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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아들에게만” 아버지의 영상유언,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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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018년 A씨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유언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겼습니다. 장남과 차남 B씨에게는 자신이 소유한 땅을, 다섯 딸들에게는 현금 2000만원씩을 나눠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해당 영상을 촬영한 것은 바로 차남 B씨였습니다. 

그러나 A씨가 영상으로 남긴 유언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9년 A씨의 사망 이후 A씨의 자녀들은 모두 영상 속에 A씨가 남긴 유언이 아닌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A씨 유언 영상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었던 건 해당 영상이 법으로 정하는 녹음 유언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1067조에 따르면 녹음에 의한 유언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녹음 또는 영상에서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명확히 말하고 자신의 이름과 유언을 남긴 날짜를 직접 언급해야 합니다. 또한 유언자의 유언이 정확함을 확인하는 증인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야 합니다.  

A씨의 영상은 이런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결국 법적 유언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차남 B씨는 “땅을 물려주겠다”라는 아버지의 원래 약속보다 적은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B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B씨는 다른 형제자매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데요. B씨는 자신이 찍은 아버지의 영상이 유언으로서 효력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인증여’에 해당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민법

제1067조(녹음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여야 한다.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유증 vs 사인증여…다른점은?

B씨가 주장한 사인증여는 무엇일까요? 사인증여란 계약 효력이 증여자 사망 이후에 발생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증여자 생전에 미리 맺는 증여 계약을 말합니다. 증여자가 사망한 이후 상속인이 얼마의 재산을 상속받게 될지를 미리 계약으로 정해두는 겁니다.

재산을 증여하는 행위인 유증과 사인증여의 개념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유증과 사인증여 모두 상속인에게 재산을 무상으로 넘기는 행위이고 증여자 사망 이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유증과 사인증여는 엄연히 다른 별개의 법적 개념입니다. 유증은 ‘유언’으로 행해지는 증여 절차인 반면 사인증여는 ‘계약’에 따라 이뤄지는 증여입니다. 

현행법상 ‘유언’의 방식에 대한 규제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민법에서 정해 놓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 유언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또한 다섯 가지 방식 각각에 대해 민법이 정하고 있는 세부 요건들을 충족해야만 공식적인 유언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유언에 유언자의 진심이 담겼다 하더라도 유언은 무효 처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사인증여의 전제조건인 ‘계약’에 대한 규정은 비교적 엄격하지 않습니다. 당사자 한쪽의 의사 표시만 있으면 성립하는 유언과 달리 당사자 양측의 청약과 승낙이 모두 요구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계약이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당사자 사이에 합의만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성됐든 계약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교적 법적 제한이 적은 사인증여의 특성 때문에 유언이 무효화되는 경우 해당 사건이 사인증여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B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인증여는 아버지 유언 영상 무효화로 바라던 만큼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된 B씨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B씨는 ‘계약’ 성립 요건이 ‘유언’ 성립 요건에 비해 덜 엄격하다는 점을 노려 사인증여로 영상에서 아버지가 약속한 만큼의 재산을 되찾으려고 했던 겁니다. 

민법

제554조(증여의 의의) 증여는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제562조(사인증여)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생길 증여에는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대법원 “사인증여 인정 안돼, 다른 형제자매에 불리”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먼저 1심 재판부는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해당 동영상만으로는 A씨가 차남 B씨에게 부동산을 사인증여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라며 다른 형제자매들이 B씨에게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봤습니다. 

한편 2심 재판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2심 재판부는 “해당 동영상 촬영 도중 B씨가 A씨에게 ‘상속을 받겠다’라는 등의 대답을 하지는 않았으나, B씨가 직접 동영상을 촬영하고 위 동영상을 소지하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B씨가 망자의 사인증여 의사를 수락해 사인증여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며 B씨가 촬영한 A씨의 유언 영상이 사인증여 계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재판 결과를 다시 한번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B씨가 촬영한 영상만으로는 사인증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요. 

앞서 말했듯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청약과 승낙에 대한 합의가 반드시 증명돼야 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언 영상 후반부의 A씨의 “그럼 됐나”라는 말만으로 A씨와 B씨 사이에 청약과 승낙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의 질문에 대한 B씨의 명확한 응답이 녹취에 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 사진 = 뉴시스
대법원 / 사진 = 뉴시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B씨와 다른 자녀들 간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망인이 유언하는 자리에 원고가 동석해 동영상 촬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인증여로서 효력이 인정된다면 재산을 분배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그 자리에 동석하지 않았던 피고들에게는 불리하고 원고만 유리해지는 결과가 된다”라며 다른 자녀들을 제외한 B씨만 있는 자리에서 촬영된 동영상을 공정한 계약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B씨가 촬영한 A씨의 영상은 유언으로도, 계약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사후 재산 분배를 위해서는 유언 및 계약 등 증여를 위한 법적 요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이서현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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