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모습 [AFP] |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양측 간 무력분쟁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미국의 외교적 역량이 한계에 부닥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 석방이 지지부진한데다 이스라엘은 연일 지상군 투입 으름장을 놓는 사이 지역 내 미군과 미국인 피해는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TV연설을 통해 가자 지구 내 지상군 투입은 결정된 사항이라며 “민간인은 가자 지구 남부로 이동하라”고 경고했다.
이는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지상군 투입을 만류해온 미국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발언이다. 이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이 미국과 지상전을 보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으로 이스라엘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공격에 상응하는 군사적 대응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셈법은 점점 꼬이고 있다. 동맹국이자 중동 정책의 핵심인 이스라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인질 석방이나 휴전 협정 등 국제사회 요구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동시에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두둔하면서 민간인 보호를 부연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앤서니 앨버리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후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자국민 학살에 대응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며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지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은 무고한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휴전(ceasefire)’이 아닌 ‘인도주의적 일시 적대행위 중지(humanitarian pauses)’을 주장한 것 역시 이 같은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나온 나름의 해법으로 풀이된다.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이 상황은 계속 악화돼 미국은 점점 중동 분쟁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지역 주둔 미군을 겨냥한 13차례 공격으로 20명의 미군이 다쳤다.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에서 미국 민간인 사망자도 최소 32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형편이다.
WP는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준비하면서 중동의 미군과 미국인이 고도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바이든 행정부도 인정하고 있다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들이 공격을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 같은 어려움은 그간 중동에 쏟아붓던 외교 역량을 중국 등 아시아로 이전하면서 발생한 수년 간의 외교 공백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중동을 외교 우선순위에 뒀으며, 그 결실로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재해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對) 중국 견제에 더 힘을 쏟아오면서 미국은 갑자기 눈앞에 들이닥친 이번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마르완 무아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부총장은 WP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만들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가 마지막이었으며 이후 수년 간 지지부진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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