나, 손상을 입고 돌아온건 어떻게 좀 고쳐 쓸 수가 없나, 그 숫자들을 헤아려 보는 중인데, 프랑스로 부터 비보가 들려온다.
“완성된 미라주 5 기체, 일체 못 넘겨준다.”
“받은 돈은 어찌어찌해서 줄 수도 있으나, 기체 50대는 안 돼!”
드골 대통령의 인정머리 없는 결정이었다. 얼마 뒤 프랑스 정부는 완성된 50대를 그냥 놔둘 수 없어, 프랑스 공군에다 줘 버린다. 프랑스의 앞머리 알파벳 F를 붙여, 미라주 5F라는 명칭을 부여해선.
*비행단이 급하게 만들어져, 정식으로 취역한 프랑스 공군의 미라주 5F, 약간은 뻔뻔스런 광경이다. 출처: aeromil-yf.pagesperso-orange.fr
이스라엘은 기가 막혔다. 6일 만에 아랍국들을 쳐 부셨다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투기 미라주3가 70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반 토막 난 상태. 아랍 공군한테 완승을 거뒀어도, 자기 쪽 손해가 안 나올 수 없고, 훈련 중 사고나 여타 사정으로 인해, 망실된 전투기도 많았던 까닭이다.
그래서 이미 주문했던 50대의 미라주5가 들어오면, 다시 예전의 파워를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뭐? 단 1대도 줄 수 없다고? 그럼 어디서 전투기를 구해?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그때까지 거의 다 프랑스제였다. 건국 초기의 잡동사니 구식기들 속에서, 제트 전투기 시대로 들어서자,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기체를 공급해준 건 프랑스 뿐 이었다. 이스라엘 공군 기종을 알려면 곧바로 프랑스 공군기들을 파악하면 될 정도로, 프랑스는 내내 유일한 전투기 공급 국가였다.
직선익이나 튼튼하고 품질 정비하기에도 좋은 우라간, 우라간을 그대로 후퇴익화(化)한 미스테르. 바로 그 미스테르를 더 빠르게 만든 초음속 전투기 슈페르 미스테르, 뒤 이은 쌍발 다 목적기 보뚜르(솔개)에다, 3차 중동전 당시의 화형(花形)전투기 미라주3. 눈을 씻고 찾아봐도 메이드 인 프랑스 아니면 없다.
*이스라엘의 우라간(돌풍) 전투기, 제트 시대 초창기 기체임에도 불구하고, 비행성능 괜찮고 튼튼하며, 무장 플랫폼으로 좋은 전투기였다. 역시 프랑스 닷쏘사 제품. 출처: cavok.com.br
그 뿐 만이 아니다. 파일럿을 배출하는 제트 훈련기도 프랑스제다.
*동체 뒤쪽으로 ‘다윗의 별’이 있는 매지스터 훈련기. 비록 마이너 기종이나 프랑스로서는 외화 획득에 큰 공을 세운 언성 히어로다. 미라주와 비견될 만큼 많이 수출됐으며(전후, 독일 공군도 대량 사용했다), 이스라엘은 아예 제조권을 획득, 대량 생산을 해내, 평시엔 훈련기로 전시에는 경공격기로도 썼다. 출처: cavok.com.br
긴급! 국산 전투기를 만들자!
여기서 의문 하나가 생긴다. 그럼 미국제 전투기는? 미국은 전투기를 안 주나? 그 때까지 미국은 중동에 큰 볼일이 없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발을 집어넣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살길을 찾아야 했다. 중동에선 무엇보다 중요한 제공권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갑부대가 전진을 해도, 하늘은 뻥 뚫려 있고, 대지는 그저 평평하기만 하다. 이때 하늘로 부터 습격이 있으면 도매급으로 다 당한다. 따라서 지상전에서의 승리도 제공권 없으면 불가능한 것. 그리고 제공권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초음속 제트 전투기.
“이렇게 된 이상, 국산 전투기를 만들 수밖에!”
결심을 그렇게 굳히는데,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국산기 개발은 기술적 문제를 빼고라도 설계에서부터 초 비행, 뒤이어 대량 생산까지, 또 전투 비행대 취역까지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체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실패하지 않는 기체를 만드는 건 딱 하나, 성공한 다른 나라 전투기 설계도를 빼 오는 것.
이미 오랜 세월을 들여 개발해 냈고, 그 개발해낸게 성공작이라 평을 듣는 것. 그걸 빼오자.
“그러다면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익히 다룰 줄 아는 전투기 미라주!”
더구나 돈까지 줬는데, 그놈의 나라는 뒤통수를 치지 않았나? 이쯤에서 지구상 가장 효율적인 정보기관이라는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사드 설계도 탈취 사건
*미라주 3C 타입의 4면도.. 출처: aatlse.org
미라주 설계도 탈취에 대해, 외국 포럼을 좀 뒤져보면, 이런 표현도 있다.
“모사드가 007제임스 본드를 방불케 하는 작전으로 설계도를 빼 왔다.”
