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난민캠프의 어린이들이 구호단체로부터 물을 공급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해 남부로 피난하지 않을 경우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주민들은 경제적 부담은 물론 안전 문제 때문에 피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물 공급이 심화돼 질병 확산도 우려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군은 지상전 개시를 앞두고 가자지구 내에 아랍어 전단지를 뿌려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이동할 것을 촉구하면서 “와디 가자 이남으로 떠나지 않을 경우 테러조직의 공범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 군 대변인은 “전쟁의 다음 단계를 앞두고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가자지구 남부로의 피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남부로 이동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이다.
가자 북부 자발리아에 사는 아마니 아부 오데는 “운전자들은 이제 가족을 남쪽으로 데려가는데 200~300달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이 비용이 한사람 당 약 3달러 수준이었다. 아부 오데는 “우리는 먹을 것을 살 여유조차 없는데 떠날 돈은 더더욱 없다”고 토로했다.
가자지구 남부로 이주한다고 해도 북부보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주민들에게 남부로 가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부에 대한 공습 역시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자시티의 공무원인 야세르 샤반은 “가자시티에 대한 공습이 시작된 이후 사촌이 가족을 남쪾으로 데려갔지만 최근 공습으로 남부 칸 유니스 시에서 사촌의 아내와 두 딸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프란체스카 알바니즈 유엔 특별보고관은 “도망치지 않거나 도망칠 수 없는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테러리스트의 공범을 간주하는 것은 집단 처벌에 대한 위협이며 인종 청소에 해당할 수 있다”며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다.
한편 가자지구에 대한 원조 물자 반입이 개시됐지만 인도주의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하마스가 통제하는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습으로 약 465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220만명의 가자지구 주민 중 절반이 집을 공습으로 잃었다.
21~22일 두차례에 걸쳐 반입된 구호품은 유니세프(UNICE)와 캍타르 적신월사 등 구호단체에 전달돼 일부는 병원과 유엔이 운영하는 대피소에 배정됐다.
그러나 연료와 전기, 물 등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아슈라프 알 키드 보건부 대변인은 “가자지구 내 가장 큰 병원인 알 시파 병원 인큐베이터에는 130명의 신생아가 있지만 연료 탱크가 거의 바닥나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3일 내에 가자지구 내 연료가 바닥날 것이라며 “연료가 없으면 물도, 제대로 작동하는 병원과 빵집도 없을 것”이라며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했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 부족 사태는 특히 심각하다.
가자지구 내 물 공급은 우물과 이스라엘의 파이프라인 공급, 지중해의 담수화 플랜트에 의존한다. 이스라엘은 봉쇄 이후 하루 약 3시간 동안만 제한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담수화 플랜트도 연료 고갈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봉쇄가 시작된 이후 물 가격은 2배 이상 올랐다. UNRWA가 1인당 500㎖의 생수를 제공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주민들은 식수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빨래나 샤워 등 물이 필요한 작업을 최소화하고 있다. 30도가 넘나 드는 기온에서 몸을 씻지 못하다보니 피부병 등 질병이 확산하고 있다.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 피난한 모하메드 아부 자라드는 “아들 중 한 명이 발진이 생겨 피가 날 때까지 계속 긁었다”고 전했다.
UNRWA의 줄리엣 투마 대변인은 “가자 지구 전역에서 물이 고갈되거나 공급이 제한된 상태이며 UNRWA 대피소에서도 식수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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