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중씨가 누리꾼들이 작성, 편집하는 온라인 정보 사이트 나무위키에 기재된 이른바 흑역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김씨는 해당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민원을 신청했지만 방통위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방통위는 지난 18일 통신심의 소위원회 회의를 열어 김씨가 신청한 민원의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는데요. 그 결과 ‘해당 없음’로 의결했습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인 거죠.
방통위는 이날 심의 결과를 전하면서 “신고인이 다소 불쾌해할 수 있으나 비방의 목적이라기보다 정보 공유 목적으로 판단되는 점, 신고인이 유명인이며 배우라는 직업적 특성을 가진 점 등을 고려해 명예훼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5년 4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나무위키는 유명인 등에 관한 정보를 누구나 자유롭게 작성 및 수정, 이용할 수 있는 사이트인데요. 김씨가 민원을 제기한 내용은 나무위키에 올라온 본인에 관한 내용 중 ‘흑역사’로 분류된 것으로 과거 후배 배우와의 갈등, 파혼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사생활 vs 공익…법원의 판단은?
서울중앙지법 판결(2014가단123116)에 따르면 공인이란 ‘재능, 명성, 생활양식이나 일반인이 그 행위∙인격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직업 때문에 공적 인사가 된 사람’을 말합니다. 공인에는 공직자,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 등 자의로 명사가 된 사람뿐만 아니라 범인과 그 가족 및 피의자 등 타의로 유명인이 된 사람도 포함됩니다. 또한 일정한 공적 논쟁에 스스로 참여하거나 개입한 사람도 공적 인물로 인정될 수 있는데요. 이는 비판적 보도와 논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고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또 표현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할 때는 △해당 표현 탓에 명예를 훼손당하게 되는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것인지 순전히 사적인 영역에 관한 것인지 등에 따라 차이를 둬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표현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는 겁니다(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다62494 판결).
이에 대법원은 공인 또는 공익 관련 보도에서는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보도가 아니라면 쉽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국회의원은 공인이며 언론사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불만을 토하는 장면을 보도했더라도 사생활의 침해나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있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6. 10. 13. 선고 2006가합7137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7. 9. 19. 선고 2006나106066 판결).
국회의원인 원고는 임시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이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정된 것과 관련해 불만을 토했습니다. 이 장면을 당시 본회의장 2층 방청석에 있던 YTN의 촬영기자가 촬영한 건데요. YTN은 ‘돌발영상 불만 엿듣기’라는 제목으로 해당 장면을 방송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YTN이 사실을 왜곡해 묘사하거나 장면을 의도적으로 편집∙보도하는 방식으로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하는데요. YTN이 공식 발언이나 의정활동이 아닌 동료의원들과 나눈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송출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 법원은 “국회의원인 원고는 공인이고 보도 내용 또한 직무와 관련된 공적인 내용”이라며 “보도의 표현방법 등이 모멸적인 인신공격의 정도에 해당하지 않고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영상에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YTN의 ‘돌발영상’ 프로그램은 당시 공중의 관심사였던 국회의원의 법제사법위원회 등 비인기 상임위원회 기피 등에 관한 의원의 불만을 보도하려는 취지였으므로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대로 공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언론사 측이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있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0. 2. 2 선고 99가합64112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1. 5. 31. 선고 2000나11081 판결).
연예∙스포츠 이슈를 다루는 일간지 소속 연예부 기자 A씨는 온라인상에서 떠돌던 앵커 출신 B씨와 관련된 루머를 기사로 게재했습니다. 근래 유명 여성 앵커가 이혼했는데 그 여성이 낳은 아이가 전 남편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진짜 아이 아버지는 모 방송사 고위 간부라는 내용의 근거없는 소문이었는데요. A씨는 이 소문을 B씨와 연관지어 기사화했습니다.
일간지 측은 소송에서 “원고와 같이 널리 알려진 공인에 대한 소문은 개인의 사생활 관련 내용이더라도 진위를 떠나 공공의 관심 대상”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공인의 부정행위나 도덕성, 윤리성에 관한 것이므로 일반인들이 그 사람의 사회활동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의 자료로 삼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공공의 이익에도 합치한다는 주장인데요.
1심 법원은 “원고는 오랜 방송활동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며 “원고의 경력이나 방송활동 사안은 일반에 공개된 영역으로, 이에 대한 보도에는 원고의 동의나 승낙이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인인 원고라도 사생활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개인의 이혼 사유와 그 배경에 관한 정보는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고 언론사에서 이러한 사항을 보도할 때는 사전에 당사자의 명시적 동의 혹은 묵시적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법원은 “피고는 명백한 반대 의사를 무시하고 원고의 비밀 영역 또는 사사(私事)의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함부로 보도해 원고의 사생활에 관한 권리(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고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도 A씨는 “공인의 이혼 사유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는데요. 항소심 법원은 “공인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이 있는 바 남녀 간의 성적 교섭에 관한 것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가 아니라 선정적 호기심에 불과하다”며 위자료 1억원 지급 판결을 확정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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