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 가셔야 합니다. 여긴 흉부외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어서요”
1분 1초를 다투는 심근경색과 대동맥박리증 수술. 이런 초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내년부터 흉부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것부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부터 흉부외과 ‘현직’ 전문의 수가 급감할 것으로 예고돼서다. 19일 보건복지부가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했지만 의대 6년, 인턴 1년, 전공의 3년 등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흉부외과 전문의를 배출하기까지는 최소 10년간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연도별 배출한 흉부외과 전문의 현황. /그래프=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흉부외과 학회에 등록한 전문의 회원 가운데 65세 미만의 활동 연령 전문의는 1161명(2022년 기준 )이었다. 그중 50대와 60대 이상 회원이 전체의 60.8%(707명)로, 30~40대(39.1%, 454명)보다 많아 전형적 역피라미드 식 고령화 구조를 보였다. 게다가 활동 전문의 가운데 21%는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인력난이 더 심각할 전망이다. 은퇴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불 보듯 뻔해서다. 학회에 따르면 은퇴 전문의와 배출 전문의는 각각 지난해 24명·32명에서 올해 30·32명으로 배출자가 간신히 더 많았지만, 내년엔 31·21명, 2025년엔 33·19명으로 은퇴 전문의의 빈 자리가 더 많아질 전망이다. 특히 소아 심장 수술을 담당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현재 전국에서 고작 25명 미만이 활동하고 있으며, 5년 내 은퇴자를 고려하면 그 수는 20명 미만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예비 전문의’ 다 갖춘 수련병원은 5곳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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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의 붕괴 조짐은 ‘예비 전문의’인 전공의의 부족 현상에서 점칠 수 있다. 전국 흉부외과 수련병원 기준, 전공의가 1명이라도 있는 비율은 53.1%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공의 1·2·3·4년 차 전공의가 모두 존재하는 전통적 수련 시스템이 작동하는 수련병원은 전체의 7.4%인 5개 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전남대병원·부산대병원)뿐이다.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중앙의 소수 병원을 제외하고는 이미 붕괴한 상태다.
흉부외과의 전공의로 발을 디뎠어도 이탈하는 비율 역시 심상찮다. 흉부외과 전공의 이탈률은 2018년 6.3%에서 2022년 24.1%로 17.8%p 증가했다. 이탈률 2위인 산부인과가 같은 기간 12.7%p 증가(5.8→18.5%)한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벌어진다. 지난해 흉부외과 전공의 4명 중 1명(24.1%)은 전공의 수료를 포기했다.
흉부외과 전공의의 수련환경은 진료과 중에서도 최악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전공의 수련과목별 수련환경 평가 통과 비율’을 살펴본 결과 흉부외과가 90.4%로 가장 낮았다. 이어 내과가 95.2.%, 예방의학과 96.3%, 이비인후과 96.4% 순이었다.
지난해엔 진료과목별 ‘전공의 학술 활동’ 분야에서 흉부외과를 포함한 8개 진료과목이 최저점을 받았다. 전문과목별 이탈자는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지 못하고 중도 이탈한 사람을 뜻한다. 2018~2022년 흉부외과 전공의의 이탈자는 14.1%로 가장 많았고 산부인과(13.1%), 외과(13%), 신경외과(12.7%), 내과(10.3%)가 뒤를 이었다. 신현영 의원은 “수련 기간에 전공의들이 내실 있는 임상 진료와 학술 활동이 가능하도록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의사의 양적 확대 논의에 앞서, 의료계와 함께 올바른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 수련 체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흉부외과 전문의 10명 중 8명은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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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흉부외과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다른 과목을 진료하는 경우도 폭증했다. 신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차 의료에서 상근하는 흉부외과 전문의의 10명 중 8명은 전공과 다른 진료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의 전문과목별로 살펴보면, 흉부외과 전문의 317명 중 81.9%(304명)가 전공과 진료 표시과목이 달랐다. 전공과 다른 진료를 한다는 의미다.
반면 ‘인기과’인 안과의 전문의는 2630명 가운데 1%(27명)만 다른 진료를 하고 있어, 전공과 진료의 일치율이 높았다. 이어 피부과 3.4%(67명), 이비인후과 4.7%(153명), 정형외과 6%(178명), 성형외과 6.8%(116명) 순으로 전공-진료 불일치 비율이 낮았다.
이런 인력난은 남아 있는 인력의 번아웃과 이로 인한 의료사고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학회가 2019년 갤럽 여론조사 연구소에 의뢰했더니 응답한 학회원들은 주 5일간 평균 63.5시간, 하루 평균 12.7시간을 근무했다. 여기에 대부분은 주말에도 근무해 1개월 평균 당직 일수는 5.1일, 병원 외 대기 근무는 한 달에 10.8일이었다. 조사 대상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대부분의 흉부외과 전문의 51.7%가 “번아웃 상태”라고 답했고, 이런 번아웃으로 향후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을 93.7%로 예상했다.
실제로 한 의료계 원로는 “흉부외과는 기피 과 중에서도 기피 과로, 흉부외과 동료들은 악에 받친 지 오래”라며 “필수의료를 논할 때 흉부외과는 별개로 논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경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은 “학회는 2002년 대한흉부외과학회의 정책 토론회, 2018년 국회 정책 토론회, 2009·2010·2018·2019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흉부외과의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며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지난 20년간 위기는 강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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