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갈등이 한창인 지난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로이터]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미국이 가자지구에 물공급을 끊고 공습을 퍼부은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 자본은 침략자인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중동전쟁에서는 같은 잣대를 취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분쟁을 대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편파적인 태도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연설에서 미국을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하나로 묶어 두 나라를 완전히 전멸시키려는 적과 싸우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 물 공급 차단과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천명이 죽고 인도적인 재앙상태에 놓였음에도 미국이 확고하게 이스라엘을 포용하면서 위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 공격을 전쟁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규탄했지만 어째서인지 이스라엘에는 전쟁법 준수를 당부할 뿐 비판하지 않고 있다.
마크 린치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잔혹한 침공에서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국제 규범과 전쟁법 준수를 촉구하고서 가자지구에서는 같은 규범을 업신여기듯 무시한 것은 일관성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미국은 지난 18일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자지구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인도주의적 정전(humanitarian pause)’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홀로 반대했다. 결의안은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국제법 준수와 민간인 보호를 촉구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결의안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미국의 이같은 이중잣대가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처벌하기 위해 전 세계의 지지를 모으는 것을 방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위험 평가기관인 유라시아그룹의 클리포트 컵찬 회장은 “중동 전쟁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집행과 같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 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루이스 샤르보노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유엔 담당 국장도 성명을 통해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가 인권과 국제법을 심각하게 여긴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에 납득시키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한 잔혹 행위에 마땅히 적용한 원칙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생명을 잔인하게 경시한 것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지도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이중잣대를 비판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민간 기반 시설을 공격하고 고의로 전체 인구의 식량, 물, 기본 생필품을 굶주리게 하는 행위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며 “국제법은 선택적으로 시행되면 모든 가치를 잃는다”고 일침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 반대행보를 걸으면서 손쉽게 중동 내 영향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어떤 면에서 가자지구의 분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목을 끄고 중동과 남반구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빛나게 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와 리비아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등 중동에서 소련의 잃어버린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 이스라엘이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란과의 관계를 크게 강화했다.
중국도 최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회복 협상을 중재하는 등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 왔다 .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하마스를 비난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물과 전기를 차단하기로 한 결정과 그곳의 민간인 사망자 수를 비판하면서 중동국가에 미국과 차별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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