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서 반년만 돈을 맡겨도 1년 만기 상품보다 더 많은 이자를 주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보통 정기예금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도 높아진다. ‘금리 역전’은 최근 단기자금 조달 금리가 높아지고, 지난해 판매한 정기예금 상품의 만기가 대거 도래하는 것이 영향을 줬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기준 KB국민은행의 ‘KB Star(스타) 정기예금’의 6개월 만기 상품의 금리(고객적용이율)는 4.08%로 1년 만기 상품(4.05%)보다 3bp(1bp=0.01%p) 높다. 지난달 말까지 1년 만기 상품의 금리가 10bp 높았으나 이달 들어서면서 역전됐다.
1년 만기 상품보다 6개월 만기 상품에 가입하면 더 많은 이자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보통 은행권에서 1년 만기 정기예금이 가장 높은 금리를 형성하는 것과 비교하면 ‘금리 역전’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NH농협은행의 ‘왈츠회전예금2’도 6개월 만기 상품이 1년 만기 상품보다 금리가 높다.
최근 다른 은행에서도 ‘단기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 상승 현상이 나타난다. 케이뱅크는 지난 16일 단기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를 인상했다. 만기별로 △1개월 20bp △3개월 30bp △6개월 10bp 인상했다. 6개월 만기와 1년 만기의 금리가 4.00%로 같다.
시중은행에서도 신한은행(쏠편한 정기예금)과 하나은행(하나의정기예금)의 6개월 만기와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금리가 같다. 다른 은행도 금리 격차가 많이 축소된 상황이다. 이에 은행 창구에서는 최근 단기 정기예금 상품 문의가 많아졌다.
금리역전 현상은 6개월물과 1년물의 MOR(시장금리)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이 영향을 줬다. 6개월과 12개월 MOR은 은행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난 20일 은행채 1년물 금리(4.106%)와 6개월물(4.048%)의 격차는 5.8bp다. 1년 전 격차가 57.1bp였던 것과 비교해 격차가 약 10분의 1로 줄었다.
여기에 지난해 수신금리 경쟁으로 1년 만기 상품이 많이 팔린 것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지난해 4분기 은행권에서 1년 이상~2년 미만 정기예금이 36조8850억원 늘었다. 지난해 팔린 상품의 만기가 최근 도래하자 이를 6개월 상품으로 분산하기 위해 은행권이 의도적으로 6개월물 금리를 높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년 만기 상품을 과다하게 판매하면서 포트폴리오 불균형이 생겼다”며 “최근 만기가 도래하자 이를 단기 정기예금으로 분산하기 위해 금리를 조정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에서 수신금리 경쟁 자제를 요청하자 금리 대신 만기 기간으로 고객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객 입장에서는 같은 금리라면 짧은 기간의 상품이 유동성 관리 측면에서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최근 저축은행권에서도 1년 만기보다 6개월 만기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가 더 높은 현상이 나타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내년 금리 변동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 은행권에서 우선 짧은 만기 상품을 판매하려는 것 같다”며 “저축은행에서도 자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단기 정기예금의 금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