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붙박이(빌트인) 가구’ 입찰 과정에서 2조3000억원대 담합을 벌인 가구업체 8곳이 1억원~2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각 업체 대표들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최양하 전 한샘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4일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샘·한샘넥서스·넵스·에넥스·넥시스·우아미·선앤엘인테리어·리버스 등 8개 가구업체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했다.
각 가구 업체 임직원 11명은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최양하 전 한샘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법인들에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한샘과 에넥스에 벌금 2억원, 한샘넥서스·넵스·넥시스디자인그룹·우아미에 벌금 1억5000만원, 선앤엘인테리어·리버스에 벌금 1억원 납부를 각각 명령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 대부분이 자백하고 있고 각 가구업체 임직원이 일치해 담합 사실을 진술하므로 검찰 기소 내용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담합은 입찰 공정성을 침해하고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해 국민 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중대 범죄”라며 “이 사건처럼 장기간 진행돼도 당국이나 수사기관이 발견조차 하기 어렵고 얼핏 봐서는 건설자 외에는 피해자가 없는 것처럼 보여 그 위험성도 간과하기 쉽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들, 또 피고 가구 업체들은 건설사에 비해 열위한 지위에서도 생존을 위해 담합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입찰을 실시한 건설사들이 입은 피해가 그다지 크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담합에 참여한 기간, 횟수, 주도 여부, 담합으로 인해 낙찰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낙찰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감안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최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심 가는 정황이 다수 있기는 하나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부하 직원들이 전부 일치해 최 전 회장이 사건 입찰 담합을 알고 있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일부는 피고인 성격상 입찰 담합을 알았다면 특판 영업을 중단하고 관련 직원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며 “일부 현재 한샘에 근무하는 직원들까지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어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또 “최 전 회장이 결재한 일부 문서에 담합을 암시하는 단어나 문구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비대면 전자결제로 문서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일괄 결재한 흔적이 보여 그 사정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제된 가구 업체는 지난 2014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24개 건설사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신축현장 783건의 빌트인 가구 입찰에서 낙찰 예정자와 입찰 가격 등을 합의해 써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담합 규모는 2조326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 기업의 담합 때문에 가구 값이 부풀려졌고, 그로 인해 분양가가 오르며 아파트를 분양 받은 입주자들이 피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아파트 분양가는 땅값과 건축비를 기반으로 책정되는데, 빌트인 가구 가격은 건축비에 포함돼 분양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구 업체들은 재판에서 대부분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최 전 회장 측은 “퇴사(2019년) 후 담합 사실을 알게 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이번 사건은 ‘카르텔 형벌감면 지침(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한 업체의 자진신고를 받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 직접 수사에 착수한 첫 사례다. 카르텔 형벌감면 지침은 수사 착수 전후 가장 먼저 필요한 증거를 단독으로 제공하고, 관련 사실을 모두 진술하면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협조한 1순위 신고자에 기소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이에 따라 검찰과 공정위 양측에 1순위로 자진 신고한 현대리바트는 기소 면제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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