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율, 한국 전통 공예 옻칠 자개 칠보 헤리티지 요소 담다
채율 이정은 대표 “K-luxury 헤리티지 전통 브랜드 될 것”
2008년 백화점 브랜드로 론칭…점차 국내외 콜렉터, 백화점 vip 입소문 끝에 부띠크 성공적 론칭
인재상, 인품이 가장 중요…회사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이 있어야
“자연을 담아, 시간을 빛추다. (Be jeweled with Time)”
전통 수공예품 브랜드 채율은 전통 장인들의 기술과 지혜를 담고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여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전통의 가치를 현대에 되살리고 있다. 주얼리와 식기류부터 오브제 및 가구까지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인지도를 넓혀가고, 국내외 컬렉터와 백화점 VIP 그리고 유명 연예인 혼수품, 미국 대통령 귀빈 선물로 유명세를 갖고 있는 채율은 전통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소목장, 옻칠장, 나전장을 중심으로 은 대공 장인, 칠보 작가와 상상력을 더하는 젊은 작가와 디자이너가 협력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전통 수공예품’을 탄생시키는 채율은 압구정 현대백화점, 롯데 호텔, 대구 백화점에 입점을 했고, 전 연령층이 함께 할 수 있는 전통공예체험부터 현대미술작가의 갤러리가 있는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가 있다.
‘전통공예품에는 장인이 혼을 불어넣은 끝에 완성된 물건으로서의 진실성이 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하는 채율의 이정은 대표는 희미해져가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코리안 헤리티지인 전통공예의 미래를 지켜나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빛나는” 슬로건을 가진 헤리티지 브랜드 채율과의 인터뷰는 앞으로 한국 전통 문화와 전통 공예품이 해외에서 더 빛이 나는 글로벌 한국발 럭셔리 브랜드, ‘K-luxury’가 될 것이 예비되는 시간이었다.
다음 이정은 대표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Q. 채율과 대표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채율 이정은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인, 작가, 디자이너분들과 코리안 헤리티지를 명품 브랜드로 녹여내 한국발 럭셔리 브랜드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이지만 한 기업가의 아내이자, 두 딸아이의 엄마이자, 삶이 채율이 되어버린, 열심히 아직도 꿈을 향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Q. 채율이라는 브랜드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채율은 오래전에 채색 채, 법률 율 이란 뜻으로 “색채를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 리브랜딩으로 추가된 영문 슬로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헤리티지 브랜드란 뜻으로 영어로는 “Be jeweled with time”입니다.
Q. 창업 당시 “해외 명품 브랜드 중에는 자국 전통문화를 브랜드에 녹여낸 경우가 많은데, 국내 브랜드에서는 그런 예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라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봤습니다. 창업을 하게 된 계기와 구체적인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1988년, 제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젊은 날 당시에도 장인들의 기술력 혹은 기인처럼 실력 있는 공예가들의 작품들을 꾸준히 수집해오면서 외국인분들께 한국을 대표할 만한 차별화되는 귀한 것을 선물하셨어요. 그러던 20세기 후반 맥을 이어줘야 할 작가와 장인들의 작품들에 대한 수요가 줄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1997년 IMF 전후로 주요 유통망인 백화점에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21세기 대량생산 시대가 되어 수입 브랜드들에 묻혀 그 수요가 줄어들며 경제난으로 줄어든 장인들 그리고 그 맥을 잇던 한국의 전통기법이 사장됨을 아쉬워하셨어요.
아버지는 두 딸인 저와 언니가 미술에 적성이 있는 것을 보시고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보다 함께 잊혀가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한국발 럭셔리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어요. 늘 아버지는 저를 8살 때부터 해외에 함께 데리고 나가시면, 명품 주얼리&와치 브랜드 역사를 알려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중 공예를 전공한 언니와 미술사학과 전통미술을 공부하던 제가 휴학 및 졸업과 동시에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서 지내게 되면서 럭셔리 시장을 분석해 볼 수 있었고 박물관에 유물로 있던,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사용하던, 보석과 같은 한국 공예의 ‘옻칠’ ‘자개’ ‘칠보’와 같은 헤리티지 요소들이 충분히 해외 시장에서 빛을 바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뉴욕에는 한국의 큰 기업들은 진출했을지 몰라도 5th Ave나 메디슨 에비뉴와 같은 명품거리에 놓일만한 코리안 럭셔리 헤리티지 브랜드는 없었고 내놓으라 하는 박물관에서의 전통은 외면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준비 끝에 채율은 2008년 백화점에 브랜드로 론칭되었어요.
