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IN 뮤지엄]
왼-에드바르 뭉크 젊었을 적 사진. 출처: 게티 이미지, 오-<절규>, 1893, 뭉크의 대표작.
예술가들에게 감정은 창조의 원천이다. ‘질투’라는 강렬하면서도 파멸적인 감정이 예술가의 심장에 불을 지른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와 함께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켜 걸작이 탄생하기도 한다. 에드바르 뭉크(Edvar Munch)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화가이다. <절규>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불운했던 삶 전반에서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뭉크가 먹고 자란 ‘검은 그림자’
소련 출신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영화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말을 한다. “예술가는 평생 어린 시절을 먹고 산다. 어린 시절의 모습과 형태가 예술의 본질을 결정한다.” 뭉크의 예술도 그러하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와 누나를 여의었다. 그가 5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14살에는 누나도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여동생이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아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어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며 이후에 여자 형제들까지 잃은 뭉크는 성인이 된 이후에 여자들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뭉크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빈민가의 의사였는데, 의사임에도 아내와 딸의 병을 치유할 수 없자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해 그에게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뭉크는 류머티즘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가족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평생 죽음에 대한 병적인 공포감과 과대한 망상으로 인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가 생애 전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불안, 우울, 절망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었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다.
첫사랑이었던 바람둥이 유부녀
스무 살이 된 뭉크는 생애 처음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준 여인을 만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해 주던 프리츠 탈로의 형수이자, 사교계의 여왕으로 불리던 22살의 밀리 탈로(Milly Thaulow). 뭉크가 그녀를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유부녀였지만 그녀는 보헤미안 기질이 강했기에 여러 명의 애인을 동시에 사귀고 있었다. 뭉크 역시 그중 한 명이 됐는데 갓 성인이 된 뭉크에게 탈로와의 사랑은 중독적이고 강렬했다. 그녀가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질투가 났지만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곁을 떠날 수 없었다. 6년간 순정을 바쳤지만 동상이몽이었다. 탈로에게 뭉크는 수많은 애인 중 하나였고 시시하게 느껴지자 그를 떠났다. 만나는 동안에도 의심과 질투심, 절망감을 끝없이 느껴야 했던 뭉크는 크게 상처를 입고 좌절한다.
한동안 괴로움에 허덕이던 뭉크는 이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내는데 이때 탄생한 작품이 ‘흡혈귀(원제: 사랑과 고통)’이다. 그림 속 빨간 머리를 한 여자는 남자의 목을 물고 있는 듯 보인다. 남자는 잿빛이 된 얼굴로 그녀의 품 안에서 목을 내어준다. 언뜻 보면 포옹하는 듯 보이는 남녀의 주변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뭉크는 한 폭의 그림 속에 자신이 겪은 첫사랑의 기억과 거기서 느꼈던 감정을 표현했다. 흡혈귀처럼 보이는 여성은 피를 원한다. 그녀에게 목을 내어주면 남자는 고통받지만 대신 그 품에 안길 수 있다. 탈로와의 관계는 흡혈귀와 인간의 관계처럼, 피를 다 뽑아먹으면 흡혈귀는 떠나고 남은 인간은 죽고 마는 끝이 정해진 파멸적인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화가에게 색깔은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뭉크에게 있어 빨간색은 위험과 경고를 상징하는 색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그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여성들을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사랑했던 소꿉친구가 절친과 결혼하다
몇 년 뒤 뭉크는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다. 거기서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술집을 가게 되는데 어릴 적 소꿉친구였던 다그니 유엘(Dagny Juel)을 만나게 된다.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베를린에 온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에 많이 그려진 ‘마돈나’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외모와 세련된 화술, 지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뭉크는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됐는데 유엘이 뭉크의 눈에만 매력적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뭉크는 베를린 문학 모임에 유엘과 동행하게 되는데 뭉크의 친구 두 명도 유엘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와 폴란드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프자비체프스키(Stanislaw Przybyszewski)가 그들이다. 이들과 뭉크는 예술적인 감성을 공유하며 격려해주는 사이였는데 졸지에 세 친구는 한 여자를 동시에 짝사랑하게 된다.
