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예진 기자] 얼마 전 게임업체 관계자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보도자료로 배포한 게임 홍보 이미지를 교체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미지 속 캐릭터의 집게 손가락 모양이 남성을 조롱하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감한 젠더 갈등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논란이 될 만한 것을 사전에 ‘걸러내는’ 작업에는 상당한 수고가 든다고 토로했다.
젠더 갈등이 이번처럼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이 나왔을 때다. 일부 이용자들이 노출이 적은 여성 캐릭터에 불만을 품고 게임사 ‘프로젝트 문’에 일러스트레이터 퇴출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다.
여성 원화가의 입사 전 과거 SNS를 뒤져 혜화역 시위나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한 행적을 공격했다. 게임 원화에 페미니즘 사상이 담겼다면서 본사를 찾아 항의하기도 했다.
프로젝트 문은 논란이 된 직원과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부당 해고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젠더 갈등의 불똥이 튄 게임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림버스 컴퍼니는 모바일 매출 순위 100위권 밖으로 연일 추락하고 있다.
젠더 갈등의 낙인이 찍힌 게임은 그 외에도 많다. 2016년 클로저스부터 데스티니 차일드, 소울워커, 소녀전선 등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게임 업계의 젠더 갈등은 유형이 수용자와 공급자와 갈등, 공급자 내 갈등 등으로 매우 복잡하다. 청년유니온 자체조사에 따르면 노동권 침해 피해제보 62건의 89%는 여성이다.
피해 사례 중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회사 직원의 SNS 계정을 찾아내 페미니스트인지 여부 등을 묻는 사상 검증이 주를 이뤘다. 이 경우 오히려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했다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젠더 갈등에 대해서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도 심각성을 공감하고 있다. 유 장관은
인사청문 서면질의에서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례에 대한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상담 및 법률자문 등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구제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게임 수용자가 과거에는 남성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여성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도 게임 업계의 젠더 갈등은 어떤 식으로든 완화되어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모바일게임 이용자 비중은 여성(51.2%)이 남성(48.8%)을 앞질렀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모바일 게임시장에서도 여성 이용자는 남성과 같은 50%의 비율을, 게임 매출은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기존에 게임사들은 성인 남성을 겨냥한 MMORPG에 집중해왔지만 이제는 여성을 겨냥한 캐주얼 게임을 비롯해 장르 다각화를 시도하는 추세다. 혹시라도 여성과 남성의 갈등을 촉매로 이용해왔다면 이제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임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젠더 갈등은 게임 업계에서 결자해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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