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발생한 전쟁이 벌써 24일째 계속돼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더구나 이번 전쟁이 중동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세계정치경제가 불안해지고 있다. 전쟁의 원인, 현황, 각국의 대응, 향후 전망, 우리의 대응방안 등을 분석해 보자.
1. 전쟁의 역사적 배경
이번 전쟁의 역사적 뿌리는 적어도 1차 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제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의 도움을 얻고자, 양자 모두에게 이 지역에 독립 국가를 설립해 주기로 약속함으로써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그 결과 2차 대전 직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따라 1948년, 이스라엘이 이 땅의 일부에 건국을 선포하자마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아랍연맹 국가들(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이 선전포고를 하고 제1차 중동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으나 그 후 세 차례(1956년, 1967년, 1973년)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였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오랜 노력 끝에 1993년에 드디어 오슬로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2개의 국가로 공존하는 로드맵은 양측의 극단세력이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후 소규모 무력충돌은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대대적 전면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2. 하마스의 기습 테러: 원인과 목적
그런데 이번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과거와 달리 국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장악한 무력집단에 불과한 하마스가 대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하마스는 2007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군을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온건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결별하였다. 지난 16년 동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무력 통제로 인해 이곳 주민들은 ‘지붕 없는 감옥’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살상 규모는 엄청나고 잔혹하여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10월 7일 하루 만에 이스라엘인 1400여 명을 무차별 살상하고 200여 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하마스가 이런 잔혹한 전쟁을 벌인 이유는 대략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점점 잊혀가는 하마스의 지옥 같은 생활에 전 세계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다. 최근 미국의 중재로 추진되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는 경우, 팔레스타인은 고립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스라엘에 감금되어 있는 4000여 명의 팔레스타인과 이번에 인질로 잡은 사람들을 교환하려는 의도가 있다. 셋째, 하마스의 작전명 ‘알 아크사의 홍수“에서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둘러싼 분쟁이다. 이 사원은 이슬람교와 유대교 모두에게 중요한 성지인데, 이스라엘 극우 정권이 탄생한 후 사원 경내 참배가 금지된 이스라엘인들이 참배하고, 또 올해 4월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 참배객들을 구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반이스라엘, 반미의 선봉장인 이란이 하마스에게 무기를 지원한 결과 이번 전쟁이 발생하였다.
3. 이스라엘의 대응과 전쟁 현황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이스라엘의 정보망과 아이언 돔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하여 알카에다의 9.11 미국 뉴욕 테러나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버금가는 기습공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즉각 전쟁을 선포하고, 전시 내각을 출범시킨 후 하마스 섬멸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피란을 가도록 종용하면서 물, 식량, 연료 등 물자 반입을 끊고 공격의 폭과 강도를 늘려가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자가 이미 80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처음 예상과 달리 이스라엘은 전면적인 지상군 반격 대신에 하마스의 중심부를 향해 야금야금 뜯어먹는 모듈식 공격을 하고 있다. 이런 전략을 세운 배경에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구축한 530km의 땅굴에 숨어있는 적을 하루아침에 소탕하기 힘들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고 있으며,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더 커질 경우 중동 지역 내 다른 국가로 전쟁이 확산될 우려가 있는 데다 인질 안전을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나흘 전에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 2단계’ 진입을 선언하고 “하마스의 통치와 군사력을 파괴하고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목표라고 천명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적어도 3개월~1년 동안 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카타르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인질 협상을 중재하고 있다. 하마스 지도자는 억류중인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6000명의 석방을 요구한 바 있다.
4.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응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이 다양한데, 특히 전쟁 양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많은 나라들이 하마스의 참혹한 살상을 규탄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사태가 진전되면서 이스라엘의 강한 보복이 사태의 장기화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이스라엘에 자제를 요청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미국의 경우 즉각 하마스의 무차별 살상을 규탄하고 이스라엘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눈먼 분노로 행동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확전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발목이 잡혀있는 미국으로서는 중동에서 대규모 전쟁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 사태 해결을 위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가자지구에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였다. 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6년 동안 숨 막히는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땅이 유대인 정착촌 때문에 꾸준히 파괴되고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봤습니다”라는 발언에 이어 “팔레스타인의 슬픔이 하마스의 끔찍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추가 발언하였지만, 이스라엘은 유엔사무총장이 잔혹 행위를 정당화했다며 즉각 사퇴를 요구하였다.
5. 전쟁의 향후 전망
세계 각국은 전쟁이 중동의 다른 나라로 확전되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확전 여부는 이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흘 전에 네타야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진입했다”고 선언하자, 이란은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면서 본격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란은 반이스라엘, 반미의 선봉으로 하마스 외에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 정부군과 민병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 소위 ‘저항의 축’을 부추겨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 이스라엘 북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레바논 헤즈볼라는 전쟁 발발 후, 이미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 수위를 끌어올려 왔다.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이 포격을 당하기도 했다. 또 이란이 직접 정예 병력을 배치해 놓은 시리아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이라크 이슬람 저항군’은 시리아 북부의 미군 기지를 드론 공격했다.
이에 맞서 이스라엘과 미군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와 동부 지역 등을 선제공격하여 친이란 무장 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10월 17일 이후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최소 14차례, 시리아에서 6차례 드론 로켓 공격을 받았으며 갈수록 충돌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여러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6. 전쟁의 영향과 우리의 대응 방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정치경제적 여파에 주시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최근 들어 전쟁이 자주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보다 미국의 단극체제(uni-polarity)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연방 해체 이후 유일한 패권국가였던 미국이 최근 들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의 협조 대신 견제를 받고 있어 국제질서 수호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재작년 8월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나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 테러 등도 미국이 무력으로 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 아래 나온 도발이다. 미국의 패권이 회복되거나, 양극 또는 다극 체제가 재정립될 때까지 국제사회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런 국제정세를 감안해 볼 때, 우리나라는 미국의 국력 회복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재정립을 도와야 한다. 미국의 상대적인 하락으로 발생한 권력 공백을 중국, 이란, 러시아를 비롯한 반자유주의, 권위주의 세력이 메우는 경우, 우리의 국익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우리나라의 평화와 번영의 보루이자, 수직적 국제관계를 중시하는 중화질서의 부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중동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미국, 이스라엘은 물론 이슬람국가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전쟁이 확전으로 치닫는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유가 급등이 우려되고, 고금리 장기화와 맞물려 1970년대와 같은 경기침체가 재현될 수 있다. 이미 국제유가는 상승세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란이 하루에 석유 1700만 배럴이 운송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중동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요동치면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 속에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나 이슬람국가들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것이 아니라, ‘평화, 공존, 번영’이라는 외교 원칙에 따라 전략적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이스라엘, 이슬람국가, 무장단체들에게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면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을 위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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