왼-<질투>, 에드바르 뭉크, 1896년, 뭉크 미술관. 오-<이별>, 에드바르 뭉크, 1907, 뭉크 미술관
세 친구 중 유엘의 남자가 된 것은 프자비체프스키였다. 두 사람은 1893년에 결혼하게 됐고 뭉크는 질투심과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이때의 감정을 <질투>라는 제목의 다작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가 그린 제목이 ‘질투’인 작품은 알려진 것만으로 11점이 넘는다. 왼쪽의 그림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한 남자가 텅 빈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뒤편에는 붉은색 옷을 입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껴안으며 키스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장면은 그가 자신의 절친과 소꿉친구의 관계를 상상하며 그에 질투심을 느끼는 본인을 표현한 것이다.
오른쪽 그림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한 남자는 슬픈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그 아래에는 남자의 심장에서 나온 듯한 붉은 피가 주위에 고여있다. 남자의 머리 뒤편으로 마치 그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 검은 기운이 세어 나가고, 그 옆에 어딘가로 떠나는 듯한 가벼운 형체의 한 여자가 그 기운을 흡수해가는 듯하다. 제목이 ‘이별’인 이 작품은 뭉크가 유엘과의 관계가 끝났음을 느끼고 겪었던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생의 향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연인이 쏜 총에 맞아 손가락을 잃다
한동안 좌절에 빠졌던 뭉크는 툴라 라르센(Tulla Larsen)과 교제하게 된다. 툴라는 그동안 뭉크를 떠나 상처를 주었던 여자들과는 달랐다. 툴라는 그보다 4살 많은 연상녀로서 예술 방면에 해박하고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뭉크와 깊은 관계를 지녔지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녀는 뭉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결혼을 요구했다. 점점 툴라를 멀리하는 뭉크에게 툴라는 자살하겠다고 협박한다.
툴라의 자살 예고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갔는데 툴라는 권총을 든 채 뭉크와 대치했다.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였고, 그녀는 손에 쥔 권총을 뭉크를 향해 겨눈다. 승강이 끝에 갑자기 총이 발사되면서 뭉크의 왼쪽 3번째 손가락을 관통했고 그는 왼손 중지를 잃고 만다.
그는 이때의 기억 역시 그림으로 표현했다. 붉은색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림 속 남자는 심장이 다쳐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제목과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남자를 죽인 살인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로 보인다. 연인이 쏜 총에 손가락을 맞아 손가락을 잃게 된 것은 여러모로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에게 있어 여자는 세 종류로 분류됐다. 금발의 하얀 옷을 입은 천사 같은 여인. 뭉크는 이런 여인을 꿈꿨지만 그의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얼굴 없이 표현됐다. 실체 없는 존재, 환상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한편, 그 옆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당당한 자세로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옷과 머리까지 빨간 여자는 강렬하지만 그만큼 그를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팜 파탈 같은 여성을 상징한다. 검은색 옷을 입고 마치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듯 홀로 갇혀서 표현된 여인이 있다. 창백하고 파리한 여자의 눈 주위까지도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까맣다. 엄마와 누이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여인들을 표현한 것이다.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강렬한 색채, 율동하는 듯 굽이치는 선, 미묘한 형태의 왜곡. 뭉크의 작품은 단 번에 그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지금은 표현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그도 한때는 눈에 보이는 풍경만을 묘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생 클루 선언’ 이후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다짐했다. “나는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 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도 생생하고 짙은 감정이 느껴진다. 생애 전반을 지배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과 치부까지 드러내며 캔버스 앞에서 누구보다 솔직했던 뭉크. 그의 작품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心血)이다.
-뭉크의 회고록 中-
글 = 썸퍼 썸랩 인턴 에디터
감수 = Tim 썸랩 에디터
sum-la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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