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시민은 거의 없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남영동 1985’, 2017년 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1987’…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를 명목으로 많은 민주화 인사에게 고문이 가해졌던 이곳은 대한민국의 흑역사다. 하지만 대공분실이 당신의 바로 옆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심지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헤럴드경제는 2023년 현재 대공분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살피고 고문 피해자로부터 직접 대공분실을 보존하는 방식에 대해 물었다.
지난 6일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3동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별관. 과거 장안동 대공분실로 사용되던 이곳은 현재 서울경찰청 생활질서계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박지영 기자 |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국내편〉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여기가 대공분실이라고요? 사람들 고문했다는 그곳 말씀하시는거죠? 5년 동안 살았는데 전혀 몰랐어요. 신기하게 생긴 건물이라는 생각은 했는데…”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경찰청 장한로 별관 앞에서 만난 시민 이모(27)씨는 옛 장안동 대공분실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서울경찰청 풍속범죄수사팀’이라는 문패를 걸고 운영 중인 이곳은 1980년대 대공분실로 사용되던 곳이다.
2018년 6월 경찰개혁위원회가 ‘보안경찰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할 당시 전국 32곳에 보안분실(옛 대공분실)이 운영 중이었다. 서울에만 6곳이 존재했다. 민주화 이후 용도가 변경된 건물은 포함되지 않았으니 실제 대공분실로 사용된 곳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현재 대공분실은 2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역사를 품고 침묵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1976년 준공 이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 조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조사실의 창문은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수 없는 넓이로 매우 좁은 것이 특징이다. [민주인권기념관 제공] |
20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경찰개혁위원회가 파악한 전국 보안분실은 32곳이었다. 이 중 28개를 당시 안보수사대에서 사용 중이었다. 대공분실은 국군보안사령부, 국가안전기획부,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정보 기관들이 국가보안법 등 위반 수사를 위해 별도로 마련한 공간을 통칭한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단행한 이후 중앙정보부 중심이었던 대공 업무가 경찰로까지 확대됐다. 유신 체제 수립 이후 전국적으로 급증한 민주화 운동 열기를 중앙정보부 조직만으로는 잠재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경찰의 공안 업무 강화는 대공분실 전국화로 이어졌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이 지어진 것도 1976년의 일이다.
민주화 이후 일부 대공분실이 폐지되기도 했지만 상당수가 ‘보안분실’로 이름을 바꾼 뒤 보안 수사를 이어갔다. 2018년 경찰개혁위는 “전국에 산재한 보안분실은 보안 경찰의 특별 조사공간으로 피의자 등 사건 관련자들을 압박하고 위축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경찰청과 지방경찰청의 보안분실은 조속한 시일 내 경찰청과 지방경찰청의 청사로 이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5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지난 9월 기준 32곳 보안분실 중 5곳이 여전히 안보수사대가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4곳은 강력범죄수사대, 첨단안보수사계 등 다른 부서가 사용 중이다. 이관·반납한 곳은 6곳, 공실 상태이거나 철거한 곳은 7곳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에 위치한 보안분실은 경찰청 안보수사 1대와 2대가 사용 중이다. 울산청, 경기북부청, 강원청, 충북청 등 지방청도 여전히 안보수사대가 기존 보안분실에 입주해있었다. 울산청과 충북청은 청사 내 공간 부족으로 유지 중이다. 강원청 또한 같은 이유로 사용 중이나 2025년 강릉경찰서 신축 완공 시 이전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공분실은 독재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 간직하고 있을까. 헤럴드경제가 직접 과거 대공분실로 사용됐던 서울시내 5곳(남영동, 홍제동, 옥인동, 장안동, 신길동)을 방문했다.
