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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확전 가능성에 국제유가가 꿈틀대면서 물가 상승이 한국 경제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우리 수출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물가가 오르면 내수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부담이 커지면 고금리 기조가 지속돼 한국 경제 전반을 짓누르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1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종가 기준)은 배럴당 87.69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4.78달러(5.8%) 급등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도 전 거래일 대비 4.89달러(5.7%) 오른 배럴당 90.89달러로 마감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의 군사적 충돌 확대가 중동 지역 원유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이·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이란이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35%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통상적인 전쟁 프리미엄 20달러를 크게 웃돌면서 (유가가) 최고 15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70%를 넘는 점을 고려하면 아·팔 전쟁 확전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물가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다. 이는 지난 4월(3.7%)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 7월 -25.9%를 기록한 석유류 가격 하락 폭이 8월(-11.0%)과 9월(-4.9%) 대폭 줄어들며 물가를 끌어올린 탓이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석유류 가격의 하락 폭이 둔화했다”며 “국제유가에 따라 앞으로 (물가 흐름이)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의 실질구매력을 떨어뜨리면서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 내수에 악영향을 준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망치가 83으로 집계됐다. RBSI는 유통기업의 경기 판단과 전망을 조사해 지수화한 지표로 100 이상이면 다음 분기 소매유통업 경기를 전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대한상의는 “국제유가와 환율이 급등하고 먹거리, 교통·전기 요금마저 줄인상이 예고되면서 소비시장 위축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물가 상승은 정부가 긴축 통화정책을 유지시키는 요인이 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5%로 올린 후 8월까지 5회 연속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부진한 경기 흐름을 고려하면 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통화당국은 고금리 기조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한은이 이달 금통위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아·팔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물가 부담을 가중시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이로 인해 민간 소비 둔화와 투자 부진이라는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최근 발간한 ‘경제동향 10월호’를 통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 소비자물가 상승 폭이 확대되면서 소비 여력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통화긴축 장기화 기대가 확산됨에 따라 국내 시장금리도 상승하면서 경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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