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하던 로봇팔이 치킨을 튀기고, 피자를 굽는 등 공장 밖을 벗어나고 있다. 연구원들의 눈과 손을 대신해 시약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맛집의 ‘손맛’과 첨단 기술력을 학습하고, 오차를 줄이고 안전도를 높인 작업들이 이뤄진다. 산업계는 인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최근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협동로봇에 관한 얘기다.
‘로봇계 테슬라’, ‘로봇계 백종원’을 표방하는 박종훈 뉴로메카 대표(54)를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나 협동로봇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대기업의 잇따른 협동로봇 진출에도 박 대표는 무한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로봇 부품부터, 플랫폼(조립), 솔루션, 서비스 이 네 가지를 모두 하는 곳은 전 세계 뉴로메카밖에 없다”며 다른 대기업과의 차별점을 내세웠다.
이어 그는 “우리가 쌓은 노하우를 무료로 공개해 전 세계 협동로봇 시장의 표준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테슬라 역시 2014년 자사의 특허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하며 전기차 산업의 표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간 협동로봇은 뉴로메카와 같은 소규모 업체의 몫이었다. 협동로봇의 수요처가 농업 및 제조 중소기업의 자동화 분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이러한 중소업체에 맞춰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따르기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산업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숙련공 인력난이 생겼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인건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로봇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보고서 ‘ASTI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약 25억 달러 규모(약 3조400억원)로 성장한 로봇 시장은 2025년까지 51억 달러 규모(약 7조원)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대기업의 움직임이 빨라진 배경이다. 이달 들어 두산로보틱스는 코스피 상장을, 한화로보틱스는 공식 출범을 선언하면서 협동로봇 사업 강화와 신규 시장 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 대표는 대기업의 진출이 국내 협동로봇의 생태계가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협동로봇은 선주문 체계로 시장이 매우 협소했다”며 “이제는 로봇 기업들이 F&B(식음료), 대기업 양산공정과 의료연구 분야 등에 필요한 솔루션과 서비스를 선제시해 시장에 팔 수 있는 형태로 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발맞춰 뉴로메카는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로봇 솔루션을 마련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대기업 공정 쪽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무게추를 옮기고 있는 뉴로메카 매출의 80%는 그동안 중소 제조공장 자동화 공정에서 나왔는데 공정당 마진율이 높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대기업향 랩 오토메이션 솔루션은 석박사 출신의 대기업 연구원들이 난도 높은 실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로봇은 배터리 화재 감지나 시약 합성 등을 담당한다. 앞서 뉴로메카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검체 추출 로봇을 개발해 랩 오토메이션의 실효성을 입증한 바 있다. 현재 뉴로메카는 이차전지와 바이오 분야에서 포스코와 SK와 같은 대기업과 협업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로봇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편의성이 부족하면 고객사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뉴로메카는 협동로봇(Indy), 자율이동로봇(Mody), 산업용 로봇(ICoN), 고속·고정밀 델타로봇(delta robot) 등 걸출한 제품들을 연이어 내놨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뉴로메카는 로봇을 이용한 솔루션과 서비스를 개발해 구독형 로봇 서비스(RaaS·Robot as a Service) 사업 모델을 마련했다. 뉴로메카는 로봇 공정을 시뮬레이션해서 성능을 검증한 뒤 고객사의 추가적인 요구사항을 반영해 자동화 공정을 설계한다. 이를 토대로 로봇 완제품과 부품, 자동화 플랫폼을 제공한다. 박 대표는 “여기에 원격 제어 장치를 도입해 전 세계 모든 현장에서 균일한 작업이 이뤄지게 하는 게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모터, 감속기(하모닉 드라이버), 스마트액추에이터(동력구동장치) 등을 자체 개발해 외산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감속기는 대부분 일본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는데, 한국산보다 기술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타사는 플랫폼이나, 솔루션 등 한쪽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고객의 요구가 기술과 기기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부품 자체 수급뿐만 아니라 양산을 통한 외부 판매로 새 수익원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뉴로메카 매출액은 73억원이었다. 올해는 150억원에 이어 내년에는 400억원대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뉴로메카가 추진하는 부품 양산 등 수직 계열화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서 실적이 큰 폭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에서다.
아울러 박 대표는 ‘육·해·공’을 넘나드는 영역으로 수평 확장할 야심을 드러냈다. 그가 ‘협동로봇계 테슬라’를 꿈꾸는 배경이다.
박 대표는 “테슬라가 스페이스X로 화성에 사람을 실어 나르고, 태양광을 활용해 화성에 기지를 건설하고, 태양광을 통해 테슬라를 구동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주항공 분야에서 로봇팔이 인공 위성을 수리하다가도 해저 작업에 투입되는 등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러한 중장기 목표에 앞서 ‘푸드테크’를 뉴로메카의 새 먹거리로 점찍었다. 먹거리에 진심인 박 대표는 올해 8월 외식업계 신화인 김현선 디딤(연안식당, 백제원 운영) 전 부대표를 임원으로 영입했다. 칼국수와 샤브샤브 가게를 열어 뉴로메카의 로봇을 투입하는 게 첫 계획이다.
박 대표는 “푸드테크의 핵심은 결국 로봇의 능력보다는 맛이 먼저더라”며 “대중적인 식당을 열어 소비자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연구하는 게 음식점을 내는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K-푸드’ 수출을 위해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맛을 연구한 뒤, 이를 잘 보존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는 것이 다음 스텝이라는 판단에서다. 뉴로메카는 교촌과 고피자, CJ푸드빌 빕스 등에 조리용 협동 로봇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개발을 끝낸 커피 조리 자동화 솔루션은 커피를 내려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시간이 45초 내로 이뤄진다.
뉴로메카의 푸드테크 실험은 포항에 들어서는 신사옥과 공장에서 펼쳐질 전망이다. 뉴로메카는 지난해 포항시와 투자협약을 맺고 포항 영일만3일반산업단지 1만7596㎡ 대지에 100억원을 들여 공장을 신설키로 했다. 포항에는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공대 등이 있어 산업의 직접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란 암초를 만났다. 당초 계획보다 증가된 사업비는 내년 상반기 예정된 대규모 투자 유치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코스닥에 입성한 뉴로메카는 상장 이후에도 끊임없이 외부 수혈을 받고 있다. 뉴로메카는 올 7월 상장 이후 첫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4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
업력 11년 차인 뉴로메카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서 인수합병(M&A)에 대한 계획도 빠지지 않았다.
박 대표는 “대기업은 식음료 및 배터리 원소재 계열사 등 캡티브(내부거래) 매출이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뉴로메카가 실력을 더 키워서 우리의 HW(하드웨어)와 SW(소프트웨어)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곳과 협업(인수합병)할 여지가 있겠나”라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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