지난 6일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3동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별관. 과거 장안동 대공분실로 사용되던 이곳은 현재 서울경찰청 생활질서계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박지영 기자 |
앞서 소개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대공분실은 침묵의 공간이었다. 대공분실로 사용되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이곳의 역사를 소개한 문구나 표지는 없었다. 과거는커녕 현재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도 쉽게 눈치채기 힘들다. 2m가 넘는 담장과 옆건물로 꽁꽁 둘러싸인 이곳은 높은 곳이 아니면 안쪽을 들여다보기 힘든 구조다. 무심코 길을 걷는다면 담장이 아닌 거대한 벽 정도로 느껴진다. 시민들이 드나들 수 있게 입구를 개방한 다른 경찰서와 달리 철문이 굳게 잠겼다. 방문자 확인을 위한 카메라도 달려있다. 차량은 출입문 옆 셔터를 통해 드나든다. 셔터 역시 기본적으로 닫혀있다. 시민 이씨가 “그런 곳인지 몰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위치도 한몫한다. 지금 장안동 대공분실은 도보 2분 거리에 안평초, 장평중 2개의 학교가 있다. 장안동 대공분실과 학교 사이에는 50세대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즐비하다. 1970~1980년대 이곳은 주택가였다. 시민들이 숨쉬는 공간에 ‘공포의 대공분실’이 있었다고 상상하기 힘들지만, 우연이 아니다. 당시 치안본부(현 경찰청)는 대공분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하게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건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하기도 했다. 장안동 대공분실은 당시 ‘경동산업’이라는 유령 회사의 사무실 문패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대공분실을 동행 취재한 한종수 작가는 “대공분실을 찾아가면 대부분 의외로 평범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며 “여전히 남아있는 대공분실을 보며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야만의 시간’을 잊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찾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대공분실. 현재 경찰청 안보수사1대와 2대가 사용 중인 이곳은 지난 8월 대공 수사를 위한 경찰-국정원 공조사건 수사 전담 조직이 추가로 꾸려졌다. 박지영 기자 |
지난 8월 찾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대공분실. 현재 경찰청 안보수사1대와 2대가 사용 중인 이곳은 지난 8월 대공 수사를 위한 경찰-국정원 공조사건 수사 전담 조직이 추가로 꾸려졌다. 박지영 기자 |
지난 8월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에 위치한 홍제동 대공분실은 차이를 보였다. 경찰청 건물이라는 사실을 금세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서울 내부순환로 고가도로 밑, 다세대 주택 뒷편으로 불쑥 솟아있는 건물에는 ‘경찰청 세검정로 별관’이라는 문패가 걸려있었다. 군데군데 색이 바랜 벽돌 기둥이 이곳이 꽤 오래 전에 세워진 곳이라는 흔적을 드러냈다. 하지만 역시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기는 힘들었다.
별관 대문을 기웃대자 옆에 있던 경비 건물에서 사람이 나와 이름과 소속을 물었다. 이유가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도 안보수사1대와 2대가 꾸준히 사용 중인 곳이다. 대공 수사의 맥을 이어갈 공간이기도 하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8월 이곳을 ‘다급’ 국가보안 시설로 지정하고 대공 수사를 위한 국정원 공조사건 수사 전담 조직을 꾸렸다.
지난 8월 찾은 서울 종로구 옥인동 대공분실터. 서울경찰청은 지난 2021년 이곳에 새롭게 통합청사를 설립했으며 현재는 서울청 과학수사계가 사용 중이다. |
기존 건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곳들도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대공분실이 대표적이다. 1979년 설립된 후 서울경찰청 안보수사1대가 사용했던 이곳은 건물을 새로 세웠다. 지난 2021년 서울청 통합청사로 완공된 뒤 현재는 사이버수사과와 과학수사과가 입주해있다. 통합청사 바깥 좌측에 일제강점기 시대 소각장 터가 소개글과 함께 남아있는 반면 통합청사 입구와 근처 어디에도 이곳이 대공분실로 사용됐다는 소개글은 없었다.
지난 8월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대공분실터. 2004년 영등포 청소년문화의집이 개관해 운영 중이다. 박지영 기자 |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신길동 대공분실은 ‘영등포 청소년 문화의집’이 됐다. 2003년 개관한 이곳은 영등포구 청소년들이 문화, 예술 등 수련 활동을 실시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역시 과거 대공분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8월 방문한 국군보안사령부 대공분실터. 1990년 대공분실 폐지 이후 2004년 대원서빙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입구에 자리한 작은 동판이 이곳이 대공분실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박지영 기자] |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사용했던 서울 용산구 서빙고 대공분실 또한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해방 이후 가장 먼저 정보기관을 설립했던 조직이 군대였던만큼 대공 수사에 관한 역사가 깊지만 민주화 직후인 1990년 폐지된 이후 방치됐다가 2004년 대원서빙고아파트가 들이대면서 완전히 지워졌다. 대원서빙고아파트 앞 인도 위에 2018년 서울시가 설치한 동판만이 과거를 드러낸다. 동판에는 “‘빙고호텔’ 터. 1957~1990.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했던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 자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빙고호텔’은 서빙고 대공분실의 별명이다.
지난 8월 방문한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1976년 세워진 이곳은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들어섰고, 2018년 민주인권기념관 설립이 결정돼 현재는 공사를 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
대공분실의 상징과도 같은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민주인권기념관 설립을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남영동 대공분실은 부지 내 공터에 기념관 용도의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이 있었던 5층은 다른 층과 구별되는 모습이다. 창문의 폭이 약 20㎝로 다른 층에 비해 매우 좁다. 고문 피해자가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지상 5층 규모로 건설됐다. 이후 2개 층이 증축돼 현재는 7개층 건물이다. 1985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활동과 관련해 고문을 받았고, 그의 아내인 인재근 의원이 폭로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87년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사망한 사건이 도화선이 돼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 보안분실로 운영됐던 남영동 건물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단장해 시민에게 개방됐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민주인권기념관을 설립할 것을 밝히면서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관리 중이다.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전체 시리즈〉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인류역사의 수치를 공개하다
[2] 베를린편
-역사 전쟁없는 도시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 문화 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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