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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에 철퇴 가하는 각국…한국은 ‘단순 허위광고’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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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성 부당광고 기업 올해 8개월간 1천388개…작년 2천676개

‘가짜 친환경’ 마케팅, 기업에 부메랑으로…유럽 등은 규제 확대 중

친환경 제품 전시.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자료사진]

친환경 제품 전시.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환경에 좋지도 않으면서 그런 척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들의 ‘가짜 친환경’ 마케팅이 계속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유럽 등 각국의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그린워싱이 당국 제재와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지는 일도 잇따르지만, 국내에선 허위광고 같은 ‘단순 그린워싱’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 ‘근거 없이 친환경’…그린워싱 기업 올해만 1천388곳 적발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상품을 광고할 때 별다른 근거 없이 ‘친환경’이나 ‘무독성’이라고 표시하는 등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로 올해 적발된 기업은 8월까지 1천388개사다.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 적발 기업은 2019년 45개사, 2020년 110개사, 2021년 244개사였다가 작년 2천676개사로 급증했다.

지난해 한 유통채널에서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가 이뤄진 제품이 적발돼 다른 유통채널까지 추적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작년과 올해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 건수는 각각 4천558건과 3천779건이다.

김영진 의원은 “가짜 친화경으로 소비자를 교묘하게 속이는 그린워싱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며 “정부는 그린워싱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고 관련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환경산업기술법은 소비자가 제품의 환경성을 오인하게 만들 수 있는 표시·광고를 금지한다. ‘환경성’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로 풀이된다.

대표적 금지사례는 근거 없이 무턱대고 ‘환경에 친화적인 제품’이라든가 ‘인체에 해가 없는 무독성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다.

비스페놀A(BPA)가 나오지 않는 제품이라고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도 안 된다. 환경호르몬이 BPA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이 나올 수 없는 유리병에 ‘BPA 프리’라고 표시해 다른 유리병보다 친환경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도 금지다.

기업의 그린워싱이 제품 표시·광고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울창한 숲이나 야생동물 같은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를 제품이나 브랜드와 함께 노출해 친환경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등의 ‘고단수’도 자주 쓰인다.

최근 그린피스는 76개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399개가 작년 4월 1년간 올린 게시물 6만21개을 분석해 165개 계정이 올린 650개 그린워싱 게시물을 찾아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서 그린워싱 사례로 꼽힌 한 음료회사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린피스 그린워싱 실태 시민 조사보고서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린피스 보고서에서 그린워싱 사례로 꼽힌 한 음료회사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린피스 그린워싱 실태 시민 조사보고서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한 음료 회사가 플라스틱 생수병 라벨에 멸종위기종 삽화를 넣었다고 홍보한 게시물이 최악의 사례로 꼽혔다. 버려진 페트병이 해양생물에 피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숨겼다는 것이다.

‘환경 선진국’이라는 유럽에서도 그린워싱은 빈번하다.

이달 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자료 평가·제공 기관인 렙리스크는 작년 9월부터 1년간 전 세계 금융기관 그린워싱 사례가 148건으로 이전 1년(86건)보다 72%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중 106건은 유럽 금융기관이 저지른 것이었다.

유럽연합(EU) 집행이사회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EU 내 이뤄진 광고 등에 실린 ‘친환경 주장’ 중 53.3%가 모호하거나 오해를 일으킬 수 있고 근거가 없었다. 근거로 입증되지 않는 경우도 40%에 달했다.

◇ 기업에 타격으로 돌아오는 그린워싱…미국서는 거액 ‘벌금’

스타벅스코리아가 2021년 9월 28일 친환경 캠페인으로 제공한 리유저블컵.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타벅스코리아가 2021년 9월 28일 친환경 캠페인으로 제공한 리유저블컵.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린워싱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기업을 타격하기도 한다.

국내 대표 사례로 ‘스타벅스코리아 리유저블 컵 사태’가 꼽힌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21년 9월 28일 스타벅스 50주년과 커피의 날을 기념해 음료를 특별히 디자인된 리유저블 컵(다회용 컵)에 담아주는 ‘친환경’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리유저블 컵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들어져 제작 시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 온실가스를 3.5배 더 배출할 것으로 추산되는 데다, 스타벅스 측이 권장 사용 횟수를 20회로 제시해 논란이 됐다. 여기에 스타벅스가 텀블러 등 굿즈로 수익을 올려온 점이 더해져 비판이 쏟아졌다.

작년엔 SK엔무브가 ‘탄소중립 윤활유’를 광고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SK엔무브는 윤활유를 만들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측정한 뒤 이에 해당하는 탄소배출권을 미국 인증기관으로부터 사들여 상쇄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K엔무브가 구매한 탄소배출권은 조림 사업으로 확보된 것인데 조림으로는 대기 중 탄소를 일시적으로 격리하는 것만 가능하다는 점, 배출권을 판 기관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는 점, 배출권 구매량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결국 올해 초 환경부는 ‘탄소중립 윤활유’라는 표현을 ‘거짓·과장 환경성 표시·광고’로 판단하고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외국에서는 그린워싱 기업이 거액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도이체방크 자산운용 자회사인 DWS는 ‘ESG 투자 선도기업’이라고 홍보하면서 ESG 투자와 관련해 투자자에게 약속한 사항을 지키지 않는 등 허위로 설명하고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금융당국 조사를 받다가 지난달 2천500만달러(약 339억원)를 내고 조사 종결에 합의했다.

루프트한자 자회사 오스트리아항공은 일부 노선은 100% ‘지속가능 항공유'(SAF)를 쓴다며 ‘탄소중립 비행에 함께하자’라고 광고했다가 고발당해 최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실제 SAF 사용량이 최대 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그린워싱 규제 강화 중…유럽은 ‘포괄적 주장’ 원칙적 금지

[이태호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이태호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각국 그린워싱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유럽의회와 EU 집행이사회는 최근 ‘친환경적’, ‘천연’, ‘생분해’, ‘기후중립’ 등 ‘포괄적인 환경성 주장’은 정확한 근거가 없다면 금지하는 법안에 합의했다.

2026년 시행될 전망인 이 법안은 탄소배출권으로 제품 생산·유통·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상쇄했다면서 환경성이 개선됐다고 주장하는 것도 금지했다.

호주의 경우 작년 10월 ‘거짓이나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환경성 주장에 대해 최대 5천만 호주달러까지 벌금을 상향했다.

국내의 경우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를 공표해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환경산업기술법 개정안이 발의돼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는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에 대한 환경부 장관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만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와 관련해 과징금을 부과받거나 처벌받으면 녹색기업 지정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당국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다.

공정위는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 지침’을 개정해 지난달 시행했다.

지침엔 ‘생산→유통→폐기’로 이어지는 제품 생애주기 일부에서 환경성이 개선됐더라도 전(全)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 환경성이 개선됐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전 과정성 원칙’, 소비자의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실을 일부라도 누락·은폐·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완전성 원칙’ 등이 담겼다.

환경부도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가이드라인 초안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신재생에너지 이용 확대, 폐기물 발생량 저감 등에 대해 기업이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관련해서는 ‘목표 감축량과 단기·중기·장기 등으로 나뉜 목표 연도를 설정하고 기간·단계별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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