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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주재 이란영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도 13일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그리고 19일에는 이스라엘이 다시 이란 내 군사기지를 드론탑재 폭탄으로 공격했다. 이 같은 사태는 중동 상황을 한 단계 더 악화시킨 것으로 두 나라 모두가 상대의 핵시설 좌표를 확보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동은 왕정과 석유 그리고 종교라는 3개의 다리를 가진 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이 3개의 다리가 흔들리면서 중동과 세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동시다발 테러와 2003년 이라크전쟁이 그 효시였다고 볼 수 있다.중동의 정치제도는 국왕이 절대 권력을 누리는 왕정으로 서구식 정치제도와는 차별화되어 있다. 공화정 국가도 국제사회의 일반적 기준과는 다른 민주주의 형태다. 과거 중동 지도자들의 장기집권 시대와 비교해 현재도 획기적인 정치발전이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도 장기간 권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1992년부터 레바논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하산 나스랄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동경제를 지탱하는 기축인 석유는 아랍 산유국의 국부 대부분을 창출한다. 이는 오일 머니의 연동화 그리고 중요 전략자원인 석유의 공급선 확보를 위한 강대국의 중동 진영편제 작업의 원인이다.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이던 처칠이 석탄에서 석유로 함정연료를 교체하면서 해군전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것이 효시가 됐다. 셰일석유를 비롯한 대체에너지 자원개발에 제한성이 드러나는 것도 주목된다. 중동에서 종교의 역할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슬람은 아랍 국가법체계의 최상위에 있고 결혼 역시 세속법이 아닌 종교법을 따를 만큼 사회전반을 지배한다. 이스라엘의 유대교 역시 이와 유사하다. 정치세력의 집권에는 종교의 역할이 필수적일 정도다.
이들 3개의 요소는 중동에서의 전쟁과 평화를 국제정치와 연동시키는 레버리지다. 강대국들이 주창하는 가치외교가 국가에 따라서 이중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배경이다.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방정식에 따라 국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4차례 발발한 아랍-이스라엘 간의 중동전쟁은 국제사회의 정치와 경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중동의 민주발전을 가로막는 후과를 남겼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정세의 흐름 중에 소거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제법과 유엔의 역할, 그리고 인도주의적 가치였다. 전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손실을 가져오고 부수적으로 인간성의 황폐화를 추동했다.
링컨 미국 대통령은 남북전쟁 당시 “인간이 손에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설지라도 적에 대하여 그리고 신에 대해 인간으로의 존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는 훈령을 냈다. 고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서 동물처럼 강물을 핥아 먹지 않고 인간답게 손으로 떠 먹은 300명의 용사를 선발해 전투에 나섰다. 십자군의 침공에 맞선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살라딘은 이슬람의 관용정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최고도에 이른 오늘날에는 이런 정신은 사라진 전설처럼 됐다. 〈No More Hiroshima〉의 표어가 “더 이상 히로시마의 원폭과 같은 참상은 없어야 한다”는 자성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더 이상 히로시마의 죄의식은 없다”는 망각의 의미로 읽히게 됐다. 현대전쟁에서는 대규모 집단학살과 인종청소가 자행됐고 이에 둔감해졌다. 미국과 러시아가 모두 전술핵의 사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또한 실천할 의지를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개념은 핵전력 보유국과 비(非)보유국 그리고 국토면적이 큰 나라와 협소한 나라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며 전면적 핵전쟁으로 이어져 지구생태계의 파괴와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오슬로 중동평화협정 체결로 199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삭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수락 연설에서 인간은 자기 뜻과 무관하게 어디선가 태어나고 그 운명은 출생한 국가의 지도자 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임에도 세계에는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와 관념이 있는데 그게 ‘삶의 신성함’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국가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양질의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해 주어야 하며 음식과 피난처 그리고 자유와 인생 그 자체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무기와 요새가 아니라 평화라고 했다. 국가 지도자는 모두 신과 인류 그리고 자연 앞에 경외심을 갖고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평화수립으로 1978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는 1981년 10월, 그리고 라빈은 1995년 11월 각각 자국민에 의해 암살됐다. 평화의 파괴는 국가의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와 사회 분위기에서도 나온다.
향후 중동의 정세변동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상호 적대적 조치의 수위조절,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교섭, 팔레스타인 난민의 인도적 상황,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여부 그리고 과거에 수차례 테러 목표가 되었던 예루살렘의 악사사원과 바위의 돔의 폭파 가능성과 헤르몬산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 가능성과 같은 근본적 사안들이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계속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242호의 이행 여부로 레바논의 헤르몬산 시바 지역과 시리아의 골란고원 반환요구다. 여기에는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를 비롯한 지역강국들의 정치적 선택과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계산이 관건이 된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지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한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라빈은 이것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가와 세계의 미래 특히 젊은 세대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철저히 국익을 기초로 하는 권력론적 국제정치이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의 국제정치학 교과서의 마지막 장은 평화를 위한 외교정책으로 마감했다. 조정을 통한 평화구축 방안에 관해 쓴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순진한 사고방식으로 치부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만 집착하는 권력정치가 대부분 전쟁의 유발과 체제의 비민주화를 야기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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