그런데 필자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바로는, 어느 정도 숨 가쁜 부분은 있어도, 스파이 영화 수준의 활극은 아닌 듯했다. 소련의 KGB가 적으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CIA가 낄 일도 아니고, 상대는 돈만 받고, 물건 안 주는 프랑스 아닌가?
그래서 프랑스 인들은 대체로 미안해했고, 닷쏘 사는 알게 모르게 이스라엘한테 도움을 줬다고 한다. 거기에다 또 모사드 공작의 주 무대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위스가 된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바로 옆 나라. 왜 이 나라가 주 무대가 됐는가 하면, 1860년 일찌감치 미라주 3 전투기 1백 대를 들여오기로 하고, 라이센스 내지 조립 생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내에는 이와 연관된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모사드와 연결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설계도 유출 작업이 시작된다. 007류의 살벌한 첩보 액션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배경 때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주 내용이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감옥 갈 각오를 하고, 설계도 훔치는 일에 동참한 걸로 보이는데. 돈 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심이 커, 그런 일을 했던 것 같다.
필자 생각으로, 당시의 1960년 대 말은 제2차 대전이 끝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기이며, 스위스는 또 유럽 한 복판 아닌가? 유대인 수용소와 함께 집단 학살이 일어난 장소가 그리 멀지 않은 곳, 더구나 집단 학살이 독일인들에 의해 일어났고, 스위스 국민 70프로는 독일계라, 모르긴 몰라도(이건 필자 생각이지만) 십중팔구 독일계의 이 스위스 인은 매우 인간적인 감정이 모티브로 작용해, 모사드의 일에 협조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자료를 보면, 그 스위스 인의 이름도 밝혀지고, 또 많은 액수가 오간 걸로 돼 있다. 이름은 알프렛 프라우네히크, 스위스 엔지니어로 25만 달러를 받았는데, 그 자료에도 이렇게 나온다.
“반은 돈 때문에, 그러나 반은 이스라엘 을 동정해, 도면을 훔쳤다.”
어쨌든 스위스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이 엔지니어는 24개의 서류 상자에 든 20만 장의 도면을 넘겨줬다고 한다.
엔진이다. 미라주의 심장!
또 하나 우리가 익히 알던 것과 다른 게 있다. 훔쳐 낸 도면이 주로 엔진 쪽이라는 거. 미라주 3에 들어가 있는 엔진이다. 프랑스 제 스네크마 아타 9. 비행기라는 게 기체보다는 엔진이 중요하고, 기체보다 엔진이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미라주에 들어가는 아타 9엔진, 뒤쪽은 애프터 버너 부분이다. 추력을 배가 시키는 후연소 시스템.(사진출처: aeronautique.ma)
초 스피드, 2년 만에 완성되다.
비행기라는 건, 엔진이 결정 안 되면 아예 설계를 시작할 수 없다. 기체의 심장은 엔진이기 때문. 심장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없듯, 엔진 없이 나는 전투기도 없지 않던가? 그래서 이 훔친 엔진 설계도를 기초로 해, 이스라엘 판 미라주 5 만들기는 시작 된다.
그리고 1969년, 딱 2년의 작업 끝에, 신 전투기가 완성된다. 2년? 아니 그렇게 빨리? 물론 대중에 공개되는 시점은 그보다 한참 뒤일 수 있으나, 어쨌든 경이적인 스피드다. 2차 대전 때의 프로펠러 전투기도 그 이상 걸리면 걸렸지, 그 아래로는 힘드니까.
그래서 항공 전문가들은 이렇게 추측한다.
“기체 전체의 금형을 뜨고 부품을 새로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기술진들은, 기존의 미라주 3의 부품들을 많이 갖다 썼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두 기체는 똑 같으니까.”
쓸쓸한 스위스 인
그로부터 몇 년 후. 감옥에서 나온 스위스 인,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물 하나가 도착한다. 해외 우편물인데, 뜯어보니 초대장과 함께 비행기 표가 들어 있었다.
보낸 곳은 유럽 대륙 한참 아래의 이스라엘. 자기네 국산 비행기가 공개 비행을 하니, 와서 한 번 보라는 내용. 비행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어떤 비행기인지 금방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거 아닌가? 델타 익의 미라주 전투기!”
얼마 뒤 그는 지중해 건너 텔아비브로 날아간다. 그리고 활주로 옆의 관중석,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틈에서, 실버 메탈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 대의 전투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택싱, 날아오르는 걸 본다.
그때 꽁무니에서 품어져 나오는 불꽃, 엔진 파워를 올리고자 에프터 버너를 켤 때 나오는 불꽃이다. 그의 가슴이 쿵쿵되는 건 당연한 일. 아아~ 바로 그거야. 자기가 훔쳐 낸 ‘스네크마 아타 9’ 엔진!
*당시의 스위스 인은 이 비슷한 모습을 봤을 것이다. 출처: fighterpilotuniversity.com
이어지는 신형기의 공중 기동! 관중석 가까이 날아오는데, 이때 푸른 색 6각형 ‘다윗의 별’이 날개 쪽으로 보인다. 정말 아름다운 델타 익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이 사람. 뭉클한 가슴과 함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자기가 한 일은, 결코 비도덕적인 일은 아니었다고..
