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F50 GT 이다
F50 GT는 테스트용으로 단 세대만 만들어졌음
이 차는 세 대 모두 팔렸는데
가격이 공개된 건 섀시번호 002 뿐임
2000년 당시 145만 달러에 팔렸고
만약 지금 다시 경매에 나온다면 최상의 상태라 가정했을 때
1300만 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추산됨
1980년대 말,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작품으로 F40이 만들어지고 F40은 곧바로 레이스 무대에 데뷔했음 1989년 F40은 IMSA GTO 클래스에 데뷔하게 됨
하지만 미국 무대에서의 레이스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승 없이 포디움 몇 번을 끝으로 페라리는 GTO 클래스에서 빠지게 된다
94년 WSC를 대체하는 BPR global gt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F40은 다시 레이스에서 달리게 되었음
근데 1995년 멕라렌이 F1의 GTR 모델을 생산하면서 GT 레이싱에 정식으로 참가하게 됨
1995년 르망에 페라리와 멕라렌 모두 GT 클래스에 참가하게 됨 모두 커스터머팀들이 참가하는 거였음 이 해 르망은 LMP 클래스가 존재했지만 엔트리가 몇 대 안될 정도로 적었고 대다수의 팀이 GT1 클래스에 참가했음
그리고 이 경기는 역사적인 경기가 되었음
LMP 클래스는 매우 가벼운 무게와 빠른 코너 스피드 그리고 500마력대의 출력을 냈고 GT1 클래스는 1톤 초반의 무게에 상대적으로 매우 강력한 7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었음
그래서 GT1들은 뮬산 스트레이트에서 (르망 역사상 최초로 시케인이 설치됨) 프로토타입들을 앞지르고 코너에서 뒤쳐지는 옥신각신을 벌였음
그러나 이 해 르망은 경기 초반부터 매우 강한 비가 내렸고 무려 17시간동안 특히 밤과 새벽에 집중적으로 내려서 프로토타입들에게 매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갔음
프로토타입은 다 오픈콕핏이었고 너무 가벼운 탓에 툭하면 휠스핀을 일으키고 쳐박기 일쑤엿음.
이런 상황에서 몇 대의 멕라렌이 이미 해가 지기 전에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고 결국 우승을 해버림
하지만 페라리는 최고 순위 12위로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림
1996년이 되면서 오래된 F40을 대체하고 당시 F1 기술이 대거 투입된 로드고잉 F1카라고 불리던 F50을 GT 레이싱에 투입하지 않는 것은 페라리 입장에서도 이상한 일이었을 거임
그래서 페라리는 F50 GT, 엄밀히 말하면 테스트카를 빠르게 제작함
F4의 V8 트윈터보 엔진도 매우 강력했지만 F1 엔진을 프로덕션용으로 디튠하고 수명을 대폭 늘린 V12 F130 엔진을 다시 레이스용으로 튠업 해서 10,500 rpm에 750 마력을 낼 수 있게 했고 경량화 작업으로 850kg이라는 사기적인 무게를 가지게 되었음 나머지는 프로덕션 사양 그대로
충격적이게도 테스트에서 이 차는 94년에 자신들이 만든 프로토타입 333SP보다 빠르다는 게 확인됨…
엄청난 포텐셜을 확인한 페라리는 당연히 르망에서 이 차로 우승을?
은 개뿔. F50 GT는 데뷔조차 하지 않았음.
알려진 이유는 그 당시 슈마허가 이적하면서 F1팀 스쿠데리아의 리빌딩에 전력을 쏟기 위해서.
F50 GT의 제작 단가가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페라리는 그만한 자본이 F1에서 분리되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함
그리고 96년에도 GT1 클래스가 르망에서 이길 거란 보장이 없었음
95년 르망은 누가봐도 이레귤러한 결과였기 때문에 메뉴팩쳐들의 프로토타입 제작을 장려해야 하는 FIA와 ACO가 GT1 클래스에 어떤 방법으로든 너프를 먹일게 당연했기 때문.
