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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포스트시즌 에이스’ 잭 윌러, 얼마나 대단한 투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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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 윌러
▲ 잭 윌러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시리즈 분수령이었던 5차전을 승리했다. 2연승 후 2연패로 원정에서 양 팀 에이스가 격돌한 5차전은 잭 윌러가 또 한 번 눈부신 피칭을 선보였다. 윌러는 7이닝 1실점 승리 투수가 됐다.

단기전은 불펜 야구가 대세다. 과거에는 불펜이 단순히 리드를 지키는 역할만 했지만, 최근에는 불펜 투수로 경기를 풀어가면서 역할이 늘어났다. 단기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강력한 불펜을 구축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기전은 에이스의 시간이다. 한 경기를 책임질 수 있는 에이스의 가치는 숫자로 매길 수 없다. 하지만 정규시즌 에이스가 반드시 ‘빅게임 피처’가 될 수는 없다. 대표적인 투수가 클레이튼 커쇼다. 커쇼는 정규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은 2.48이지만,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은 4.49에 그치고 있다.

포스트시즌에 정규시즌처럼 잘 던지는 투수가 윌러다. 5차전은 윌러의 포스트시즌 통산 10번째 등판이었다.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은 커쇼의 정규시즌 기록과 같은 2.48이다.

선발 투수 PS 통산 ERA 순위

0.97 – 크리스티 매튜슨
1.83 – 웨이트 호이트
2.11 – 매디슨 범가너
2.23 – 커트 실링
2.30 – 켄 홀츠먼
2.44 – 찰스 벤더
2.48 – 잭 윌러

*10경기 이상

1위 매튜슨은 1920년 이전 데드볼 시대 기록이다. 벤더 역시 활동 기간이 데드볼 시대였다.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는 공의 반발력부터 다르다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 최근 포스트시즌 에이스로 가장 강렬했던 범가너가 3위인 가운데 실링은 7명 중 가장 많은 19경기를 소화한 점이 특기할만하다. 윌러는 이 부문 7위지만, 1위인 기록도 있다.

선발 투수 PS 통산 WHIP 순위

0.73 – 잭 윌러
0.84 – 크리스티 매튜슨
0.90 – 매디슨 범가너
0.93 – 클리프 리
0.94 – 조시 베켓

투수의 개인 능력을 따지는 지표는 FIP다. FIP는 투수가 직접 제어할 수 있는 탈삼진과 볼넷, 피홈런으로만 계산된다. 윌러의 포스트시즌 통산 FIP는 2.69로, 평균자책점과 별 차이가 없다. 10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들 중 5위 기록으로, 앞서 언급한 매튜슨(2.19)과 벤더(2.13)는 시대가 달랐다. 참고로 1위 클리프 리(1.63)는 유일한 FIP 1점대 투수다.

▲ 뉴욕 메츠 시절 윌러
▲ 뉴욕 메츠 시절 윌러

10년 전 뉴욕 메츠에서 데뷔한 윌러는 토미존 수술로 2015-16년을 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은 메츠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시간이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서 윌러는 포스트시즌 데뷔가 매우 늦어졌다. 필라델피아 3년차 시즌인 작년이 처음이었다.

2021년 윌러는 14승10패 평균자책점 2.78로 개인 최고의 시즌을 작성했다. 213⅓이닝과 탈삼진 247개는 리그 1위였다. 그러나 평균자책점 2.43으로 1위에 올랐던 코빈 번스에게 사이영상을 내주고 말았다. 당시 번스는 윌러보다 46⅓이닝을 적게 던졌다. 두 투수는 1위표가 12장으로 같았지만, 총점에서 번스가 151점, 윌러가 141점이었다. 필라델피아 현지 매체는 “윌러가 사이영상을 뺏겼다”고 일갈했다.

아쉽게 고배를 마신 윌러는 지난해 팔뚝 부상으로 정규시즌 153이닝만 소화했다. 9월말에 복귀했지만, 경험이 없었던 포스트시즌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미지수였다.

윌러를 향한 걱정은 기우였다. 윌러는 와일드카드 시리즈 1차전에서 6⅓이닝 무실점으로 빼어난 피칭을 선보였다. 다음 디비전시리즈 2차전 등판은 6이닝 3실점으로 살짝 고전했지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맞붙었던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 에이스 본능이 되살아났다. 

이 경기에서 윌러는 단타 하나만을 내주고 7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덕분에 필라델피아는 솔로홈런 두 방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윌러의 포스트시즌 통산 첫 번째 승리였다. 윌러를 상대로 무기력했던 샌디에이고는, 리드오프 주릭슨 프로파가 “그를 공격하려고 노력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인정했다.

윌러는 시리즈 5차전도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윌러가 중심을 잡아준 필라델피아는 5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냈다. 하지만 윌러는 월드시리즈 두 경기는 5이닝 5실점(4자책)과 5⅓이닝 2실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구속 저하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6차전은 투구 수 여유가 있었지만(70구) 롭 톰슨 감독의 결단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런데 이후 불펜이 역전을 허용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 대단했던 2001년 커트 실링
▲ 대단했던 2001년 커트 실링

올해 윌러는 이 아쉬움을 씻으려는 의지가 분명하다. 현재 4경기 연속 6이닝 이상, 2자책 이하로 막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탈삼진은 8개 이상 기록 중이다. 단일 포스트시즌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투수는 올해 윌러와 2001년 커트 실링(6경기)뿐이다.

윌러는 포스트시즌에서 강점을 더 살리는 모습이다. 가장 자신 있는 포심 패스트볼을 더 활용한다. 구속 90마일 중후반대 포심은 정규시즌 피안타율 0.199, 헛스윙률 31.3%의 구종이었다. 정규시즌은 포심 비중을 43.3%로 조율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갈수록 비중을 높이고 있다. 타이밍을 뺏기 위해 유인구를 더 많이 던지는 투수들과 대비된다.

PS 윌러의 포심 비중 변화

와일드 1 : 43.0% 
디비전 2 : 51.1%
챔피언 1 : 55.6%
챔피언 5 : 55.6%

필라델피아는 포스트시즌 에이스가 존재했다. 1980년 스티브 칼튼은 월드시리즈 두 경기 2승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하고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2008년 두 번째 우승 때는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MVP를 휩쓴 콜 해멀스가 있었다. 

2009년 클리프 리는 포스트시즌 5경기 4승 평균자책점 1.56으로 팀의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다. 2010년 로이 할러데이는 첫 포스트시즌 출정식에서 노히터를 달성했다. 그리고 윌러는 이 선배들과 견줄 수 있는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편 어제 탈삼진 8개를 추가한 윌러는 단일 포스트시즌 팀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했다.

필라델피아 단일 PS 최다 탈삼진

34 – 잭 윌러(2023)
33 – 잭 윌러(2022)
33 – 클리프 리(2009)
30 – 콜 해멀스(2008)
28 – 커트 실링(1993)

브라이스 하퍼는 5차전에서 윌러의 피칭을 본 후 “내가 겪었던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세 손가락 안에는 쉽게 꼽힌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윌러는 이보다 훨씬 대단한 투수다. 하퍼가 본 적이 없었던 전설적인 투수들의 아성도 넘보고 있다.

그게 현재 윌러의 진짜 위치다.


CP-2022-0020@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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