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영화 제작사, 현지 배우 안쓰면 세액공제율 40%→30%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가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을 때 이탈리아 배우를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정부는 이탈리아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을 쓰지 않을 경우 영화 제작비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40%에서 30%로 낮추기로 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화법 수정안 초안을 발의한 루차 보르곤초니 문화부 차관은 “전 세계가 이탈리아의 재능을 인정할 때가 됐다”며 “우리에게는 훌륭한 배우들이 있으며, 그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21년 영화 제작비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40%로 대폭 늘렸다.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으며 100만유로의 세금을 낼 경우 최대 40만유로를 세액에서 공제해준다는 얘기다.

촬영장소로 선정됐을 때 파생되는 콘텐츠 산업 육성, 신규 고용 효과, 소비 확대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세금 인센티브보다 훨씬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더해 정부는 3억유로(약 4천286억원)를 투입해 영화 세트장인 로마의 시네시타 스튜디오를 현대화하고 규모를 확장했다.

그 결과 한때 파산 위기를 겪었던 시네시타 스튜디오는 촬영 예약이 꽉 차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다.

‘007’ 시리즈로 유명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퀴어’가 현재 이곳에서 촬영되고 있고, 지난해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으로 변신해 영화 ‘위드아웃 블러드’를 연출한 곳도 바로 여기다.

시네시타 스튜디오는 이탈리아 영화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를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 정부가 세제 혜택을 지렛대삼아 할리우드에 자국 배우 출연을 유도하는 것에 대해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조르자 멜로니 정부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르곤초니 차관은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세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월 30일 개막한 제80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문화 도용’ 문제를 제기한 자국 남자배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의 의견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당시 파비노는 할리우드 제작사가 이탈리아 스포츠카 기업 페라리의 창업주 엔초 페라리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 ‘페라리’의 주연 배우로 이탈리아 배우가 아닌 미국 배우인 애덤 드라이버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파비노는 “왜 이탈리아 배우가 이런 영화(페라리)에 출연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대신 제작사는 이국적인 억양부터 시작해서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외국 배우에게 배역을 맡겼다”고 지적했다.

더 타임스는 이탈리아 배우를 쓰지 않는 영화에 불이익을 주는 보르곤초니 차관의 영화법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쟁국으로 옮기면서 이탈리아에서 제작되는 영화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hangyong@yna.co.kr

신창용(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