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1000~3000명 확대 증원안은 그간 의정 간 관련 논의를 완전히 뒤로 후퇴시켰다는 평가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대 정원을 300~500명 증원하는 안에 대해 합의를 이뤘었다. 당시 의협 내 강경파는 이필수 의협 회장 탄핵안까지 들고 나왔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필수의료의 위기가 봉착한 만큼 “2025년부터 의대 정원 확대가 일부 이뤄질 것”이란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의협 한 임원은 “그런데 가짜뉴스인 줄로만 알았던 정부의 파격 증원안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고 이는 의정 간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라며 “1년여간 이어진 의대 증원 논의를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렸다. 내부에선 필수의료 지원책이 나오기 전까지 단 1명의 의대 정원 증원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의협은 정부가 구체적인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조만간 발표한다면 총파업 등 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급한데…모든 과정이 갈등”
소멸하고 있는 필수의료·지방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의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모든 과정이 갈등의 연속일 전망이다. 의대 정원을 얼마나 확대할지에 대한 논란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인력을 수급할 것인지에 대한 진통도 불가피해서다. 정부의 고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우선 의료계 반발이 확산하자 정부는 19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한차례 미루기로 했다. 다만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8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사인력전문위원회에서 “정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현실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의사 수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인 만큼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찬성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지역 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를 함께 추진해야 지역·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원 확대 방식을 두고 난항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정부·여당은 의료계 반발과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기존 소규모 의대나 지방 국립대 의대 위주로 정원을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야권에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쉽게 가진 않을 것”(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란 말도 나왔다.
의료계에선 의료 인력이 귀해지는 시대에 의대 신설을 통한 증원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다고 말한다. 의대 신설을 위해서는 100명 이상의 기초·임상의학 교수진과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급의 부속병원이 필요해서다. 의료계 관계자는 “요즘 의학계에선 오히려 교수를 안 하겠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인력을 구할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레지던트) 수급조차 어려워지고 있는 지방 의대에선 “우리부터 먼저”라고 호소한다. 한 지방 의대 관계자는 “필수의료가 무너지면서 현재 흉부외과 같은 경우는 1년 차 레지던트가 공백인 상태“라며 ”지방 의대 인원을 우선 늘려놔야 비급여 진료 쏠림 현상에서도 필수의료에 종사할 인력 증가가 이어지는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동헌 경북대병원장·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대 정원을 지금부터 늘려도 늦을 정도”라고 했었다.
과학계에서는 반발 조짐이다. “의대 정원 파격 증원이 가시화되면 우수 인재 유치가 더 힘들어질 것”(서울권 사립대 이공계열 A교수)이라면서다. A교수는 “이공계열 진학 기피는 불 보듯 뻔하고 기존 연구자들마저 의학계열 진입에 나서려고 할 것”이라며 “의대 블랙홀로 인해 여러 과학 부문에서 국가 안보 위협이 나타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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