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정치 개혁 의지를 담은 쇄신안을 내놨지만, 사실상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파벌’ 해체에 대한 언급은 없고, 각종 대책에도 허점이 많아 벌써 당 안팎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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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날 임시 총무회에서 이번 비자금 사태의 온상으로 지목된 파벌을 자금 모집과 인사 추천 기능이 없는 ‘정책집단’으로 변모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정치개혁 중간 정리안을 확정했다. 정리안은 파벌이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열었던 행사인 일명 ‘파티’ 개최를 금지하고, 계절마다 의원들에게 각각 얼음값(여름), 떡값(겨울)이라는 이름으로 나눠주던 명절 자금을 폐지하도록 했다. 개각 및 당 간부 인사에 있어서도 파벌과 협의하던 관행을 없애고, 신진 및 여성 등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강조했으며 정책집단의 자금 수지 보고서에 외부 감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앞으로 회계 책임자가 체포·기소될 경우 관계된 의원도 함께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자민당 총재이자 쇄신본부장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총무회에서 “중간 정리안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정치개혁에 끝은 없기에 험준한 여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파벌’ 자체는 크게 건드린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주장한 파벌 해체, 핵심 파벌의 해산 움직임에 반발하는 일부 의원들을 고려해 ‘파벌’이라는 표현을 ‘정책집단’으로 바꿔 존속하는 것을 사실상 용인했다. 이에 따라 자민당 내 기존 6개 파벌 중 해산에 동참하지 않은 제2 파벌 아소파와 제3 파벌 모테기파는 정책집단 형태로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 등을 배려해 중요한 내용이 빠졌고, 실효성도 불투명하다”며 기시다 총리가 파벌 유지 의향을 드러낸 아소 부총재와 회동한 이후 ‘파벌 사무소 폐쇄’, ‘각료와 당 간부의 파벌 탈퇴’ 같은 사안이 논의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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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파벌을 그대로 남겨둔 조치라 개혁 방안 곳곳에도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다. 파벌의 파티 개최를 금지했지만, 파벌 간부가 개인적으로 행사를 열어 그 수입을 소속 의원·단체에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다. 개각·인사 때 계파 추천을 배제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물밑 압력까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자민당의 한 중견 의원은 아사히에 “일시적인 비판 회피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국면 전환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번 개혁안을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정치 자금의 최종 목적지였던 당 간부나 핵심 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흐지부지된 것을 꼬집었다. 정치사에 오점을 남기는 대형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일으킨 계파 간부들이 아직 제명이나 탈당 같은 처분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민간 기업에서 이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면 경영진은 주주와 투자자로부터 즉각 퇴진해야 한다”며 “‘몰랐다’, ‘비서에게 맡기고 있었다’로 끝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당내 혼란과 지지율 반등 실패의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시다 내각은 제4 파벌 출신의 기시다 총리를 2파벌의 아소 부총재와 3파벌의 모테기 간사장이 지지하는 ‘삼두정치’ 체제였다. 그러나 이번 파벌 해체 선언 과정에서 기시다 총리가 두 사람과 사전 상의가 없었고, 이후 2·3 파벌이 ‘해산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반기를 들면서 아소·모테기파 내부에서는 “이제 삼두정치는 끝났다”는 말이 나오는 분위기다. 모테기파의 하시모토 가쿠 중의원은 23일 쇄신 본부에서 “파벌 해산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는커녕 머리만 두고 몸통을 자른 격”이라며 “머리를 없애야 한다. 파벌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라”고 면전의 총리에게 사임을 재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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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도 싸늘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19일 소속 파벌 해산을 선언한 직후 아사히신문이 20~21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23%로 자민당 정권 복귀 후 역대 최저인 지난해 12월과 같았다. 비 지지율도 66%로 역대 최고였던 한 달 전 수치에서 변화가 없었다. 요미우리신문이 19~21일 진행한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이 24%로 지난해 12월 25%와 비교해 개선되지 않았다. 파벌 해체와 당 쇄신에 대한 여론은 싸늘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파벌 해체가 정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72%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그렇다’(19%)는 응답을 크게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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