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에서 친(親)팔레스타인 시위가 벌어지면서 뉴욕타임스(NYT) 추산, 700명 이상의 대학생이 경찰에 체포됐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캠퍼스에서의 농성, 당국의 해산 명령 등 대학 관계자와 경찰이 시위에 대응하는 방법에 언론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는 ‘시위대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를 인지하는 것이다. 시위대가 요구하는 바는 대학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핵심 요구는 대학이 이스라엘과 연계된 기업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기업과 거리를 두고,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또한 대학 기부금 공개, 이스라엘 대학과의 학문적 교류 금지, 가자지구에 대한 휴전 지원 등도 포함돼 있다.
28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미 전역으로 확산시킨 뉴욕 컬럼비아대 시위대는 컬럼비아대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으로 이익을 얻은 기업에 대한 투자 자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명문대들은 학교가 보유한 막대한 기금을 여러 기관과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데, 컬럼비아대의 기부금은 136억 달러(약 18조7489억 원)로, 대학 내 투자 회사가 이를 관리한다.
컬럼비아대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단체 연합인 ‘컬럼비아 대학교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실시한 인종 차별 정책, 이후 인종 차별을 총칭하는 용어로 쓰임) 디베스트’는 이스라엘 정부와 거래하는 여러 무기 제조업체 및 기술회사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포함해 이들에 대한 모든 투자금을 회수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이들 기업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대량 학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이 학생단체 연합은 지난해 12월 투자 철회 위원회에 공식 제안서를 제출했다. 컬럼비아대 학부생은 지난주 투자금 철회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기업의 주식 매각 제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투표도 했다. 이후 컬럼비아대가 해당 제안을 채택하도록 요구 중이다.
◇ 텐트 농성 시위 학생 108명 연행 컬럼비아대, 과거에도 투자 철회 요청 시위
과거에도 컬럼비아대에서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요청하는 시위가 벌어진 적이 있다. 1980년대 컬럼비아대 학생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문제 삼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부터의 금융 지원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1983년 들어 관련 운동은 학생의 지지를 얻었으나, 대학 이사회는 거부했다. 결국 1985년 4월, 컬럼비아대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투자에 반대하는 시위가 3주 동안 열렸다. 당시 약 150명의 학생이 캠퍼스 건물 입구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결국 몇 달 뒤, 컬럼비아대 이사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셰브런, 포드, 코카콜라 등 미국 기업 주식 대부분을 매각했다. 당시 금액으로 약 3900만 달러(약 537억1860만 원)로, 컬럼비아대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4%였다. 이로써 컬럼비아대는 아이비리그 최초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버클리 캘리포니아, 존스홉킨스 등이 뒤를 따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는 1990년대 초에 끝났고 컬럼비아대는 2000년에 기부금 투자 관리자에게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 투자에 대한 자문위’를 설립했다. 해당 자문위는 학생, 교수진, 졸업생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투자 철회 제안서를 검토하는 절차를 검토한다. 컬럼비아대는 지난 10년 동안 학생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담배, 개인 교도소 운영, 화석연료 등의 분야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바 있다.
◇ 이스라엘 관련 투자 철회…“현실적으로 어렵고 생각보다 효과 미미”
컬럼비아대는 물론 코넬대, 예일대 등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역시 무기 제조업체에 대한 투자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2023년 중반을 기준으로 컬럼비아대가 이스라엘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액수는 136억 달러 수준이다. 시위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이익을 얻는 기업으로부터 전액 투자를 철회하라고 요구한다.
투자 철회는 액면으로만 보면 단순하다. 투자자나 기관은 비윤리적이거나 해롭다고 판단되는 활동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회사의 주식을 매각하기도 한다. 이는 윤리적인 투자를 지향하며, 기업이나 정부가 정책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문제는 대학이 보유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관련 지분을 매각한다고 해도, 실제로 전쟁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CNN은 시장 전문가들을 인용해 “지분 매각, 변화 요구는 효과적인 표현 수단일 수는 있지만, 기업의 행동과 시장 동향에 미치는 실제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부학장인 위톨드 헤니스는 CNN에 “연구에 따르면 주식 매각 캠페인과 주식 가치, 회사의 행동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대 시스템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한 대대적인 주식 매각 운동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업의 주가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사회적 책임에는 무관심한 투자자 및 국가로 주식과 기업 운영이 재할당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여기다 각 대학이 요구하는 이스라엘 관련 기업을 찾아내는 것 자체도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캘리포니아대 총장 출신인 마크 유도프는 CNN에 “이스라엘에서 누가 사업을 하고 있는지, 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때때로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시위대의 주장을 관철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 시위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역의 대학생들은 대학이 시위대의 요구 사항을 충족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컬럼비아대 행정부가 학생 시위대가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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