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건희 회장 때 시작한 삼성 日 협력사 모임…30년간 관계 이어와
이재용 “삼성 초일류 기업 성장에 큰 힘…’천리 길 함께 가는 벗'”
17년 만에 승지원서 개최…선친 뜻 이어 협력 강화 의지 표명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과 협력하는 일본 부품·소재업계와의 모임을 직접 주재하며 양국 기업 간 신뢰·협력을 지속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주말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그룹 영빈관 승지원(承志園)에서 삼성의 일본 내 협력회사 모임 ‘LJF'(Lee Kunhee Japanese Friends) 정례 교류회를 주재했다.
LJF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삼성전자와 일본 반도체·휴대전화·TV·가전 등 전자업계의 부품·소재 기업 간 협력체계 구축을 제안해 1993년 시작됐다. LJF 정례 교류회는 코로나 대확산 첫해인 2020년을 제외하고 지난 30년간 매년 열렸다
이번 교류회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노태문 MX사업부장,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 사업부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고정석 삼성물산 사장 등이, LJF에서는 TDK, 무라타 제작소, 알프스알파인 등 8개 협력사 경영진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환영사에서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일본 부품·소재 업계와의 협력이 큰 힘이 됐다”며 “LJF 발족 이후 지난 30년 동안 LJF 회원사와 삼성 간 신뢰와 협력은 한일 관계 부침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래에도 LJF 회원사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삼성과 일본 업계가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더 큰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천 리 길을 함께 가는 소중한 벗’ 같은 신뢰·협력 관계를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LJF 회원사들은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더불어 코로나 사태, 미국·중국 무역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안 요인이 중첩된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함께 극복하자고 다짐했다.
아울러 인공지능(AI)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선도해 글로벌 윈-윈(Win-win)을 달성할 수 있도록 미래 개척을 위한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자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교류회에 앞서 양측 경영진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나 삼성 주요 관계사의 미래 사업 전략을 공유하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회장이 LJF 정례 교류회를 주재한 것은 회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2019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열린 대면 교류회에서는 병석에 있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모임을 주재했다.
이 회장은 과거 한일 양국 간 갈등으로 경제협력이 위기에 봉착했을 당시에도 민간 가교로서 일본 측 인사들을 만나 협력관계 복원과 분쟁 해결에 중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후반 양국 외교갈등이 심화한 끝에 급기야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며 무역분쟁이 벌어졌다. 이 회장은 즉각 일본으로 출국해 LJF 회원사 경영진을 비롯한 현지 재계 인사들을 만나는 등 양국 경제계 협력 복원 여론 조성에 나섰다.
한일 관계 경색에 이듬해 코로나까지 겹쳐 양국 기업인 왕래가 제한되자 도미타 고지 당시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한국 기업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금지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양국 정부 합의로 그해 10월 기업인 왕래의 길이 다시 열렸다.
이 회장은 올해 한일 무역분쟁이 공식 종결되기까지 여러 차례 비공식으로 일본을 찾아 현지 재계와 소통하며 분쟁 해결 과정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7월에도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 회장과 부회장을 연이어 만나 양국 재계 간 협력 회복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노력은 올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국내 5대 그룹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로 양국 경제계의 화합을 끌어내는 데 단초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에서 유학했고 선대회장을 따라 젊은 시절부터 일본 재계 리더들과 인맥을 다져 왔다”며 “한일 양국 경제계를 이어주는 소중한 가교이자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민간 외교 자산”이라고 말했다.
올해 LJF 교류회가 삼성의 중요 외빈을 맞고 핵심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승지원에서 열린 것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승지원에서 교류회가 열린 것은 2006년 이후 17년 만으로, 이 회장이 이건희 선대회장 뜻을 이어 일본 부품·소재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재계는 해석한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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