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급하였던 소련
무려 25,000대 이상 양산 된 T-72는 소련 및 동구권을 대표한 제2세대 전차였지만 사실 탄생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었다. 소련은 T-62의 양산 이전부터 이를 능가할 차세대 MBT(주력전차)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모로조프 설계국(Morozov-현재 Malyshev Factory)은 상당히 오래 전이라 할 수 있는 1951년부터 ‘프로젝트 430’으로 명명된 신예 전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괴물이 바로 제3세대 전차의 효시로 여겨지는 T-64이다.
그런데 당대를 초월한 기술을 너무 많이 접목하다 보니 정작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새로운 무기는 연구와 개발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전에 없던 기술을 적용시킬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 T-62의 탄생도 이와 관련이 많았는데 T-64가 예정된 기간 내에 완성 될 가능성이 없자 우선 T-55를 개량한 T-62가 만들어졌다. 미국은 소련의 전차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정작 소련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T-62도 생각만큼 흡족하지 못한 결과를 보였고 이에 조급증이 더욱 커진 소련은 T-64의 본격 양산 전까지 임시적으로 전력 공백을 메우려고 다시 T-62를 개량한 신예 전차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T-62의 개발자인 UVZ(Uralvagonzavod-우랄열차공장)는 T-64를 하청생산하며 얻은 기술을 응용하여 켈로젤(Carousel) 방식으로 자동 장전되는 125mm 활강포와 보다 성능이 향상된 화력 통제 장치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전차의 공격력을 강화시켰다.
반면 T-64가 너무 앞선 기동력을 구현하려다가 난관에 봉착하여 본격 제식화에 난항을 겪는 현실을 교훈 삼아 차체는 T-44부터 사용하여 오면서 신뢰성이 입증된 T-62의 차체를 개량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능을 일부 축소한 T-64 포탑을 개량된 T-62 차체에 장착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지 4년 만인 1971년에 전차가 완성되었고 이듬해 배치를 목표로 T-72라는 제식부호가 부여되었다.
- 주력전차로 선정되다
그런데 이런 개발 과정 때문에 T-72를 T-64의 다운그레이드 형이라 표현하는 자료가 많다. 사실 T-64의 개발 지연에 따른 전력 공백을 메울 생각으로 개발되다 보니 초기 모델은 부품이나 장갑 등의 성능이 낮은 염가형이 장착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T-72는 소련 전차 개발사를 살펴볼 때 T-64의 다운그레이드가 아니라 T-62의 업그레이드로 보는 것이 맞다. 계통상으로 T-44, T-55, T-62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제2차대전 후 소련 전차는 기술 교류가 있기도 했지만 크게 UVZ 계열과 모로조프 계열로 나뉜다. UVZ 계열은 이후 T-72를 거쳐 T-90까지 연결되며, 모조로프 계열은 T-64에서 현재 국군도 사용 중인 T-80과 우크라이나 군의 주력인 T-84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성능과 별개로 T-72와 T-90이 주력전차로 선정된 점을 고려한다면 상품으로써의 경쟁력은 UVZ 계열이 우위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 참담했던 결과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에 T-72가 최초로 실전 투입되었지만 별다른 전과는 없었다. 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 때의 결과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에 전차 간 교전이 있었지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소련 및 동구권을 대표하였지만 전작들과 달리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치지 못한 T-72의 진면목은 1990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 그래도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다
이미 80년대부터 반응장갑이 장비되었는데 특히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걸프전 이후에는 마치 갑옷처럼 부가 장갑을 덕지덕지 붙인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노력과 더불어 제3세대 전차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개량도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한 번 얻은 악평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결국 최종형인 T-72BU의 이름은 아예 바뀌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러시아군의 주력 전차인 T-90이다.
개발자인 소련도 실망시켰을 만큼 T-72는 감추고 싶은 이름이 된 것이다. 하지만 T-72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방에게 대응 수단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였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비록 걸프전의 결과는 참혹하였지만 탄생 직후부터 상대방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그 후속작이 여전히 세계 최강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사용될 만큼 T-72는 의의가 있은 전차다. 25,000대 이상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지구 어디에서 사용 중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제원(T-72A 기준)
중량 41.5톤 / 전장 6.95m / 전폭 3.59m / 전고 2.23m / 승무원 3명 / 125mm 2A46M 활강포 / 12.7mm 중기관총 1정, 7.62mm 기관총 1정 / 항속거리 460km / 최대속도 60km/h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유용원의 군사세계CP-2023-0230@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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