그래서 96년 르망에서 페라리는 F40 LM의 엔진을 더 고출력으로 튜닝한 F40 콤페티치오네를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333sp로 르망에 나가는 팀들도 지원을 하기로 함
그러나 두 대의 333 모두 리타이어 우승은 포르쉐의 프로토타입이 멕라렌 F1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우승하면서 르망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됨
F50 GT는 모터스포츠에서도 손에 꼽히는 what if ? 중 하나임
피오라노 서킷 기준 F50 GT는 FXX–K보다도 3초가 빠르다고 함…
만약에 96년이나 97년 이 차가 BPR GT에 참가했다면 어땠을까 르망에 나갔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만들 수밖에 없음
하지만 페라리가 정말 이 차로 GT와 르망에서 이기겠다고 애를 썼으면 우리는 97년에 자크 빌르너브와 경쟁하는 슈마허를 98년 99년에 하키넨과의 역사적인 라이벌 경쟁을 보지 못했을 수도
이후 GT1이라 불리는 차들은 더더욱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면서 GT라는 이름이 점점 모호해지는 형태로 발전하게 됨 97년부터는 다들 롱휠베이스에 긴 리어 오버행을 가지고 차체는 점점 낮아지면서 사실상 루프 달린 프로토타입으로 변해버렸음
멕라렌 F1도 이런 흐름에 휠베이스를 늘리고 공력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롱테일 버젼을 만들었지만 후발주자인 신형 포르쉐와 메르세데스에게 상대가 되질 못했음…
개인적으론 아쉽긴 하지만 페라리의 결정은 옳았다고 봄 95년 96년 당시 스쿠데리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개발비를 더 이상 투입하기 쉽지 않았을 거임
이후 BPR이 FIA GT로 바뀌고 르망에서 두 대의 메르세데스가 이륙하고 911이 르망에서 종합우승을 하면서 프로토타입이라 말해야 정확한 GT1 레이스카들은 개발비 압박을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21세기에 들어 GT1 클래스는 커스터머 친화적이고 호몰로게이션 모델과 거리가 가까운 사양으로 바뀌게 되었음
이 시기에 페라리는 550 마라넬로는 GT1으로 만들었고 르망에서 클래스 우승을 할 수 있었음…
토토 울프가 프로 드라이버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가?
그의 레이싱 경력은 무려 20년 가까이 된다!
1992년 포뮬러 포드로 레이싱 드라이버가 된 토토는 분명 F1 드라이버가 목표였을 거다
그의 재능이 충분했다면 아마 자크 빌르너브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 재능은 없었던 토토는 빠르게 GT 클래스로 커리어를 바꿨고 꽤나 성공적이었음
550의 후속작 575 GT1을 타고 FIA GT에서 달렸다
이 때는 무려 레드불의 스폰서를 받고 있었음 ㅋㅋㅋㅋ
이후 10년 후 그는 스폰서를 받던 회사가 만든 F1팀을 자신의 F1 팀으로 이기게 된다…
F50으로 시작해서 토토 울프로 끝나는 의식의 흐름 뻘글…
F1 갤러리
정답은 F50 GT 이다
F50 GT는 테스트용으로 단 세대만 만들어졌음
이 차는 세 대 모두 팔렸는데
가격이 공개된 건 섀시번호 002 뿐임
2000년 당시 145만 달러에 팔렸고
만약 지금 다시 경매에 나온다면 최상의 상태라 가정했을 때
1300만 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추산됨
1980년대 말,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작품으로 F40이 만들어지고 F40은 곧바로 레이스 무대에 데뷔했음 1989년 F40은 IMSA GTO 클래스에 데뷔하게 됨
하지만 미국 무대에서의 레이스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승 없이 포디움 몇 번을 끝으로 페라리는 GTO 클래스에서 빠지게 된다
94년 WSC를 대체하는 BPR global gt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F40은 다시 레이스에서 달리게 되었음
근데 1995년 멕라렌이 F1의 GTR 모델을 생산하면서 GT 레이싱에 정식으로 참가하게 됨
1995년 르망에 페라리와 멕라렌 모두 GT 클래스에 참가하게 됨 모두 커스터머팀들이 참가하는 거였음 이 해 르망은 LMP 클래스가 존재했지만 엔트리가 몇 대 안될 정도로 적었고 대다수의 팀이 GT1 클래스에 참가했음
그리고 이 경기는 역사적인 경기가 되었음
LMP 클래스는 매우 가벼운 무게와 빠른 코너 스피드 그리고 500마력대의 출력을 냈고 GT1 클래스는 1톤 초반의 무게에 상대적으로 매우 강력한 7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었음
그래서 GT1들은 뮬산 스트레이트에서 (르망 역사상 최초로 시케인이 설치됨) 프로토타입들을 앞지르고 코너에서 뒤쳐지는 옥신각신을 벌였음
그러나 이 해 르망은 경기 초반부터 매우 강한 비가 내렸고 무려 17시간동안 특히 밤과 새벽에 집중적으로 내려서 프로토타입들에게 매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갔음
프로토타입은 다 오픈콕핏이었고 너무 가벼운 탓에 툭하면 휠스핀을 일으키고 쳐박기 일쑤엿음.
