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동 주(駐)미국 한국대사가 반 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어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한미동맹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5일 재외공관장회의 차 입국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현동 주미대사는 “미국 대선 이후 한미 관계에 대해 여러 예상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한미동맹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사는 “이미 다층적인 고위급 교류와 핵협의그룹(NCG) 같은 강력한 안보 협력 체를 비롯해 각 분야에서 촘촘하게 연계되어 있는 경제‧과학‧기술 분야 협력도 단순히 ‘협력 강화’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도화되고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전체적인 흐름을 봤을 때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미동맹 발전의 큰 방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주미대사로 부임한 이후에 많은 (미 의회의) 상원 의원들, 싱크탱크 인사들을 만났는데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공감대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조 대사의 이날 발언은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아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어 정권이 교체될 경우 대외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왔다.
정부는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한미 양측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 기한을 약 1년 9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지난 23일(현지시각)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제1차 회의를 시작했는데, 이를 두고 동맹국가의 방위비 분담 비율을 높이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경우를 대비해 예년보다 이른 시점에 협상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방위비협상 시작 시기가 과거에 비해 좀 이르긴 하지만 양측 간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가 23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고 대신 한국의 핵무장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기존 미국 정부와 다른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 이 당국자는 “지금 현실과 굉장히 거리가 먼 이야기”라며 “워싱턴 선언에 기초한 핵 억제력 강화를 통해서 한반도 안보를 지켜나간다는 것은 변함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전직관료 명의로 여러 의견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데 현재 다 민간인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서도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그대로 현실화될지는”이라며 당선 이전과 이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당국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런 저런 발언을 했지만 한미 동맹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거나 부정적인 코멘트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제가 만났던 트럼프와 가까운 인사들은 한미동맹의 필요성, 공약의 중요성 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미동맹의 큰 방향은 변화 없을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부총재를 맡고 있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가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는 등 일본이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에 발을 걸쳐두는 것과 관련, 한국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현재 집권하고 있는 세력은 (미국) 민주당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신중한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일부 국가는 미국 방문해서 트럼프 전 대통령만 별도로 만나는데, 미국 고위 인사들의 반응은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다”라며 “균형감과 사안의 민감성 등을 감안해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지금 야당인 트럼프 측을 저희가 네트워킹 하더라도 가능한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 써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동맹 및 한미일 군사 협력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을 통해 얻게 되는 실익의 방향이 기존과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안정과 항행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은 지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우리 경제가 남중국해나 대만해협 수송로에 의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견제한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에 가 있고 미중 정상 간 통화 협의를 가진 뒤에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중국에 방문했다”며 “중국에 대해 한 편으로는 경쟁하지만 관여하기도 하는 외교적 노력을 미국이 계속하고 있고, 우리와 일본이 그러한 노력을 하는 것에 대해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대담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 한미일 3자관계에 해가 될 경우 “조용한 관여”를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 당국자는 “과거 위안부 사안 때도 미국은 한국과 동맹이고 일본과도 동맹이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잘 되도록 보이지 않는 역할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한미일 협력이 과거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됐는데 그런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한일관계가 큰 축이라, 미국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그런 역할이 한일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8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을 총회에 추천하는 결의안을 투표에 부쳤는데, 미국은 반대했지만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12개 이사국은 찬성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그것(결과)이 유엔의 전반적 상황이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유일한 반대표를 던진 미국도 우방국과 동맹국들이 찬성표를 던진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예산이 통과되면서 대규모 지원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의 무기 지원 가능성은 없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우리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기대가 크긴 한데 기여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할 것”이라면서도 “인도적 지원을 포함해 비살상 지원에 국한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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