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 근처에 자리한 태국의 한 마을에선 장로들이 ‘골프’라고도 불리는 위라폰 랍챤(34)을 둘러싸고 그의 손목에 하얀 실을 묶어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골프는 지난 7일(현지시간) 하마스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감행한 공격에 휘말렸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청년으로, 장로들은 그의 ‘콴’ 즉 영혼을 다시 몸으로 불러오고자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골프는 가자 지구에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들이닥쳤을 때 이스라엘 전역의 농장 및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던 태국인 2만5000여 명 중 하나다.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외국인 200여 명 중 적어도 30명이 태국인이다.
현재 태국 정부는 자국민 수천 명의 귀국을 돕고 있다.
이스라엘의 농업 관련 외국인 노동력은 대부분 태국인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하마스의 이번 공격 이후 태국인들이 대거 이스라엘을 떠날 경우, 이스라엘의 농업 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 돈을 빌리면서까지 이스라엘로 향했던 태국인 노동자들은 이제 직업도 없이 빚만 있는 상태로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이지만, 골프처럼 다시는 절대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공격 당일인 7일 아침, 골프와 동료들은 발사되는 로켓포를 봤다. 그리고 이내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방어 시스템에 의해 요격당하자,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골프는 가자 지구 경계선에서 불과 5km 떨어진 예샤 지역의 어느 오렌지 과수원에서 거의 1년 동안 일하던 노동자였다. 이전에도 이미 머리 위로 로켓포가 날아간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총소리가 들려오자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동료들은 그날 대부분을 숨어 지냈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하마스 대원들이 돌아와 수류탄을 던지고 이들이 숨어 있던 방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이에 골프를 포함한 12명은 살기 위해 도망쳐야만 했다.
“우리는 병을 넘으며 달렸습니다. 그들은 뒤에서 우리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빵, 빵, 빵, 빵.”
골프는 그저 빨간색 반바지만 입은 채 과수원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골프와 다른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 하마스 대원들이 빛을 볼 수 없도록 자신들의 휴대전화 전원을 껐다.
“우리 모두 충격받은 상태로 밤새 숨을 죽이고 있었다”는 골프는 “너무 조용해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골프는 이후 13일 태국 정부가 마련한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골프는 그 어떠한 제안을 받더라도 다시는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정말 죽음을 눈앞에 앞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골프뿐만 아니라 동료 11명 또한 다시는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태국인 노동자 최소 19명이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여전히 많은 태국인들이 실종 상태이다.
태국 북쪽 또 다른 마을에 사는 나리사라 찬타상은 7일 아침부터 남편 넛타폰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앞서 남편으로부터 총격이 발생했으며, 현재 도망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은 상태였다.
지난해 6월 넛타폰은 아내 나리사라와 6살 난 아들을 두고 이스라엘로 향했다. 넛타폰은 키부츠(이스라엘의 집단 농장) 니르 오즈 내 아보카도 및 석류 농장에서 일했는데, 이곳은 골프가 일하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니르 오즈는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지역사회 중 하나로, 어린이를 포함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4명 중 1명꼴로 하마스에 의해 죽거나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정부가 발표한 태국인 인질 명단엔 포함돼 있지 않지만, 나리사라의 유일한 희망은 남편이 납치돼 어딘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한편 태국 북동부 지역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멀리 떠나곤 한다.
농지가 대부분인 이 지역은 태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주민들은 쌀농사로 겨우 생계를 유지할 뿐, 급여가 좋은 일자리를 찾기란 무척 어렵다.
실제로 이스라엘 내 태국인 노동자의 80% 이상이 북동부 출신이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이스라엘로 향했는데, 2011년엔 양국 정부 간 관련 공식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했다.
앞서 인권 단체 및 노동 단체들이 나서 태국인들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혹사당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등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BBC가 만나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가기 위해 공식적으로 필요한 금액은 약 7만바트(약 260만원)이지만, 여러 추가 비용과 비공식적인 비용 등을 합해 12만바트라는 훨씬 더 큰 돈을 지불해야 이스라엘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에선 태국에서 받는 것보다 7~8배는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는 이스라엘의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을 돌봐주고, 제때 급여도 준다며 칭찬했다.
태국 동부 나콘파놈 대학 소속 인류학자인 푼나트리 지아비리야부냐는 “부분적으로는 이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일하고 돌아온 태국인은 더 많은 존경을 받습니다. 더 글로벌화된 사람,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으로 여겨지죠.”
“그러나 막상 현실적으로 (북동부 지역 출신) 이들은 여전히 가난한 이주 노동자, 정부가 방치한 가난한 쌀 농부일 뿐입니다. 국민들이 가족을 떠나 해외로 갈 필요가 없도록 이 지역을 개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정책 개편이 필요합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생각보다 일찍 고국으로 오게 된 태국인들에겐 남겨진 빚이라는 걱정거리가 있다. 보통 땅이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이스라엘에서 최소 5년을 일한 뒤 돌아와 빚을 갚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골프의 여동생도 오빠의 이스라엘행을 위해 돈을 빌렸으며, 나리사라의 어머니도 사위에게 필요한 20만바트를 마련하고자 논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한편 아누손 카망(25)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카망의 어머니는 아들을 이스라엘로 보내고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이스라엘의 어느 유기농 채소 농장에서 일하던 카망은 며칠간 끊임없이 이어진 로켓포 공격에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결국 참지 못해 더 많은 빚을 내 태국행 비행기 표를 샀다.
태국 정부는 그 비용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어머니의 빚은 남아 있다. 이에 카망은 분쟁이 멈추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생각도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선 잘 벌었습니다. 고용주도 제게 잘해줬죠. 태국에서 일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음식을 사기엔 충분하지만, 그뿐이죠. 전 집도, 차도 사고 싶습니다. 아직 그런 게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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