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6년 만에 처음으로 5%를 돌파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동결’ 메시지를 던진 것이 금리를 자극했다. 최근 금리 급등이 긴축 효과를 나타내면서 추가 긴축 가능성을 낮게 점쳤던 시장에서 경계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여전히 탄탄한 고용·소비지출에,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이 변수로 떠오르면서 일각에서는 내년 하반기까지 피벗(금리 인하, 정책 변환)이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파월 발언에 美 국채 10년물 금리 5% 돌파
19일(현지시간) 금융 데이터를 제공하는 LSEG 아이콘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오후 5시께 연 5.001%를 기록했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 위로 올라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강력한 경제지표와 Fed의 고금리 장기화 예고로 지난 8월말부터 금리가 본격적으로 급등한 이후 심리적 마지노선인 5%까지 돌파한 것이다. 같은 날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5.16% 선으로 전거래일 대비 하락했으나, 여전히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금리 급등에 따라 뉴욕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블루칩 중심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0.75% 내렸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각각 0.85%, 0.96%의 낙폭을 기록했다.
파월 의장이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강력한 경제지표를 지적하며 추가 인상 여지를 남긴 것이 국채 가격을 떨어뜨렸다. 파월 의장은 이날 뉴욕이코노믹 클럽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다”며 “추세 이하의 저성장, 노동시장 완화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추가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제가 큰 어려움 없이 5%대의 높은 금리를 소화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현재 정책이 너무 긴축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채금리 상승세와 관련해서는 “국채금리 상승으로 금융 여건이 긴축됐고, 이런 변화는 통화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금리 급등이 추가 금리인상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금리 급등에 따른 연착륙 기대감은 이 같은 발언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Fed는 현재 5.25~5.5%인 기준금리를 연내 한 차례 더 인상한다고 예고했으나, 최근 국채 금리 급등으로 추가 긴축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Fed 안팎에서 제기됐다. 시장은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1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전, 발언이 제한되는 블랙아웃을 앞두고 파월 의장이 연단에 선다는 점에서 이날 발언을 주목해왔다.
최근 공개된 경제 지표는 파월 의장의 말처럼 견조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앞서 공개된 미국의 9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해 시장 전망치(0.2%)를 크게 웃돌았다. 누적된 긴축, 초과저축 고갈, 학자금 대출 상환 개시 등을 이유로 미 소비가 둔화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과는 달랐다. 이날 공개된 주간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외에도 국채 수요 감소가 금리 급등에 기름을 부었다. 미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26조달러로 8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났다. 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반등 우려도 국채 금리 상승의 이유로 꼽혔다.
월가서는 11월 동결 전망 우세
월가에서는 파월 의장이 매와 비둘기(통화완화 선호) 중간에서 ‘선택지’를 열어뒀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매파 발언과 함께 ‘불확실성’과 ‘신중한 진행’ 등을 언급하면서 단기적으로는 동결을 예고하되 경제 지표에 따른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평가다. 트레이드스테이션의 데이비드 러셀 담당은 “파월 의장이 선택지를 열어둔 채 어느 쪽이든 더 명확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매크로폴리시 프로스펙티브스의 로라 로즈너 파트너는 “파월 의장은 올해 4분기 경제가 냉각될 것으로 보고 있고, 국채 금리 급등이 일부 역할을 하고 있다”며 “11월 동결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가는 당장 다음달 열리는 FOMC는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현재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오는 10월31일~11월1일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99.9% 반영 중이다(미 동부시간 오후 8시45분 기준). 전날 93.4%에서 6%포인트 넘게 올랐다. 고금리 장기화 전망과 별개로, 당장 금리인상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인디펜던트 어드바이저 얼라이언스의 크리스 자카렐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전날 공개된 베이지북에서도 경제 둔화가 시사됐음을 언급하며 “파월 의장이 긴축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올해 남은 기간 동결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인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CFRA 리서치의 샘 스토발 최고투자전략가는 “Fed가 (긴축적) 상황을 바꾸거나 명확히 할 것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 오늘 파월의 발언은 아직 할일이 더 많이 남았음을 시사한다”며 “Fed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하반기가 되기 전까지는 금리인하를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이 소비지출(감소)뿐 아니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급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추가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30년 모기지 금리는 이번주 8%를 돌파해 2000년 이후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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