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중 임기 말 국정 지지도가 가장 낮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5년 차 4분기 직무수행 평가 평균값을 보겠습니다(한국갤럽). 14대 김영삼 6%, 15대 김대중 24%, 16대 노무현 27%, 17대 이명박 24%, 19대 문재인 42%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2016년 10월 24%였는데, 이 시점에 국정농단 파문이 일어났습니다.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확산하는 가운데 11~12월 지지도는 5%로 급락하고 2017년 3월 10일 탄핵 됐습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27%입니다(전국지표조사, 4월 29일~5월 1일). 선거 직전에 비해 10%P 정도가 떨어졌습니다. 참여정부의 임기 말 수준과 같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특성상 임기 말에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이 발생하는 건 어찌 보면 필연적입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가 3년이나 된다는 점입니다. 총선 전 예견됐듯 조기 레임덕이 현실이 됐다는 분석들이 나옵니다. 안 그래도 집권 초부터 인사·외교·대언론 등에서 드러난 무능과 불통 이미지로 20~30%대 지지율로 연명해오고 있던 참입니다. 비우호적 여론 환경과 여소야대 국회라는 힘겨운 국면을 윤석열 대통령은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요?
22대 총선이 끝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영수 회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무려 아홉 번째 요청이었습니다. 총선 패배 후 9일이나 지난 끝에 602일간 거부해오던 영수 회담이 겨우 성사됐습니다. 지난 2일 여야가 수정 합의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대통령실은 영수 회담의 성과라며 환영했습니다.
협치의 정치가 시작된 걸까요? ‘채상병 특검법’이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주도로 처리된 건 이태원 특별법 본회의 통과 후 불과 한 시간 만입니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취임 후 열 번째 재의 요구라고 합니다. 이마저도 이제는 당내 이탈표를 걱정해야 할 지경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습니다. 정권교체 열망으로 똘똘 뭉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협력할 의지도, 이유도 없습니다. 박찬대 원내대표의 강성 체제로 원내 진용을 갖춘 만큼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국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정국 주도권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국혁신당까지 가세한 23대 국회의 선명성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1차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레임덕을, 두 번째는 데드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조국 대표가 밝힌 바 있습니다. 데드덕(Dead duck)이라고 하면 권력이 공백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국민의힘마저 현 정부와 차별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다음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강화되겠죠.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검찰마저 대통령 부부의 등에 칼을 들이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남은 임기 동안 겨우 연명하는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5년 내내 여소야대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우리 정치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이 뒤늦게 영수회담을 열고 취임 2주년 기자회견도 준비하는 등 총선 성적표를 받아든 이후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시민이 윤석열 정부가 이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민주당의, 야권의 앞날은 집권의 희망으로 가득한 걸까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각 24%의 지지율로 퇴임한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습니다. 3김시대 청산과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건 노무현 후보, 여당 속의 야당을 자처하며 중도를 파고든 박근혜 후보의 존재감과 비전이 당시 정부에 실망한 민심을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계승보다는 차별화를 택했다는 점이 승리의 요인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40%대의 단단한 지지율을 유지하며 ‘레임덕 없는 유일한 대통령’으로까지 불렸습니다만, 집권 5년 만에 다시 보수 진영에 정권을 내주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정권이 연장되는 것도, 낮다고 해서 교체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Choose the Lesser Of Two Evils(차악(次惡)의 선택).”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두 번째로 맞붙는 미국 대통령선거 유행어라고 합니다. 2022년 우리 대통령선거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을 썼죠. 상대가 더 싫어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데는 채 몇 달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반감(反感)에 기대어 얻은 권력의 생명력은 딱 거기까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이재명 대표의 상대는 대통령만이 아닐 겁니다. 이미 여야의 많은 인물이 윤석열 정부 이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조기 레임덕 상황이니만큼 차기 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겁니다. 진영을 불문하고 인물경쟁력을 갖춘, 호감형 정치 지도자로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언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지 모릅니다.
지난 2000년 민주당 압승으로 총선이 끝난 후 4월 4주차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43%, 미래통합당 19%였습니다. 국민의힘이 크게 승리했던 2022년 지방선거 이후 6월 4주차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28%, 국민의힘 42%였습니다(이상 한국갤럽). 선거가 끝난 후 승리한 정당의 지지도가 우세한 흐름이 한동안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못 된 현재 시점의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29%, 국민의힘 31%입니다(전국지표조사, 4월 29일~5월 1일). 민주당은 이 신호를 잘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당보다 진보적인 이는 민주당이 진보적인 노선을 구현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중도 합리파는 과연 민주당이 대안 정치 세력으로 실력, 능력을 겸비한 당인가에 대해 의심한다.”
민주당이 2022년 지방선거에 패배한 후 구성한 새로고침위원회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의 진단이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이에 대한 대답 대신 정권심판의 깃발을 내걸고 윤석열 정부에 화가 나고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끝났습니다. 이제 민주당이 오래 끌어온 숙제를 풀어야 할 차례입니다. 202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시민들이 희망을 주는 비전과 유능한 정치라는 즐거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주길 바랍니다.
한국갤럽 5월 첫째 주 조사는 쉬었습니다. 현재 국정운영 평가와 정당 지지도는 같은 조사방법(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면접조사)을 사용한 전국지표조사 결과를 인용했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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