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눈매에 오묘한 미소가 인상적인 배우 전종서. 그가 지닌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에는 거부하기 힘든 굳은 심지가 새겨져 있다. 어쩌면 전종서에게 자꾸만 다른 얼굴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은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8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으로 데뷔한 전종서는 속내를 읽기 힘든 해미를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바람에 자유로이 몸을 맡기며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의 춤을 표현한 전종서의 몸짓은 우아하며 매혹적이었다. 해가 모습을 감춘 하늘을 배경으로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움직이는 실루엣은 감히 ‘버닝’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데뷔 5년 차의 배우 전종서는 틀을 깨는 시도를 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왔다. 데뷔작 ‘버닝’으로 강렬한 인상을 안겨줬던 전종서는 2020년 이충현 감독의 ‘콜’에서 연쇄살인마 오영숙 역을, 드라마 ‘몸값'(2022)에서 생존을 위한 악바리 근성을 보이는 박주영 역을,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2022)에서는 도쿄 역을,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2022)에서는 폐쇄병동을 탈출한 기이한 능력 지닌 모나를 연기했다.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유독 피비린내 나는 장르물이 많다는 것이다.
당돌한 말투와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여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2021)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찡그리거나 섬뜩한 표정을 보여주곤 했다.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2023)에서도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는 복수에 사활을 건 캐릭터 옥주를 맡았다. 친구 민희(박유림)의 죽음으로 인해 옥주는 지치지 않는 괴물처럼 앞만 보고 나아간다. 민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최프로(김지훈)을 죽이기 위해 맨몸으로 달려드는 무모함도 엿보인다. ‘발레리나’는 전작 ‘콜’에 이어 호흡을 맞춘 이충현 감독의 작품. 전종서는 ‘발레리나’의 감독 이충현과 3년간 교제하며 공개 연애 중이다.
하얀 피부에 빼곡하게 박힌 주근깨와 먹잇감을 찾듯 반짝이는 눈빛, 순수 악을 보여준 ‘콜’과 더불어 ‘발레리나’를 통해 이충현 감독과 협업하며 전종서 하면 강렬한 캐릭터라는 수식어를 만들기도 했다. 더욱이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값’을 장편화한 티빙 드라마 ‘몸값’에서 불법 장기매매를 하는 흥정 전문가 주영으로 냉철하면서도 자비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단편과는 달리 재난 상황이 도래하면서 무너진 건물에서 죽고 죽이는 생존 게임을 하면서 끈질긴 생존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강렬한 장르적 색채와 스타일리시한 이미지에 강한 이충현 감독과의 협업은 전종서에게 득일까, 실일까. ‘발레리나’가 공개된 이후, 옥주의 복수 서사에 극과 극의 평가가 나뉘고 있다. 전작부터 서사의 층이 얇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이충현 감독이 ‘발레리나’에서는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미장센으로 이야기 대신 이미지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발레리나’ 속에서 전종서는 몸을 날리는 액션과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핏방울로 감정적 동화가 되기에 충분한 독보적인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전종서는 양날의 검을 지닌 장르물 안에서 새로운 변주를 시작해야 할 때다. 물론 20대 여배우 중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하며 끊임없는 도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피 묻은 전종서 대신 일상의 얼굴을 보여줄 시기가 도래한 듯하다. 전종서 역시 인터뷰를 통해 “나의 재미나 욕심에 의해서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데, 대중들의 취향이나 그분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에 대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보여 드릴지 고민이 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배우는 다양한 얼굴, 배역을 연기하는 사람이다. 한 분야나 장르에서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테지만, 어째서인지 전종서에게는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언뜻 보여줬던 러블리한 모습만이 아니더라도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전종서의 얼굴을 대중들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차기작 드라마 ‘우씨황후’에서 전종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전종서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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