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케이블 수출 기지’ LS전선 동해사업장
친환경 에너지 대두되며 해저케이블 수요 급증
유럽 독식 시장, 30년 격차 줄이며 글로벌 선두로
“바다 속에서 40년 버텨야, 신뢰성이 가장 중요”
“기후 위기 및 전쟁에 따른 에너지 자립 분위기 등으로 신재생 에너지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본다. 전기를 발생시키는 신재생에너지의 설비 확충은 필연적이 됐다. ‘전기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HVDC(초고압 직류송전기) 기술 개발에 성공한 LS전선이 국가 핵심 경쟁력을 높이는 K케이블 회사로 거듭나겠다.”
대한민국 강원도 동해에서 ‘에디슨식 전기’가 부활했다. 188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벌어진 ‘전류 전쟁’에서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가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에 패배한지 약 130년 만이다. 발전·송전에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여겨져 전 세계 전력망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교류(AC) 시스템을 대체할 HVDC(초고압 직류송전) 기술 개발에 LS전선이 성공하면서다.
전력 손실은 적으면서 더욱 먼 거리까지 송전이 가능한 HVDC 기술력을 자랑하듯 LS전선의 동해사업장엔 아시아 최대 HVDC 해저케이블 생산시설인 ‘해저4동’과 아파트 63층에 이르는 초고층 생산 타워가 우뚝 솟아있다.
지난 19일 방문한 LS전선 동해사업장은 동해항과 4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해저케이블 수출’ 최적의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 항만 시설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km도 채 되지 않는 위치다. 수천에서 수만 t에 달하는 해저케이블은 일반 도로나 차량으로 운송이 쉽지 않아 ‘갱웨이(케이블 연결통로)’를 통해 항으로 곧장 실어 나를 수 있어야 한다.
이날 직접 둘러본 동해사업장 내부는 대만과 유럽 등지로 수출할 해저케이블 생산을 위한 설비들이 쉼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동시에 동해항에선 비금도 신안 앞바다로 보낼 송전용 해저케이블 선적 작업이 한창이었다.
LS전선의 동해사업장에서 완성된 해저케이블이 향하는 곳의 공통분모는 핵심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떠오른 해상 풍력이 급성장하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전선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해저케이블은 육지와 섬 등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양 지점의 전력과 통신 송신을 위해 설치된다.
육지에서 섬으로 비상전력을 보내거나 바다 위에서 생산된 전력을 육지 및 섬으로 가져오려면 이 해저케이블이 필수적이다. 바닷속에서 30년에서 40년을 버틸 수 있어야 하기에 상당한 내구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이다.
HVDC(초고압 직류송전) 생산하는 국내 유일 기업
사업장 내부는 크게 해저 1~3동의 케이블 생산공장과 HVDC(초고압직류송전) 전용 공장인 해저 4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해저 1~3동에선 교류와 직류 방식의 케이블을 함께 제작한다고 한다. 지름 15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두꺼운 세 개의 케이블 선이 수직연합기를 통해 하나로 칭칭 감겨지면 판매 가능한 원형 상태의 초고압 교류(AC) 해저케이블이 탄생한다.
마지막 공정인 외장(外裝)을 마치면 성인 남성 허벅지는 족히 넘는 두께의 해저케이블이 완성된다. 올해 초 준공된 ‘해저 4동’에서는 모든 종류의 해저케이블을 생산하는 기존 1~3동과 달리 직류 방식의 케이블만 제작한다.
직류 송전 케이블 제작 과정에서는 수직으로 케이블을 세워 ‘진원’을 만들어 전기재 안정성을 높이는 공정이 중요한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아파트 63층, 높이 172m에 달하는 초고층 생산 타워(VCV타워)다. LS전선은 지난 2012년 국내 최초로 HVDC 해저케이블 국산화에 성공했다.
HVDC는 40km이상 송전 시 AC(교류)에 비해 경제적이고 국가 간 연계가 가능하다는 큰 이점이 있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높은 기술 장벽으로 인해 소수 업체들이 글로벌 85%를 장악 중이다. LS전선이 최근 수조원대 규모의 글로벌 HVDC 프로젝트를 싹쓸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HVDC 해저케이블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업은 넥상스 등 전 세계적으로 6개가량뿐이다. 국내에선 LS전선이 유일하다.
VCV 타워 내부를 둘러보던 LS전선 관계자는 “기술 장벽이 높아 진입이 어려운 만큼, 외국 기업들의 블로킹(저지)이 심했다”라며 “40년 가까이 독자적으로 기술 개발에 전념하며 정말 피땀으로 일궈낸 결과”라고 했다.