사실, 3차 중동전이 벌어 질 60년 대만 해도, 세상사람 대부분은 이스라엘한테 호의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수 십 년도 더 된 옛날이라, 지금과 같은 복잡한 중동 문제,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가 없을 때다. 그래서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단순히 이렇게 생각했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당시로서 10여 개 국이 넘는 거대 아랍계의 싸움. 그러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골리앗과 다윗(다비드)의 싸움에서 꼬마 다윗의을 응원하는 게 보편적 마인드 아닌가? 이른바 ‘자이언트 킬링’이라는게 일어니까.
스포츠 게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도 이런거 아닌가?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일과 그 때의 감흥. 그래서 프랑스 축구계 ‘칼레의 기적’이 자주 사람들한테 회자되듯, 당시 지구촌 사람들은 2천년이라는 기나긴 유랑 끝에 엑소더스, 무슬림의 바다에서 나라를 세워, 굳세게 지켜나가는 약자 이스라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을터.
물론 지금은 다르다. 현재의 중동에서 ‘군사적 골리앗’은 누가 뭐래도 이스라엘이다. 뒤에는 또 지구상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어시스트 해준다. 팔레스타인 전폭기들이 유태인들 민간 거주지를 폭격하는 게 아니라, 유태인 파일럿이 조종하는 푸른색 6각형 ‘다윗의 별’을 단 전폭기가 애꿎은 민간인들을 죽이곤 한다. 팔레스타인 소년이 돌멩이를 던질 때, 이스라엘은 120밀리 주포를 단 메르카바 탱크를 내 보낸다.
분명 지금에 와서 골리앗은 이스라엘이고 다윗은 팔레스타인이다.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 편에 서는 나라는 없다. 미국 하나 뿐이다. 사람들은 관대함이 부족한 강자를 절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위스 인은 쓸쓸하다.
“드드드…”
제트엔진 소리가 활주로 하늘 저쪽으로 사라지고, 에어쇼는 끝난다. 스위스에서 온 이 여행객. 이제 자리를 나서는데 그때 까지도 인사 건네는 사람이 없다. 옆에 있는 고위 관료나 공군 관계자들, 분명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텐데 모른 척으로 일관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떳떳하고, 국민들은 도덕적이다. 설계도를 훔치는 짓 따윈 하지도 않고, 훔친 걸로 베껴 만드는 일은 더욱 그렇다. 모사드라는 조직이 있기는 하나, 남의 나라까지 가서 하는 비밀공작이라니 천만의 말씀.
따라서 그와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것. 여행자는 쓸쓸히 귀국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의 귓가에 남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신형 전투기의 엔진 소리.
그 전투기의 이름은 ‘네세르’였다.
*네세르가 날아간다.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출처: wikimedia.org
네세르는 히브리어로 독수리라는 뜻. 만들어 진 건 2인승 훈련기 10대 빼고 51대.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숫자다. 그러나 이 숫자가 하늘에서 설치고 다니기 시작한다, 공중전에 있어서 의외로 맹활약하는 타자였다.
완전 미그 킬러.
그리고 전투기 역사에 길이 남을 ‘크피르’가 오는 길을 예비한다. 진짜 이스라엘 국산 전투기 ‘크피르’.
*깔끔하게 도색 된 거 같으나, 역전의 네세르다. 무려 13대의 이집트, 시라아 기 격추 마크가 붙어 있으니까. 출처: fighterpilotuniversity.com
(2부에서 계속.)
김은기 커피 토크
예전 미라주에 대한 글을 쓸 때, 곧 크피르를 쓴다고 한 약속, 이제 지키게 되네요. 당시 기대한다는 글을 주셨던 argonise와 han, 두 분께 미안한 마음도 없어지는 것 같고요. 그 사이 개인적 일이 많았습니다. 컴퓨터 내 자료가 몽땅 사라지는 일이 생기는 등(쓰고 있던 여러 편의 글들이 사라지는 줄 알고…), 그래서 힘들게 복구를 시키고, 이제 크피르를 시작할까 했는데 갑자기 입원하는 일이 또 생기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완쾌돼, 괜찮습니다. 겸사겸사 회복기 삼아 놀고 있는데, 이때 언론을 도배하는 뉴스들. “북한 잠수함 50척 집단 가출!”, “모두 행불, 집나간 50척을 찾습니다.” 나름대로 시의(時宜)에 맞춰야 되겠기에, 잠수함 왕국 북한 편을 쓰곤, 이제 진짜 크피르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쓰다 보니 페이지가 자꾸 늘어나네요. 되도록 슬림화(化)시켜 알찬 것만 뽑아내려 해도, 잘 안 되는 상태. 일전에 썼던 ‘프랑스의 삼각 날개 미라주’의 글까지 합치면 맙소사! A4 용지로 거의 40여매가 오버되는 상황;; 따라서 다음부턴 되도록 단 회로 끝내길 다짐하며, 이번 글도 늘어난 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나누는데.. 아무쪼록 부족한 포스팅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회를 기다리는 인내심, 그리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은기의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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