이런 상황에서 몇 대의 멕라렌이 이미 해가 지기 전에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고 결국 우승을 해버림
하지만 페라리는 최고 순위 12위로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림
1996년이 되면서 오래된 F40을 대체하고 당시 F1 기술이 대거 투입된 로드고잉 F1카라고 불리던 F50을 GT 레이싱에 투입하지 않는 것은 페라리 입장에서도 이상한 일이었을 거임
그래서 페라리는 F50 GT, 엄밀히 말하면 테스트카를 빠르게 제작함
F4의 V8 트윈터보 엔진도 매우 강력했지만 F1 엔진을 프로덕션용으로 디튠하고 수명을 대폭 늘린 V12 F130 엔진을 다시 레이스용으로 튠업 해서 10,500 rpm에 750 마력을 낼 수 있게 했고 경량화 작업으로 850kg이라는 사기적인 무게를 가지게 되었음 나머지는 프로덕션 사양 그대로
충격적이게도 테스트에서 이 차는 94년에 자신들이 만든 프로토타입 333SP보다 빠르다는 게 확인됨…
엄청난 포텐셜을 확인한 페라리는 당연히 르망에서 이 차로 우승을?
은 개뿔. F50 GT는 데뷔조차 하지 않았음.
알려진 이유는 그 당시 슈마허가 이적하면서 F1팀 스쿠데리아의 리빌딩에 전력을 쏟기 위해서.
F50 GT의 제작 단가가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페라리는 그만한 자본이 F1에서 분리되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함
그리고 96년에도 GT1 클래스가 르망에서 이길 거란 보장이 없었음
95년 르망은 누가봐도 이레귤러한 결과였기 때문에 메뉴팩쳐들의 프로토타입 제작을 장려해야 하는 FIA와 ACO가 GT1 클래스에 어떤 방법으로든 너프를 먹일게 당연했기 때문.
그래서 96년 르망에서 페라리는 F40 LM의 엔진을 더 고출력으로 튜닝한 F40 콤페티치오네를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333sp로 르망에 나가는 팀들도 지원을 하기로 함
그러나 두 대의 333 모두 리타이어 우승은 포르쉐의 프로토타입이 멕라렌 F1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우승하면서 르망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됨
F50 GT는 모터스포츠에서도 손에 꼽히는 what if ? 중 하나임
피오라노 서킷 기준 F50 GT는 FXX–K보다도 3초가 빠르다고 함…
만약에 96년이나 97년 이 차가 BPR GT에 참가했다면 어땠을까 르망에 나갔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만들 수밖에 없음
하지만 페라리가 정말 이 차로 GT와 르망에서 이기겠다고 애를 썼으면 우리는 97년에 자크 빌르너브와 경쟁하는 슈마허를 98년 99년에 하키넨과의 역사적인 라이벌 경쟁을 보지 못했을 수도
이후 GT1이라 불리는 차들은 더더욱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면서 GT라는 이름이 점점 모호해지는 형태로 발전하게 됨 97년부터는 다들 롱휠베이스에 긴 리어 오버행을 가지고 차체는 점점 낮아지면서 사실상 루프 달린 프로토타입으로 변해버렸음
멕라렌 F1도 이런 흐름에 휠베이스를 늘리고 공력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롱테일 버젼을 만들었지만 후발주자인 신형 포르쉐와 메르세데스에게 상대가 되질 못했음…
개인적으론 아쉽긴 하지만 페라리의 결정은 옳았다고 봄 95년 96년 당시 스쿠데리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개발비를 더 이상 투입하기 쉽지 않았을 거임
이후 BPR이 FIA GT로 바뀌고 르망에서 두 대의 메르세데스가 이륙하고 911이 르망에서 종합우승을 하면서 프로토타입이라 말해야 정확한 GT1 레이스카들은 개발비 압박을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21세기에 들어 GT1 클래스는 커스터머 친화적이고 호몰로게이션 모델과 거리가 가까운 사양으로 바뀌게 되었음
이 시기에 페라리는 550 마라넬로는 GT1으로 만들었고 르망에서 클래스 우승을 할 수 있었음…
토토 울프가 프로 드라이버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가?
그의 레이싱 경력은 무려 20년 가까이 된다!
1992년 포뮬러 포드로 레이싱 드라이버가 된 토토는 분명 F1 드라이버가 목표였을 거다
그의 재능이 충분했다면 아마 자크 빌르너브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 재능은 없었던 토토는 빠르게 GT 클래스로 커리어를 바꿨고 꽤나 성공적이었음
550의 후속작 575 GT1을 타고 FIA GT에서 달렸다
이 때는 무려 레드불의 스폰서를 받고 있었음 ㅋㅋㅋㅋ
이후 10년 후 그는 스폰서를 받던 회사가 만든 F1팀을 자신의 F1 팀으로 이기게 된다…
F50으로 시작해서 토토 울프로 끝나는 의식의 흐름 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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