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네이버의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 ‘라인’의 경영권을 사실상 일본 회사 측에 넘기라고 압박을 가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외교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26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일본 총무성이 한일 기업이 공동으로 소유한 라인야후에 대해 지분 구조를 개선하라면서 행정조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한일투자협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라인에 대한 해킹으로 인해 약 51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이에 대한 책임이 한국 네이버 클라우드 측에 있으니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무성은 해당 업체인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이와 관련 일본 <교도통신>은 23일 일본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의 중간 지주회사 지분을 네이버로부터 사들이는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보도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절반씩 출자해 지주회사 A홀딩스를 만들었고 이 회사가 라인야후의 지분 64.5%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해킹을 이유로 한 국가의 정부가 민간기업을 향해 지분 변경을 지시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행정지도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간경제에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되는 일본 사회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지배 구조 변화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법적권리를 소멸시키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올인’했지만,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태도 변화는 고사하고 경제적인 영역에서 사실상의 기업 탈취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자이자 외교광장 이사장인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이에 대해 “기업의 개인정보 보안이 문제될 경우, 보안에 대한 기술적 취약성 보완조치를 명령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지분매각을 압박하고 있다. 지분매각이라는 행정 지도 자체도 황당하다”라고 평가했다.
김 전 원장은 “이 여파가 관련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한국 기술력을 가지고 일본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이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업계에서 ‘한국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영리를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에 지분 변경을 강제해서는 안된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이 해당 국가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한국 정부는 당연히 항의하고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나 주일 한국 대사관은 가만 보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우리가 먼저 컵에 물 절반을 채우면 나머지는 일본이 채우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일본은 그 반 컵을 마셔버리고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우물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일본의 맹목적 선의를 기대하면서 우리 역사를 팔아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기업까지 갖다 바칠 판”이라며 “정부는 일본이 시가 총액 25조에 달하는 영리기업 라인을 삼키려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한국 네이버가 라인 지분을 다 넘기고 나면 그때 주한 일본대사를 조치해 항의할 것인가? 언제까지 일본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기만 할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김 전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일굴종외교를 중단하고 국가안보실의 굴종외교 주역들을 경질하고 국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도록 외교 기조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기업을 탄압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라”라고 촉구했다.
일본의 행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못한 이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피고인 일본 기업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내비쳤다. 그는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일본의 호응이 없는데 한일관계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냐는 질문에 기업들이 처한 사정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당국자는 “일본 주식회사는 이사회에 주식을 가진 우익들이 와서 공격하거나 그런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대놓고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하 재단)에 뭘 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며 일본 기업들이 제3자 변제를 위해 정부가 마련한 재단에 자금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미래 기금(한일·일한 미래파트너십 기금)이다. 그렇게 유도하고 있는데, 기금이나 재단 등을 떠나 완전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가 언급한 기금은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가 주도하는 민간 기금으로, 여기에 일본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자는 것인데, 문제는 이 기금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배상을 지급하는 곳이 아니다. 한일 젊은 층 인재 교류, 산업 협력 강화 등이 기금 사업의 골자다.
재단이 아닌 기금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는 이 당국자의 발언은 일본의 호응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지난해 3월 6일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은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하면서 물컵의 반은 채워졌으니 일본 측이 나머지 반을 채울 것이라며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재단을 통해 일본 기업들이 갚아야 할 금액 및 이자를 대신 갚아주는 ‘제3자 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한 피해자 겸 채권자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부는 이들의 법정 채권을 없애기 위해 공탁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이마저도 지방법원들에 의해 불수리된 상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대위변제(제3자변제) 입각해서 진행하고 있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법적으로 잘 정리될 것으로 본다”라며 정부 해법안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그는 “지난번 정부에서도 대위변제 외에는 해결 방안이 없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안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하는 소위 ‘여소야대’ 국면이 만들어졌지만 외교 정책만큼은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그는 한국의 총선 이후 일본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한국은 선거에서 패해도 정권이 바뀌는 건 아니고 외교‧안보 분야는 대통령 리더십이 발휘되는 분야라 변동이 없을 거라고 일본에 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이 당국자는 한일 간 출입국 시 여권이 없어도 통행이 가능한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것이 많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도자를 욕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생활수준도 비슷하다”라며 “이런 두 나라 사이에서 여권을 가지고 왕래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유럽은 다 (여권 없이도) 왕래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 여권 없이 왕래한다든지 출입국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해서 내국인과 같은 기준으로 하면 어떠냐는 건데 일본 내에서도 상당히 공감대가 있다”며 “한일 간 공통분모를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이 당국자의 개인적인 구상이라면서, 한일 간 구체적 논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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