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엑셀에서 전기차까지… 50년 역사 그대로
하루 6000대, 연간 140만대… 단일 면적 기준 글로벌 최다 생산
국내 유일 자동차 전용 부두 맞닿은 입지 강점
50년 전 뚫어놓은 수출길, 글로벌 3위 브랜드 만들었다
깨끗한 팰리세이드 한 대가 보호필름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어딘가로 힘껏 내달린다. 뒤이어 코나, 아반떼도 줄지어 같은 곳을 향해 뛴다.
고속도로의 한 장면으로 착각할 법한 이 모습은 놀랍게도 지난 18일 찾은 현대차 울산공장이 그 배경이다. 수출을 눈앞에 둔 따끈따끈한 신차가 선적을 위해 부두로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틴팅조차 되지 않은 투명한 유리창 사이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번호판 조차 없다.
이 장면이 가능한 건 공장이 부두와 맞닿아있는 현대차 울산공장의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국내 유일 자동차 전용 수출 부두와 지하터널을 통해 이어져있다. 공장에서 제조된 차를 트레일러에 싣고 부두로 옮기는 작업 없이, 모든 검수가 끝난 차량은 부두를 향해 힘껏 내달리기만 하면 된다.
부두로 신나게 달려간 차들이 멈춰선 곳은 야적장. 널찍한 야적장에는 울산공장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차종들이 뒤섞여 빽빽하게 들어서있었다. 북미, 유럽 등 해외 각국으로의 가는 전용선에 선적되기 위해서다. 해외 수출 전용 모델들인 만큼 야적장에 서있는 아반떼의 엉덩이에는 ‘엘란트라’라는 해외 모델명이 적혀있었다.
울산공장에서 하루 평균 수출되는 차량은 3000대. 평균 1000대~1500대를 선적한 전용선이 하루 3척씩 이 부두를 떠난다. 공장의 일평균 생산량인 6000대의 절반이 매일 수출되는 셈이다.
수출에 최적화된 입지적 강점을 보유한 만큼, 울산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은 북미, 유럽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모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코나(HEV·EV·N 포함), 아이오닉 5, 싼타페(HEV·PHEV), 펠리세이드, 아반떼(HEV·N), 베뉴, i30, 스타리아, 포터, 투싼, 넥쏘, 제네시스 GV60, GV70, GV70 EV, GV80, G70, G80, G80 EV, G90 등 총 17종이다.
울산공장에서 수출되는 국가는 무려 약 90개국. 연간 세계 판매량 약 700만대를 바라보는 현대차그룹의 주력 생산기지이면서 동시에 핵심 수출기지다. 현대차의 첫 양산차인 포니를 생산한 공장임을 감안하면 이미 50여년 전부터 수출길을 미리 뚫어놓은 셈이다.
이날 공장 투어 안내를 맡은 울산공장 관계자는 “울산공장은 부두와 맞닿아있어 이동수단 없이 완성차를 빠르게 옮길 수 있는 수출에 최적화된 공장”이라며 “글로벌 판매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울산공장의 부두는 5만t급 선박 3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넉넉한 규모를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생산공정을 둘러보기 위해 부두를 지나 버스를 타고 10여분을 이동하자 널찍한 공장 부지를 빽빽하게 메운 생산공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울산공장은 여의도 전체면적의 3분의 2 수준인 500만㎡(약 150만평)의 규모로, 연간 14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공장 면적과 생산 규모 모두 단일 공장 기준 글로벌 최대다.
울산공장은 1공장부터 5공장까지 각각 독립된 공장으로 이뤄져있는데, 각 공장마다 외벽에 설립연도가 큼직하게 적혀있다. 1공장은 ‘F1 1975’, 2공장은 ‘F2 1987’, 3공장은 ‘F3 1990’, 최초 공장인 4공장은 ‘F4 1968’과 같은 식이다. 공장 외부만 둘러보더라도 50여년 역사가 잘 드러난다.
이날 방문한 공장은 코나, 베뉴, 아반떼, i30이 생산되는 3공장으로, ‘프레스-차체-도장-의장’ 순서로 진행되는 차량 생산 과정에서 부품 조립이 이뤄지는 ‘의장’ 공정을 둘러봤다. 길게 늘어진 컨베이어벨트에 한줄로 나란히 늘어선 각기 다른 차종들이 종이 한장을 얼굴에 붙인 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같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제각기 다른 차종들의 부품을 끼울 수 있는 건 혼류생산 방식 덕분이다. 특히 이날 둘러본 3공장은 기존에도 한 라인에서 2~3개 차종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었지만, ‘다차종 생산시스템’이 최초로 시범 적용되면서 최대 10개 차종까지 동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컨베이어벨트 옆에는 ‘자동운반 무인배차(AGV)’라고 부르는 회색 박스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박스는 각기 다른 차종의 부품을 한 곳에서 끼울 수 있도록 하는 핵심요소다. 박스 안에는 다양한 차종의 부품이 들어있고, 라인이 움직일 때 따라 움직이면서 작업자들이 원하는 부품을 골라서 쓸 수 있다. AGV의 도입으로 3공장에서는 1시간에 93대의 차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3공장의 의장 공정은 트림→샤시→파이널→OK테스트 등 총 4개의 라인으로 구성되는데, 긴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차량이 눈앞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작업자들은 자신의 공정에 맞는 작업을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수행해냈다.
트림라인에서는 전기 배선작업과 전장 부품을 조립하고, 샤시 라인에서는 엔진·변속기 등 구동부품이 장착된다. 파이널라인에선 시트, 타이어 등 인테리어 부품이 탑재되고, 성능테스트를 진행하는 OK테스트를 거치면 출고 대기장으로 이송된다.
대규모 최첨단 생산 공장부터 수출 강점까지 모든 이점을 갖춘 울산공장은 전동화 시대에도 현대차의 주력 생산기지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울산공장 내 약 7만1000평 부지에 2조원 규모를 투자해 전기자 전용 공장을 세우고 있다.
예정대로 2025년 완공이 이뤄지면 지난 1996년 아산공장 가동 이후 29년 만에 들어서는 현대차의 국내 신공장으로 기록된다. 전기차 전용 신공장 가동과 함께 울산공장은 빅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스마트 시스템, 자동화, 친환경 생산 시설을 기반으로 다양한 차세대 미래차를 양산하는 국내 미래차 생산의 대표 거점으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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