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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가 화물연대본부에 이어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이 부당한지 다시 판단을 하게 됐다.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ILO의 판단 관건은 의료를 어떤 성격으로 규정하고 의료계 집단행동에 따른 국민 피해를 어떻게 볼지다.
14일 대한전공협의회에 따르면 대전협은 최근 ILO에 한국이 비준한 강제노동금지 협약 제29호를 위반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전공의가 의대 증원에 반대하기 위해 병원을 떠나자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 등 일련의 행정 조치가 대상이다. 제29호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ILO 조항은 비준국가의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ILO 조항 위반은 국제 사회의 노동 규범을 어겼다는 의미도 있다. 단 ILO 판단이 비준국가에서 이행을 강제하거나 제재가 뒤따르는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
업무개시명령은 2022년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서도 이뤄진 전례가 있다. 당시에도 화물연대와 화물연대 상급인 민주노총이 ILO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ILO 협약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ILO 협약과 국내 법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방향의 정책 마련을 위해 외부 전문가에 연구를 의뢰했다. 2022년 12월 한국ILO협회가 발표한 ‘ILO 기본협약 이행 등을 위한 국제노동기준 연구’ 보고서는 이번 의료계의 ILO 진정 제기 결과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ILO는 29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강제 근로에 대해서도 ‘제재의 위협의 의해 강요되는, 자발적으로 요청하지 않은 모든 노동과 서비스’로 정의했다. 29호 예외는 크게 5가지다. 군사적 성격 근로, 시민적 의무 구성 근로, 법원 판결에 따른 근로, 주민 생존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근로, 통상적 시민적 의무 성격의 소규모 공동체 서비스다. 그동안 국내에서 쟁점은 군사적 성격의 근로로 대체 복무제와 교도 작업이었다.
이번 의료계의 29호 위반 진정의 쟁점은 의료 중단의 피해 정도가 관건으로 보인다. 관련 예외 조항은 ‘주민 전체와 일부의 존립과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강요되는 근로 여부’다. 이 조항은 의료라고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의료계 집단행동이 이 상황이라면 ILO도 예외 조항을 적용해 29호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 행동이 단순 진료 차질을 넘어 응급실 가동이 멈추거나 수술을 못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의료 대란으로 이어질 경우 업무개시명령의 정당성도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다른 쟁점은 ILO 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은 자국 상황에 따라 ILO 협약을 이행할 수 있는 일종의 의사결정권이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화물연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판단에 근거해도 화물 운수에 따라 국가 경제가 마비될 수 있는 수출입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고 (ILO는) 봤다”며 “화물연대의 업무개시명령의 29조 협약 위반도 개별국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ILO 협약을 모든 국가가 완벽하게 준수할 수 없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협약 저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ILO 29호는 앞으로도 많은 논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9호를 2021년 비준해 2022년 4월 발효했다. 29호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어떻게 적용할지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당시 화물연대 측은 업무개시명령이 부당하다며 ILO에 진정을 제기할 때 29호를 제외하고, 87호(결사의 자유), 98호(단체교섭권)의 판단만 요청했다. ILO가 29호와 관련해 업무개시명령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최종 판단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87호와 98호에 대한 ILO 판단은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