Q. 사업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 내셨습니까?
20대부터 어떻게 보면 일찍 운이 좋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일맥상통하여 하던 공부가 영감과 영향을 많이 주어서 남들보다 나의 꿈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이였고, 저가로 수익성을 내던 브랜드들이 난무할 때 즉, 국가 브랜드 인지도가 약할 때부터 한국 전통의 고급문화를 한국발 럭셔리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는 것은 당시에는 무모해 보였을 것이에요.
그리고 장인분들도 대다수 50-70대 분들일 뿐만 아니라 유통에 계신 큐레이터 세일즈 포지션 계신 분들도 연륜이 있으셔야 판매를 할 수 있었기에 (당시에는) 팀원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펼치기에도 힘들긴 했어요. 앞선 사례가 없었기에 실패를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범하게 거쳐 가야 할 것들을 이른 나이에 하게 된 대표라는 자리로 인해 많이 놓쳐서 부족한 것도 많고, 사람들에게도 쉽게 상처를 많이 받았었던 것 같아요.
아트와 럭셔리 시장은 무척 오랜 시간 동안 자본과 시간이 들어가는 싸움이라 여느 무명의 작가처럼만큼이나 뒤에서 브랜드를 유명해지게 띄우고 싶던 대표로서 아무도 한국의 전통적인 명품 가치를 몰라보지 못했던 그 힘든 시간들 속의 버팀목으로써 늘 꿈을 잃지 않는 동기부여는 창업에 비전을 보시고 도와주신 아버지와 IT벤처기업을 창업한 남편의 영향이
컸던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제 꿈이기에 여기까지 왔지만 극복하게 된 것은 일체유심조와 같은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Q. 2017년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중앙일보에 연재하셨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인간문화재, 장인을 발굴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채율의 장인들을 모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작년에 오픈하게 된 서울공예박물관에 가보면, 인간문화재 지정된 장인분들 이외에 야인같이 역사에 기록을 세울만한 나전칠기를 만든 장인과 작가분들이 계시지만 21세기에 그 맥을 진정으로 잇는 브랜드는 채율이 유일무이한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옻칠, 칠보와 같은 물성으로 작업하는 작가라면 소통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작업자가 아닌 디자이너, 큐레이터, 장인, 작가님들을 모두 전두지휘 해야 하는 위치여서 채율의 브랜드 탄생 취지가 ‘모두를 설득하는 힘’을 같지 않았을까요?
저 같은 MZ세대가 일찍이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한국의 헤리티지 전통을 담아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진심이 전달되어 진정성 있는 20세기 예술가들이자 현존하는 60-80세 인간문화재 및 장인 작가분들이 끈기와 인내심으로 협조해 주실 때 희열을 느끼니 이는 제 천업 같아요.
Q. 압구정 현대백화점, 롯데 호텔, 대구 백화점 그리고 20대부터 40대까지 겨냥한 가로수길 시그니처 샵에서 채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채율이 백화점에 입점을 하고 점차 확장할 수 있던 과정과 비결이 궁금합니다.
2008년 운 좋게 특화된 MD를 찾는 바이어들 눈에 띄어서 백화점 부띠크를 가져갈 수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이게 Made in Korea가 맞냐”, “모든 제품이 100% 수작업이라고 해도 왜 이렇게 비싸느냐”, “전시장, 박물관 아니냐”며 구경만 하고 나가시는 고객 분들이 계셨고, 초기 브랜드 포지셔닝이 코리안 럭셔리 브랜드로 내세워서 팔기에는 너무 앞서 나갔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점차 해외 귀빈 선물, 결혼 예단과 같이 ‘선물 포지셔닝’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해서 국내외 콜렉터, 백화점 vip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주얼리, 식기류 뿐 아니라 오브제 및 가구까지 프로덕트 라인이 커져서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인지도를 넓혀 나갔습니다. 한 부띠크가 성공적으로 론칭이 되니, 그다음은 주요 호텔 로비에 해외 명품이 아닌 채율 부띠크를 내달라는 러브콜이 오게 됐습니다.
