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는 그리움에 힘겨운 유족들…”웃지 못하고 평범한 삶 멀어져”
지난한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아이들에 부끄럽지 않게 계속 싸울 것”
(전국종합=연합뉴스) “주어진 하루를 누구보다 바쁘게 살던 착한 딸이었어요. 하루만이라도 농땡이라는 걸 좀 피워보고 갔으면 좋았으련만….”
지난 18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만난 정미라(46)씨는 ‘보라 리본’을 만들던 손을 멈추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의 딸 고(故) 이지현씨는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이태원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작년 10월29일 이태원 축제 현장을 찾았다가 하늘의 별이 됐다.
정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며 요령 한 번 부린 적 없는 딸의 삶이 못내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는 분향소의 영정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 모든 애들이 다 그래요. 바쁘고 성실하게 살던 애들이 잠깐 짬을 내 핼러윈 문화를 즐기러 갔다가 그렇게 됐어요”라며 울음을 삼켰다.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1년. 생때같은 자식들을 한순간에 잃은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가눌 길이 없이 순간순간 무너져 내린다.
“마지못해 사는 거죠.”
고(故) 문효균씨의 아버지 문성철(57)씨는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아직도 잠들려고 자리에 누울 때마다 그때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오래 뒤척이는 그다.
문씨는 “부모는 다 그렇듯이 정말 애들 때문에 산다”며 “이제 삶의 의미도 없고, 희망이나 인생의 의미가 다 사라져 너무 힘들고…”라며 울먹였다.
“수진이 그림을 정리하려고 한 상자에 모아뒀는데 손을 대지 못하겠더라고요.”
고(故) 김수진씨의 어머니 조은하씨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수진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다. 딸이 직장을 갖고 사회인이 되면서 집 안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들을 모아뒀는데, 이제 영영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됐다.
조씨는 “아직도 수진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참사는 장성한 50대 아들을 잃은 70대 노모에게도 잔인한 일이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만난 A(73)씨는 “평소에 말썽 한번 부리지 않은 큰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어떤 세계의 어떤 공간에 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편히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올 땐 좋은 부모 만나 훌륭하게 자기 뜻을 펴면서 ‘고급 생명’으로 살아라”는 A씨의 답이 돌아왔다. 애끊는 모정이었다.
참사 이후 유족들은 평범한 삶의 고리가 끊어진 채 생전 해본 적 없던 ‘투쟁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성철씨는 아들을 잃은 이후로 다섯 달 넘게 일을 쉬었다. 효균 씨 어머니 또한 올해 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부부는 북받친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잊고 그때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문씨는 “아무 일도 못 하고 집에만 있다가 경제적 문제도 있으니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며 “밖에서는 일부러 티 안 내려고 억지로 웃고 말 맞추고 그냥 두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조은하씨의 시간도 작년 10월 29일에 멈춰있다. 사람들을 마음 편히 만나기 어려워 일을 그만둔 채 전주와 서울 분향소를 오가며 유가족들을 만나는 생활이 전부다.
조씨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인데, 딸 생각이 나 울컥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일을 차츰 줄였다”며 “1주기가 끝난 뒤부터는 조금씩 일도 하고 취미생활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던 이정민(61)씨의 삶은 딸 주영씨를 잃은 ‘그날’로 모두 바뀌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을 단 채, 결혼을 앞두고 열심히 살아가던 딸이 왜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데 집중했다.
진상을 밝히고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게 살아가는 목적이 돼버려 이씨의 시간은 온통 참사와 연관된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알려야 하고 참사가 기억에서 지워지면 안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해요. 딸아,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느니 아빠가 포기하지 않도록 하늘에서 힘을 주렴.”
정미라씨는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열리는 추모제 참석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전북 전주에서 서울로 향한다.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가 막차를 타고 내려가는 생활을 1년 가까이 반복 중이다.
“계속 컴컴한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빛을 보기 위해 가능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유족들이 서로 의지하는 눈빛, 같이 손잡아주는 시민들, 종교인들과 시민대책위에서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외롭고 기나긴 싸움에도 유족들의 염원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지난하기만 하다.
지난 4월 유가족협의회의 청원에 따라 야당 측이 공동 발의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안은 6월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그러나 “독소조항이 많고 정치적 의도가 담겨 편파적”이라는 여당 측 반대가 이어지며 3개월 넘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대통령실도 특별법에 대해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특별법에는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해 특별검사(특검) 수사가 필요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등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6명의 핵심 피고인은 모두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9개월 넘게 재판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서너차례 이상 공판을 거쳤지만,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참사 책임을 밝히는 작업에 매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 경찰이 검찰에 넘긴 일부 피의자는 아직도 기소 여부가 결론 나지 않은 채 수사 중이다. 책임의 중심에 섰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7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업무에 복귀했다.
정미라씨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에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 1년간 반복됐다. 허무하다”며 “책임자들이 일선에서 아무 말 없이 일을 한다는 게 보란 듯이 유족들의 속을 긁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 뒤 책임자 본인이 자리에 눌러앉아 있고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아 벌어진 게 오송 참사”라며 “‘책임자 처벌로는 참사 재발을 막지 못한다’고 했던 이상민 장관의 말을 어느 국민이 공감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정씨는 분향소를 가리키며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아이들이 돌아올 수는 없지만, 우리를 보고 있는 저 아이들의 눈에 부끄러울 수는 없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제대로 진실을 밝혀달라고 바라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조은하씨도 “참사가 발생한 명확한 이유를 묻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뿐 아니라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우리 사회의 2차 가해는 유족들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문성철씨는 “유족들이 모이는 이유는 다시는 누구도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가 모범, 표준, 선례가 되자는 것”이라며 “불쑥불쑥 뛰어나오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진상 규명을 위해 싸우는 유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윤보람 김형우 정경재 나보배 계승현 최원정 기자)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