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소재·부품·장비)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자원 빈국인 한국은 사용 후 배터리를 통한 ‘순환경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때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한법제화와 더불어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이 나왔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24일 제주 메종글래드에서 열린 ‘2023 K-배터리 R&D 포럼’에 참석해 “2018년 미중 무역 분쟁부터 2019년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중심 무역 분쟁,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어지며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배터리는 유난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미국과 유럽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인프라투자법 등 500조원이 넘는 돈을 쓰며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제조 기업을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을 유도하고 있다”며 “하지만 모든 것을 리쇼어링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외교·군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프렌드쇼어링의 핵심 지역이 인도태평양이라고 짚었다. 이미 LG, 포스코그룹, 에코프로그룹 등 국내 양극재 기업들도 이 지역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인도태평양 공급망 구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중에서도 호주는 배터리 3대 핵심광물에 대한 보유량이 높은 국가로 꼽혀, 우리나라 기업들이 호주에 대한 개발과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강석기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연구지원실장은 배터리에 쓰이는 핵심 광물의 공급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순환경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사용후 배터리에 대한 관리체계가 전기차 선진국에 비해 미비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기존 배터리 규제 법안을 2027년 폐지하기로 하고, 지난해 배터리 수거와 재활용을 위한 책임 있는 배터리 재활용법을 수립했다. 유럽에서는 현재 사용후 배터리에 대한 역외 수출을 금지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제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용후 배터리를 자원화하려는 글로벌 움직임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중고 전기차를 비롯한 배터리 반출을 최소화할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등록 말소된 전기차는 총 5800여 대로 이 중 87%에 해당하는 5100여 대가 수출됐다. 올해상반기에도 등록 말소된 차량 3200여 대 중 87%에 해당하는 2800여 대가 수출돼 이런 추세가 이어졌다. 2021년에도 총 등록말소 차량 3800여 대 중 90%인 약 3500대가 수출됐다.
강 실장은 “우리나라는 보조금을 지급해 배터리를 회수하는 체계가 마련됐지만 현재는 일몰된 상태”라며 “사용후 배터리를 어떻게 회수할지, 회수한 배터리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지 등에 대해 여러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단편적이다. 제조부터 재사용까지 일괄적인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주제 토론에서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중국의 흑연(음극재의 주요 원료) 수출 금지 조치와 관련해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 폐배터리나 공정스크랩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며 “기존에는 흑연을 새로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지만 대외 리스크와 관련해 음극재 재활용에 대한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마성복 SK에코플랜트 부사장은 “기업 입장에서 배터리 재활용은 광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모든 것들이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다”며 “배터리 공급망 중에서 밑단에 있는 재활용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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