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악재가 한꺼번에 뒤섞여 일어나는 ‘칵테일 위기’가 닥쳤다. 2014년 상반기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016년 초 사상 최저인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7%를 기록하며 전년(2.7%)보다 둔화했다. 중국은 전년 7%에서 6.8%로 떨어졌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북한의 미사일 발사까지 정치·경제 분야에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코스피는 2000포인트(p)를 오르내리다 강보합(3.32%)으로 마감했다.
올해 증시는 삼중고(고금리·고유가·강달러)에 이어 전쟁 리스크까지 겹치며 더 독한 칵테일 위기에 직면했다. 7개월 만에 코스피 2400포인트가 붕괴됐고, 코스닥 800선도 일찌감치 무너졌다. 위험회피 심리에 환율 상승이 더해지면서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월부터 ‘셀코리아’(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견고한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주식시장에 ‘나쁜(Bad) 뉴스’는 ‘나쁜 재료’가 되고, ‘좋은(Good) 뉴스’도 ‘나쁜 재료’가 되는 셈이다. ‘Good is Bad, Bad is Bad’다.
◇‘Good is Bad’…고금리 충격 지속 =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지난주(16~20일)에만 100p 넘게 빠졌다. 20일 코스피지수(종가 2375p)는 장중 최저점 2364p까지 밀렸다. 코스피는 8월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500선과 2400선을 차례로 내줬다. 지수 하락을 이끈 건 미국 고금리 지속 우려다. 글로벌 채권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5%를 찍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올라가고,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의 금리도 상승하면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진다. 안전자산인 국채로 자금이 몰리면 주식시장에도 악재다. 증시를 포함해 시장에 풀린 돈이 말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호조를 지속하면서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채권 금리를 크게 끌어올렸다. 9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하며 예상치인 0.3%를 크게 웃돌았다. 최근 발표된 9월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33만6000개 증가하며 예상치 17만 개를 두 배 가까이 웃돌았다.
제롬 파월 미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뉴욕경제클럽 연설에서 “현재 통화정책이 너무 타이트하단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아직 ‘과잉긴축’ 상황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긴축으로 시장의 약한 고리가 부러져 금융발작 정도가 나타나야 과잉긴축을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파월 의장은 2018년 인플레이션에 맞서 오버킬(over kill)이라 불릴 정도로 경기가 꺾일 때까지 긴축을 시행한 전력이 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경기·고용 악화 또는 금융시장 발작 등 둘 중 하나는 있어야 긴축이 멈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19일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면서 ‘불확실성’(국제유가·환율·이-팔 사태)을 경계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졌고, 목표 수준으로 수렴하는 시기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러 경제 상황을 볼 때 금리가 금방 조정돼서 금융 비용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고금리 장기화, 기준금리 인하 시점 지연 가능성을 시사했다.
◇골 깊어진 중동사태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산 우려는 증시의 시한폭탄이다. 이란은 중동 국가들에 이스라엘로의 원유 수출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미 하원은 이란이 직접 개입할 시 미군을 파병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중동 국가 내 확전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 중동 긴장에 11월 인도분 WTI는 18일(현지시간) 1.88% 오르며 이달 3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정학적 노이즈에 따른 유가 급등은 물가상승을 자극하고 금리인상과 고환율 압력을 높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고물가 기간 공급 충격에 기인한 10% 유가 상승은 한국의 성장률을 1%p까지 낮추는 반면, 물가상승률은 0.2%p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각에서 우려하는 대로 국제유가가 150달러까지 상승하고, 5차 중동 전쟁으로 확대되는 등 테일 리스크(Tail Risk,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한 번 일어나면 경제나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팔 전쟁은 미국 정치권 리스크로도 번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바이든의 국정 지지율이 37%로 하락하면서 외교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도 높아졌고, 이는 대년 대선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리스크 회피 심리가 고조되면서 전업종이 하락하고 있다”며 “특히, 정치 불확실성에 민감한 미국 인프라 관련 업종과 이차전지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코스피, 2400선 하회…전저점 이탈 = 시장의 관심은 코스피 지수가 어디까지 밀릴 것인가다. 지지선은 이미 붕괴됐다. 전문가들은 코스피 후행 주가순자산비율(PBR) 0.9배인 2380p를 지지선으로 봤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내 유동성 축소, 테슬라 실적과 주가 부진 여파에 따른 이차전지 약세,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긴축 기조 장기화 우려, 외국인 매물 출회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중동 관련 극단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주가 지수가 더 떨어질 수도 있지만, 국내 기업 실적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가 지수의 하락 추세 전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현재 한국증시가 추가적으로 더 하락할 가능성은 존재하나, 산업 업황 회복이 기대되는 기업들의 견조한 실적을 고려하면 하락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투자심리와 수급 측면에서 단기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채권금리 급등의 촉매제였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연준 위원들의 스탠스 전환이 확인되는 등 증시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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