Q. 함께하고 계신 직원분들은 몇 명입니까?
우리에겐 자산 같은 아뜰리에에 속하시는 장인 선생님, 작가님들, 유통 관련 백화점, 호텔, 갤러리 큐레이터들, 백 오피스에 있는 디자이너들, 세일즈&마케터까지 인하우스 팀원은 총 30명 내외 입니다. 근래, 업계에서 협력 파트너 외부 업체와 협업도 하게 되었고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추가로 채용중에 있어요.
Q. 생산부터 유통 그리고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채율’은 어떤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처음은 구인하는 게 어려웠지만, 특별히 HR팀은 없어도 이제는 브랜드 인지도가 국내외에서 둘 다 생겨 이력서를 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분야마다 제가 모두 면접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나이나 경력과 학벌보다도 이 사람의 진정성 있는 회사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Q. 인재를 채용할 때 특별히 중요하게 보는 점이 있으십니까?
인품이요.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상호작용이 되어야 하는 세상에서 성격이 모나거나, 어느 일이 주어지든 실수나 위기는 오는데 부정적인 사람들은 어느 조직이든 튀기 쉽기 때문에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밝은 사람을 좋아해요.
Q. 직원들을 어떻게 성장시켜가고 있습니까? 특별한 조직문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십 년 넘은 중소기업 대표들은 모두가 공감할 테지만 사람 관리가 가장 어렵습니다. 기업은 조직이 함께 성장시키는 것인데, 100명 미만의 기업은 특히 같은 방향으로 애사심을 느끼며 뭉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브랜드는 제조업 특성상 분야별 인재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나이도 다르기에 아직도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연봉이 월등히 높은 기업이 아닌데도 자신이 좋아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감사해요.
제가 추구하는 기업문화 역시 성취감과 보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각자 그 업에 자부심을 갖고 행복한다면 그 개인이 모여 훌륭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굉장히 팀원들에게 나이 불문 편안하게 대하다 보니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처럼 채율 브랜드의 찐팬이 팀원들부터 시작되어야 할 정도입니다. 어쩔 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직은 제가 곧 채율을 대표하니까요.
Q.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 부띠크들, 갤러리 직원들이 아무래도 vip나 국내외 콜렉터들만 상대하다 보니, 여성 지원자가 많은데, 그중 40-50대 경력단절녀도 많을 것이고 주중에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 지원한 아르바이트분들도 많은 편입니다.
요새는 싱글, 딩크 분들도 많겠지만 저 포함해서 출산 후 육아로 여전히 여자들이 사회에서 일하기 힘든편 인데, 늘 자신의 행복과 꿈을 다시 좇아 부족한 내 편에 서서 진심으로 플레이어로 뛰어줄 때 무척 고마웠어요.
그리고 2000년 생 포함하여 제 자녀들이 채율을 기억하고 작품들을 갖고 싶다고 할 때, 이것이야말로 대물림의 가치를 실현하는 회사를 키워왔다고 느낄 때, 무척 보람차요. 또한 채율과 협업하지 않은 외부 유통팀이나 장인 작가 선생님들도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꿋꿋하게 오랜시간 길을 걸어온 저를 응원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행복했죠.
Q. 앞으로 기업의 향후 계획과 비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채율은 반드시 해외에서 더 빛이 나는 글로벌 한국발 럭셔리 브랜드가 될 것에요. 버티다 보니 이제 타이밍이 왔어요. 전 세계가 한국 럭셔리 마켓 및 아트 시장이 궁금하여 ‘K-design’, ‘K-art’ 가 부흥되는 시점, ‘K-luxury’ 헤리티지 전통의 브랜드가 세계 속에서 공감을 형성할 날이 더욱 빠르게 올 것이라 믿어요.
Q.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와 일터에서 일하는 경영자와 리더분들을 위해 격려나 조언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리더는 쉽게 말해 마지막 책임자죠 회사는 결국 대표의 역량만큼 성장한다지만 대표의 능력이 HR인것만큼 조직이 성장시켜요. 비록 당장 시장의 흐름과 트렌드가 맞지 않더라도 대표 자신부터 회사와 조직의 비전을 확신하고, 10년을 버텨 성장시키면 그 어떤 장애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와요. 꼭 자본금이 전부는 아니에요.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집중하기보다 어떠한 부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집중하며 자신의 꿈과 창업의지를 확신한다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