실제, 지난 1997년 제주-해남 간 전력망 연계 사업을 넥상스가 수주한 이후의 HVDC 사업권은 LS전선이 올킬(All Kill)해 왔다. 선진업체들과 30여 년 가까이 기술 격차가 있었지만 2012년 시장 진입 후 경쟁업체들을 따돌리는 저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생산 과정 못지않게 눈길을 끈 점은 사업장의 정돈된 모습이었다. 각종 설비시설과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내부 환경은 깨끗했다. LS전선 관계자는 “선진국, 특히 유럽 쪽 고객사들은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다”라며 “우리나라가 국내 재해법이 생긴 지 2년 밖에 안됐지만 LS전선은 이전부터 선진국에서 하는 환경 및 안전규제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전기에너지는 작은 기포나 이물질이 있으면 폭발할 위험이 있다”며 “그를 방지하기 위해 깔끔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제작 속도가 느린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수요 급증...제조, 시공 및 유지보수 경쟁력 어필"
이날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김형원 LS전선 부사장은 “미국과 유럽 시장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현지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인 상태”라며 “미국의 경우 이미 현지에 진출한 경쟁사들이 선점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이제 해저케이블은 막 개화하기 시작한 시장으로,우리가 전혀 늦거나 뒤처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바다 속에서 리스크가 생기면 수리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칫 케이블 생산이 지연되면 수입하는 나라에도 타격이 엄청나다. 경쟁사들에 비해 ‘시공 및 유지보수’라는 경쟁력을 꼭 가져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LS전선은 KT서브마린(현 LS마린솔루션)을 인수 완료했다. 통신해저케이블 위주 건설 시공을 맡던 LS마린솔루션은 LS전선 품에 안기며 사업포트폴리오를 전력케이블까지 확대한 상태다. LS전선이 ‘시공 및 유지보수’에 자신을 표하는 근거다.
LS마린솔루션은 최근 전남 ‘안마 해상풍력사업’ 해저케이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대만 타에베이에 영업 거점을 설립했다. 대만은 해상풍력 수요가 급증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다. 올해 말부터 4조5000억원에 이르는 사업 발주가 시작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 사업을 담당하는 LS전선아시아는 최근 베트남 국영 석유·가스 기업 페트로베트남(Petrovietnam)의 자회사 PTSC와 해저케이블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이에 LS전선은 두 자회사와 삼각편대를 구성해 글로벌 해저시장을 상대로 설계에서 시공에 이르기까지 ‘턴키 수주’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아시아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는 올해 15억7000만달러(한화 약 2조1242억원)에서 2027년 24억2000만달러(한화 약 3조2742억원)로 60%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S마린솔루션,LS전선아시아와 '삼각 편대' 공조
올해 상반기 LS전선은 5조4000억원의 수주잔고를 달성한 상태다. 지난 2019년 6700억원 규모에서 급속하게 규모가 커졌다. LS전선 측은 “신뢰성, 대규모 장치산업 진입장벽, 현지화 등을 통한 경쟁우위 확보 등 세 가지를 다 갖고 있다”며 “자회사인 전선아시아와 마린솔루션과 함께 밸류체인을 강화하겠다. 베트남에 거점을 둔 전선아시아를 통해 아시아지역 네트워크 및 사업 확장을 꾀하고 마린솔루션 인수로 시공능력을 한층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는 지난 8월 마린솔루션을 자회사로 편입하며 해상풍력 사업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린솔루션은 8000톤급 해저케이블 포설선인 GL2030을 보유 중이다. LS전선으로서는 국내 유일한 선박위치정밀제어 시스템을 갖춘 해당 포설선을 일일 대여료 1억원을 내지않고 쓸 수 있게 됐다. 아울러 LS마린솔루션 역시 해저케이블 사업 진출로 인해 2030년 목표 매출액을 현 수준의 6배인 4000억원으로 잡은 상태다.
김형원 LS전선 부사장은 “해저사업의 마지막 단계는 운용에 있다. 한번 포설하고 세팅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빨리 복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해상 전 과정의 솔루션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향후 5년 이내에 연 매출 1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다.
김 부사장은 “해저케이블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인력 확보가 어렵다”며 “우리나라가 수출 위주 국가다보니, 상대적으로 외국 배들이 들어오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해외로 나갈때는 많은 허들이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태동 산업에 대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뒷받침되면 더욱 좋지 않을까 희망한다”고 전했다.
당분간 LS전선의 입지는 탄탄할 전망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50년 전 세계 풍력발전 설치용량이 4100GW(기가와트)에 이르러 전 세계 발전 설비용량 2만700GW 중 2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LS전선 관계자는 “별도 공개되지 않는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수출 실적은 강원지역 주요 수출품목을 보면 알 수 있다”며 “해저케이블 가격은 선박운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향후 아세안 국가로의 진출은 유럽보다 가까운 국내 기업 입지를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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