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역한 잠수함 SSG-557 그라울러(Growler)와 함께 전시된 최초의 잠수함 발사 핵미사일 레굴루스 순항핵미사일(SSM-N-8 Regulus)의 모습이다.
미국은 핵폭탄으로 일본을 완전히 굴복시켰다. 그런데 이것은 이후 다음 전쟁에서는 수많은 피해를 감내하며 굳이 전선에서 밀고 당길 필요 없이 적의 전략 거점에다가 핵폭탄만 떨구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도록 만들었다. 다만 당시에는 핵폭탄을 목표물까지 운반 할 이동 수단이 공군의 대형 폭격기 외에는 마땅하지 않았다.
- 잠수함에서 핵폭탄을 날릴 방안은?
- 최초로 장착하였던 잠수함인 SSG-282 터니(Tunny)에서 발사되는 레굴루스
-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SSN-571 노틸러스
- 레굴루스는 현대의 미사일처럼 잠수 상태에서 발사할 수 없었다. 발사하려면 수면에 부상하여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항공모함처럼 적진까지 다가가 작전을 펼치는 무기체계들의 무용론까지 대두되었고 이것은 항상 전쟁터로 먼저 출동하였던 미 해군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미 해군은 핵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상하였는데, 이때 잠수함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미 해군은 기습을 통한 해상차단이라는 고전적인 임무에서 탈피하여 전략 작전에 잠수함을 투입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잠수함은 그 은밀함을 이용하여 적 해안까지 침투하기가 다른 병기에 비해 유리하였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면 상대에게 기습적으로 한방을 먹일 수 있는 적당한 운반 플랫폼이 될 것이라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동 수단으로써의 잠수함은 괜찮은데 목표 부근까지 은밀하게 다가가도 막상 핵폭탄을 적진 깊숙이 있는 목표까지 날릴만한 수단이 적당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뢰에 핵폭탄을 장착하여 지상으로 발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안 근처에서 부상하여 당시 잠수함에 많이 부착되어 있던 작은 함포로 핵폭탄을 발사한다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바로 그때 미 해군은 독일이 제2차 대전 말기에 사용하여 연합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V-1을 떠올렸다. 일종의 무인 비행기였던 V-1은 순항미사일의 가능성이 엿보였던 선도적인 무기였다.
이러한 무인 비행체의 탄두에 핵폭탄을 장착하여 잠수함에 탑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미 해군은 1947년 함재기의 명가였던 보우트(Vought)사에 새로운 순항 미사일의 개발을 의뢰하였고 다음과 같은 스펙을 제시하였다.
‘잠수함에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충분히 발사 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적어도 3,000파운드 무게가 나가는 50kt(W5)의 규모의 핵탄두를 장착 할 수 있어야 하며 최하 마하 0.85로 500마일 이상 비행이 가능하고 명중률은 최대 0.5마일 이내여야 한다.’
- 독일의 V-1을 참고, 새로운 순항미사일 시대를 열다
의뢰를 받은 보우트는 이미 1943년부터 4,000파운드 탄두를 적재할 수 있는 사거리 300마일의 순항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 중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여 놓고 있었던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승전의 대가로 노획한 V-1을 참조하여 사거리, 정확도, 탄두 탑재량 등을 개선하는 연구도 병행 중이었다.
보우트는 V-1이 사용하였던 펄스제트(Pulse Jet) 엔진보다 추력이 뛰어난 터보제트(Turbo Jet) 엔진을 채택하여 해군의 요구 조건을 대부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잠수함에서 충분히 발사가 가능하도록 추력을 더 할 수 있는 부스터(Booster)를 본체에 장착하여 발사대 레일의 길이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시제품을 1951년에 선보였다.
지상 실험 결과에 만족한 해군은 SSM-N-8이라는 제식 번호를 부여하고 순항미사일의 별이 되라는 의미에서 레굴루스(Regulus)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미 해군은 호위 잠수함으로 사용하던 재래식 동력의 SSG-282 터니(Tunny)와 SSG-317 바베로(Barbero)를 개조하여 레굴루스를 탑재함으로써 드디어 전략 핵잠수함(nuclear strategy submarine) 시대를 개막하였다. 이때부터 잠수함은 적의 심장부를 직접 강타할 수 있는 전략 무기로 그 위상이 올라갔다.
핵무기를 쏘는 핵추진 잠수함의 등장
이것은 전략 핵무기 운용에 관한 공군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린 사건이기도 했다. 핵무기의 발사 또는 투하 수단으로 전략 폭격기 외에도 잠수함이 사용됨으로써 군 최고지휘부의 입장에서는 보다 다양한 작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폭격기는 목표까지 비행하는 동안 요격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큰데 반하여 잠수함은 적의 심장부까지 최대한 안전하게 접근 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전략 핵잠수함의 성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954년 세계 최초의 핵 추진 잠수함(nuclear-powered submarine) SSN-571 노틸러스(Nautilus)가 배치되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잠수함 역사의 사변이었다. 잠수함은 디젤 엔진을 가동하여 발전기를 돌리고 여기서 얻은 전력을 축전지에 충전하여 동력원으로 사용하는데, 엔진 가동에 필요한 산소를 얻으려 주기적으로 물위로 부상 하여 모습을 노출 시켜야 했다.
곧바로 닥친 한계
그런데 레굴루스는 여기에서 진화를 멈추어야 했다. 레굴루스를 발사하려면 우습게도 잠수함의 은밀함을 포기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굴루스는 잠수함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상부에 설치 된 캐이브(Cave)를 개방하고 목표물을 조준한 후 발사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사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더구나 이때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작전을 펼쳐야하는 잠수함들에게는 극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즉 은밀하게 핵미사일을 운반 할 수는 있지만 발사시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중에서 레굴루스를 발사하면 되는데 이는 작동 구조상 불가능했다. 아니면 사거리를 늘려 위험한 적진까지 가지 않고 안전 지역에서 발사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러려면 좀 더 크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잠수함 탑재를 목표로 제작되다 보니 크기를 키우기에도 문제가 많았다. 나름대로 약점을 극복하려고 레굴루스II라는 이름으로 신형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결국 개발이 취소되어 실전 배치되지 못했다.
- 제식화 9년만에 용도 폐기
지금은 탄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다양한 방어체계가 개발되었지만 IRBM이나 ICBM이 처음 등장하였을 당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이들을 물리적으로 막을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 해군 당국도 운용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레굴루스 대신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잠수함에 탑재하는 연구에 착수하였다. 한마디로 잠수함 자체를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보관 및 발사가 가능한 이동 기지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트라이던트(Trident)로 대표되는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이 개발되었고 이를 탑재한 핵 탄도 미사일 잠수함(SSBN)이 항상 바다 속에 숨어서 적을 노리는 무서운 시대가 개막되었다. 덕분에 순항 핵미사일 레굴루스는 제식화 된지 불과 9년 만인 1964년에 용도가 폐기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가능성을 열었던 야심만만한 무기의 쓸쓸한 종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좋을 것이 없는 변화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야심은 그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 얼마 지나지 않아 강대국을 자칭하는 여러 나라들이 앞 다투어 핵 탄도 미사일 잠수함을 보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인간들의 신무기 개발 경쟁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무기의 개발 및 도입은 늦으면 늦을수록 인간에게는 좋은 것이다. 세상에는 굳이 발전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가 있다.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유용원의 군사세계CP-2023-0230@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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