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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공중전화부스인지 몰랐어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6번 출구 인근 버스정류장 옆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힐끗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이들의 눈길이 닿은 곳은 한 공중전화부스. 부스 안에는 심폐소생술 학습용 마네킹과 학습영상이 비치됐다. 몇몇 시민들은 해당 마네킹을 눌러보거나 부스 주변을 둘러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공중전화를 사용할 일이 없어졌고 자연스레 공중전화부스도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공중전화부스가 상당하다.
이렇게 버려지다시피한 공중전화부스가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심폐소생술 학습공간으로 활용되고 현금자동인출기(ATM)가 들어서는가 하면 전기차 충전소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머니S가 다양하게 변신한 공중전화부스를 찾아봤다.
심폐소생술 무인학습 가능한 체험공간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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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방재난본부가 KT링커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지난 9월 광화문역 공중전화부스에 심폐소생술 교육을 위한 무인안내기를 설치했다. 무인안내기 프로그램은 이론교육(3분), 체험모드, 평가모드, 랭킹모드 등으로 구성됐으며 가슴을 누르는 속도, 압박·이완의 정도 등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게임 모드에서는 친구·가족들과 CPR 대결이 가능하다.
기자도 직접 체험해봤다. 부스에 들어가 스크린을 터치하자 학습영상이 시작됐다. 체험 모드에서는 동작 영상을 보여주면서 따라하도록 유도했다. 평가모드를 눌러 직접 심폐소생술을 해봤다. 랭킹모드를 터치하면 CPR 성적이 50위까지 표시됐다.
해당 공간에 대해 시민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여·50대)는 “공중전화부스가 이런 식으로 활용된 건 처음 본다”며 “최근 사건·사고가 잦은데 응급처치 학습·체험을 위한 안내기를 설치한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 동네는 공중전화부스가 철거됐다”며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공중전화부스를) 활용하지 않으면 철거될 텐데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고 강조했다.
B씨(남·60대)도 “공중전화부스에 이런 게 설치된 건 처음 봤는데 공간 활용을 잘했다”며 “공익적인 목적으로 하는 건데 홍보가 잘 안된 게 안타깝다. 홍보가 더 잘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폐소생술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C씨(여·40대)는 “공간을 이런 식으로 활용했다는 게 유익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여서 관심이 갔다”며 부스 앞을 서성였다.
근처 직장에 다니는 D씨(남·30대)도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외국인들이 (무인안내기) 체험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ATM·공유 배터리 충전기… 작은 공간에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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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 활용을 시도하고 있어요.”
KT링커스는 지난 2011년 공중전화부스에 IBK기업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설치한 뒤 다양한 공간플랫폼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륜전기차 공유 배터리 스테이션의 경우 지난 2020년 12월 부산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여러 업체와 손잡고 시도한 사업이다. 이곳은 다 쓴 배터리를 반납해 충전하고 충전이 완료된 배터리를 갈아끼우는 식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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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링커스 관계자는 “이렇게 활용되는 부스가 전국에 대도시 위주로 280여대 정도”라며 “전국적으로 깔리는 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공중전화부스는 전기자동차 충전부스, 휴대폰 휴대용 배터리 대여 공간 등으로 활용된다.
그는 “공간플랫폼 사업은 협력사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진행된다”며 “IBK기업은행의 ATM 설치도 길거리 점포사업 운영을 위한 장소를 (기업은행에서) 요청해서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심폐소생술 무인 안내기도 소방당국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를 찾아 함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공중전화부스 사용이 줄었는데 이 공간을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보고자 공간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며 “배터리 스테이션의 경우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탄소 저감 운동의 일환으로 친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익적 목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처음 들었어요”… 아직은 어색한 전화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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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시민들은 이색적인 공중전화부스에 호기심을 갖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이날 의료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E씨(여·23세)는 심폐소생술 무인안내기 공중전화부스에 대해 “공간을 활용해 교육의 기회로 이용하는 건 좋아 보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이용할지는 모르겠다”며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선을 끌 만한) 홍보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심폐소생술 무인안내기에 비해 휴대용 배터리 대여 공간으로 활용되는 공중전화부스는 곳곳에 대여 배터리 자리가 비어있어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 공간도 공간플랫폼 사업의 일환이라는 인식은 낮은 편이었다. 이날 공중전화부스에서 휴대용 배터리를 대여하던 한 시민은 “그냥 배터리 대여하러 왔다”며 “해당 공간이 공중전화부스를 활용한 건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해당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 복권판매점을 운영하는 F씨(여·70대)는 “공중전화 공간을 그런식으로 이용한다고 (자녀들한테) 들은 적이 있다”며 “하지만 어떻게 이용하는지, 운영하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G씨(여·60대)는 “이런 사업이 있는지 몰랐다”며 “전기차 배터리 대여소나 충전소 등은 시민들이 잘 이용할 것 같은데 심폐소생술 무인학습기는 홍보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이 이런 공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참여 이벤트를 한다면 공중전화 공간플랫폼 사업이 더 활성화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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