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 우크라이나군이 소총탄을 페트병에 잔뜩 담아 사용하는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이 사진을 올린 소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소총탄을 이렇게 페트병에 옮겨담아 최전선으로 보급중이라고 한다.
탄약을 페트병에 옮겨담는 것은 우리 생각에는 굉장히 낮선 일이다. 그리고 굳이 왜 이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최전선은 대부분이 참호진지로 이뤄져 있고, 이 참호들은 아예 혹한기에 돌입하기 전 까지는 습기와 진흙 투성이일테니 말이다.
사실 ‘투성이’라는 말도 너무 약하다. 엄밀하게 따지면 병사와 장비들이 모두 진흙과 흙탕물 속에서 산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진 아래 사진에서 보듯 현지 참호들 대부분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탄약만이라도 최대한 습기와 진흙에 노출되지 않게끔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양측은 특히 여기에 주의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이들이 쓰는 탄약의 대부분은 특히 습기에 취약한 재질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 상식으로 탄약의 탄피는 황동, 탄두를 감싸는 피갑도 구리 합금이다. 물론 이런 재질이라고 해도 장기간 습기에 노출되는 것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구 소련및 동유럽제 탄약은 이야기가 다르다. 구리 계열 금속보다 철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 소련 시대에는 물론이고, 현재도 대부분의 AK용 탄은 이 지역들에서 과거의 설비와 공정을 토대로 생산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AK용 탄약들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구 소련및 동유럽의 탄약 대부분은 탄피가 철제이고, 피갑도 구리 도금이 된 연철제일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원래 구리 산출량이 많지 않은 곳들이고, 그 때문에 소모품인 탄피를 철제로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사실 공산권 뿐 아니라 독일도 철제 탄피를 대량으로 만들어 사용한 전례가 있을 정도이니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물론 철제라고 해서 물이 닿자마자 녹이 슬고 못쓰게 되는건 당연히 아니다. 게다가 표면에는 나름 방수를 위해 래커 도포가 되어있는 등 어느 정도의 방수 처리도 되어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며칠,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몇주일씩 참호의 미친듯이 습한 상황에 노출된다면 어떨까. 철제 탄피가 구리 탄피보다는 훨씬 빨리 녹슬기 시작할 것이다.
탄피에 녹이 스는 것은 당연히 문제다. 작게는 총기의 작동에 문제가 될 것이고 자칫하면 녹으로 인한 탄피 파열등으로 안전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다.
물론 구 소련/공산권 국가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던 것은 아니어서, 공장에서 출고될 때에는 흔히 ‘스팸 깡통’으로 불리는 완전 밀봉 용기에 담겨서 나오는 일이 많다. 적어도 이 깡통은 제대로 포장된 상태라면 전용 깡통따개등을 이용해서 따낼 때 까지는 탄을 습기와 충격등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한다.
하지만 최전선에서는 이 상태로만 탄을 보관할 수는 없다. 이 깡통을 따서 탄을 꺼내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깡통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당히 무겁다. 그리고 최전선에서는 시간은 모자라고 무게는 1g이라도 더 줄여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페트병 아닐까. 페트병은 금속 깡통보다 훨씬 가볍고, 휴대도 편리한데다 제법 많은 양의 탄이 들어간다. 게다가 뚜껑을 닫으면 매우 높은 방수능력을 가진다. 내구성이 좀 걱정일수도 있겠지만, 이게 몇년씩 보관할 것도 아니고 길어야 몇주일 보관할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들고 가다 땅에 떨구는 정도로 터질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금속 깡통과 달리 급하면 대검으로 찢어서 부어버리는 식으로 빨리 꺼낼 수도 있고 말이다. 아마 현장에서는 탄 꺼낼 때 칼 등으로 뜯어 꺼내고 병은 버리는 식이 일반적일 듯 하다.
또 다른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개인당 탄 지급량에 맞춰 보관하기 편하다는 점 아닐까. 페트병에 담을 때 미리 숫자 정해서 넣어두면 나중에 탄 불출할 때 페트병 숫자대로 주면 금방 끝날테니 말이다.
아마 우크라이나군 뿐 아니라 러시아군도 이미 비슷한 방법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하여간 전장의 환경이 군의 탄약보급같은 물류 상황을 어떻게 바꾸는지 참고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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