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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 걷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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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가 오는 7월부터 전국 22개 시군구에서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은 치매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치매와 건강 문제를 통합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서, 환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맞춤형 치료와 관리를 제공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상담 등을 지원한다. 특히 가족과 보호자의 돌봄부담이 증가하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돌봄인의 무게를 덜어주고자 우울 정도 검사 등을 진행한 후 마음치유 프로그램과 심층 상담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보호자들의 부담은 우울 검사나 심리상담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그보다 우리는 먼저 치매 환자와 이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보호자들이 어떠한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치매돌봄에서의 시간의 문제에 주목한 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가기 : 한국 치매돌봄에서의 시간: 돌봄이 (비-)기다림이 될 때) 서울에서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 논문은, 특히 집에서 치매가족을 모시며 ‘독박 돌봄’을 하고 있는 가족 돌봄인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어떠한 돌봄의 시간을 경험하는지 논의한다. 이들에게 있어 시간이란, 그 속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거나 일상에서 활용하는 자원이라기보다는 그저 견디고 지나보내야 하는 것이라고 연구자는 말한다. 끝나지 않는 돌봄의 굴레에서 돌봄인은 언제 일어날지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는 이들의 돌봄노동이 시간 ‘속의’ 노동이 아니라 시간’의’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특정한 행위를 완수해야 하는 것보다 견딤과 기다림, 타인의 현재에 살면서 그 시간의 질을 바꾸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에서 시간의 노동이라는 것이다.

돌봄이 시간의 노동임을 강조하는 것은, 돌봄이 실질적인 할 일들을 완수하는 것으로만 환원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돌봄은 돌봄인과 돌봄 받는 자의 시간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상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단순히 일상적인 과업의 수행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기존 연구들이 돌봄의 관계적 측면에서 돌봄 받는 자의 행위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는 데 주목하고 있다면 이 연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돌봄이란, 시간 속에 함께 존재하며 그 시간을 지속시키고 연장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연구자는 주장한다.

연구자는 구체적으로 돌봄인의 시간을 ‘수동적인 현재’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인 시간 속에서 돌봄인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위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들에게 돌봄은 기다림의 시간이지만, 이러한 기다림은 특별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시설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매일을 버티고 연장한다는 점에서 ‘비-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기다림의 시간’은 적극적인 비결정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 3월 4일 서울 지역 첫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된 은평구 서북병원에서 한 어르신이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연구참여자들이 수동적인 현재를 보내는 기다림의 시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전직 공무원인 70대 중반의 성만(가명)은 연구자가 인터뷰를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거실 중앙의 한 공간을 가리키며 이곳이 그의 ‘초소'(군대 용어)라고 소개한다. 다른 연구참여자 철호(가명) 역시 군대 용어를 빌려 치매돌봄의 시간을 ‘경계근무’라고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돌봄인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한 채로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성만의 초소가 집안에 있을지언정 그에게 그 초소는 잠시도 편히 쉬거나 잠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성만이 편안히 잘 수 있는 시간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데이케어센터에 있는 동안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는 그 잠시의 시간이다.

돌봄인들에게 시간은 자신이 소유할 수 있거나 계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시간은 항상 대기상태에 머무르며 치매 환자의 시간에 묶여있는 시간이다. 지금 아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더라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극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상태. 돌봄인들은 천천히 흘러가는 하루의 매 순간을 위와 같은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며 보내고 있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대기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런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한 연구참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 걷고 있는 것”과 같다.

치매가 있는 어머니의 시간에 묶여있는 돌봄인 성만의 시간 속에서, 그는 어머니의 인생을 기록하는 책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순간순간에 매몰되기 쉬운 수동적인 현재에서 시야를 넓혀 자신과 어머니가 함께 보낸 과거를 기억하고 이를 더 큰 시간의 프레임 속에 새로이 위치시키는 것이다. 성만의 이러한 노력은 아픈 어머니를 때때로 원망하게 되는 힘겨운 돌봄의 상황 속에서, 어머니가 존경 받고 사랑 받아 마땅한 존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우려는 실천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성만의 책 프로젝트와 같이 크고 작은 실천들을 통해 돌봄인들이 자신의 행위성을 조금이나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시간의 조직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고 제시한다. 성만의 책 쓰기 프로젝트가 그의 시간주권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스스로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운 것과 같이, 다른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말함으로써 행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기 혹은 블로그 쓰기, 책 읽기, 새로운 돌봄 방법을 시도해보는 등의 방법들은 이들이 보내는 돌봄의 시간을 자신의 시간으로 전환시키고 시간의 조직을 바꾸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돌봄인들이 스스로의 시간을 재조직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돌봄인 자신이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고립된 책임주체로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 치매 환자와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가는 환자와 가족, 보호자의 돌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제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구체적인 지원의 방향과 내용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것이 이들의 일상적 어려움과 필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오늘 살펴본 바와 같이, 무한한 기다림 속에 메여있는 돌봄인들의 수동적인 현재를 조금이나마 자신의 시간으로 전환시켜줄 수 있으려면, 먼저 당사자의 삶에 대한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서지정보

– Jieun Lee, 2023. “Time in the State of Dementia Caregiving in South Korea: When Care Becomes (Non-)Waiting.” Culture, Medicine, Psychiatry 47: 898-917.

CP-2023-0188@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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