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시민이 시장에서 산 생필품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에겐 경제 위기 가능성을 극복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전쟁이 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성장률이 꺾이는 것은 물론, 정부 부채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중앙은행 통화위원회는 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2006년 이후 최고 수준인 4.75%로 동결했다.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8년 만에 자국 화폐 셰켈의 가치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금리를 인하할 경우 통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한 조치다.
이날 셰켈은 전거래일보다 0.2% 하락한 달러당 4.0649셰켈로 1984년 이후 최장인 11일 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셰켈화는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개편 시도 이후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8년 만에 가장 가치가 하락했다. 중앙은행은 셰켈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300억달러(40조3650억원)의 외환보유고를 내다 팔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리 유지 배경엔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도 작용했다. 이스라엘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8월 4.1%에서 지난달 3.8%로 다소 완화됐지만 목표치인 1~3%는 여전히 상회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하마스와의 전쟁이 경제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됨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2.3%, 2024년 2.8% 성장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전쟁 발발 전에는 3% 이상 성장이 예상돼 왔다. 다만 이 전망은 분쟁이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국한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아미르 야론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가 중단되는 기간이 길고 전선이 넓어질수록 전쟁의 경제적 영향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금융시장도 뒤흔들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주요 주가지수인 TA-35는 12%이상 하락했고 신용 디폴트 스와프는 1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10년 만기 달러 채권도 8일 연속 하락했다.
이스라엘 주식시장이 불안해지자 이스라엘의 첨단 산업에 투자하던 글로벌 자금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 시장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고전하고 있으며 자금도 크게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금융정보업체 리퍼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 MSCI 이스라엘 ETF’의 지난 9일 이후 수익률은 마이너스(-) 13.8%다.
또 다른 이스라엘 관련 주요 ETF인 ‘ARK 이스라엘 혁신기술 ETF’는 12.3% 하락했다. ‘블루스타 이스라엘 테크놀로지 ETF’ 역시 9%가량 떨어졌다.
마켓 벡터 인덱시스의 스티븐 쇤펠트 최고경영자(CEO)는 “이스라엘 주식시장과 이스라엘 통화인 셰켈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해당 ETF의) 수익률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자금 이탈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아이셰어 MSCI 이스라엘 ETF’에선 같은 기간 250만달러(약 34억원)가 순유출됐으며 ‘ARK 이스라엘 혁신기술 ETF’에선 이보다 많은 72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새미 스즈키 얼라이언스번스타인 이머징마켓 주식책임자는 “시장은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분명 (이스라엘에) 불확실한 점이 많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문제는 전쟁이 지속되면서 이스라엘 경제의 펀더멘탈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약 36만명의 예비군이 징집되면서 이스라엘의 생산과 소비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으며 관광업 타격으로 서비스 부문의 긴장의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북부의 택시 운전사 니나 미즈라히는 “원래 하루 20~40명의 손님을 태웠지만 최근 1주일 동안에 태운 손님은 고작 1명”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영업 손실을 호소했다. 가니트 펠렉 관광가이드협회 회장은 “수백편의 항공편이 취소되는 데다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전이 지역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2년 후의 투어까지 취소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투자사 사곳인베스트먼트 하우스의 가이 베이트 오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전쟁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한달 간 대치했을 때보다 여파가 더 클 수 있다”며 “3~4분기에만 경제 생산량이 2~3%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이어지면서 정부 부채도 늘어날 전망이다.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매출에 타격을 입은 기업들이 고정비용을 충당하고 일거리가 사라진 근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이번 지원으로 정부 적자가 올해 3.5%로 증가해 기존 목표인 1.1%를 훨씬 상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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