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만에 4조5000억 늘어
고금리 속 돈줄 찾는 기업들
연말 돈맥경화 확산 우려 왜
국내 은행들이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을 담보로 받고 내준 대출이 한 해 동안에만 4조50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사상 처음으로 15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솟는 금리 속에서 돈줄을 찾는데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기 위해 이같은 대출에 손을 대는 모습이다.
이런 와중 조만간 은행채가 다시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등장하면서 이른바 돈맥경화에 빠지는 기업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유가증권담보대출 잔액은 총 15조16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5%(4조4718억원) 늘었다. 이는 역대 최대 금액이자 15조원을 돌파한 첫 기록이다.
유가증권담보대출은 통상 기업이 이용하는 대출 상품이다. 주식이나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담보로 대출이 이뤄진다. 2020년 말부터는 기업의 특허권과 지적재산권도 담보로 인정돼 대출이 가능하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에서 나간 유가증권담보대출이 5조972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6.7%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하나은행이 3조7645억원으로, Sh수협은행은 2조1851억원으로 각각 87.4%와 49.7%씩 늘며 해당 규모가 큰 편이었다. NH농협은행의 유가증권담보대출도 1조854억원으로 16.3% 증가하며 1조원을 넘어섰다.
이밖에 ▲신한은행(4364억원) ▲BNK부산은행(3603억원) ▲IBK기업은행(3369억원) ▲KDB산업은행(3143억원) ▲우리은행(2754억원) ▲DGB대구은행(2013억원) ▲SC제일은행(1123억원) 등의 유가증권담보대출 잔액이 1000억원대 이상이었다.
유가증권담보대출이 몸집을 불리는 배경에는 기업들의 유동성 해소 수요가 자리하고 있다. 유가증권 담보 대출은 기업이 금융사에서 어떻게든 더 많은 돈을 빌리려 할 때 주로 활용되는 상품이다. 유가증권담보는 기업이 부동산 등 정식 담보만으로 부족한 대출 한도를 조금이나마 늘리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상장사가 자사주를 담보로 대출을 더 받는 식이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고금리 기조는 이런 측면에서 가장 큰 부담 요인이다. 고금리로 인해 자금 조달 시장도 급격히 위축되자, 대출 한도를 늘리려는 기업들이 유가증권 담보를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겨우 대출을 받았더라도 불어나는 이자 부담은 기업에게 새로운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문제는 기업들의 자금난이 연말로 갈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올해 4분기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 조치를 폐지하기로 해서다. 자칫 은행권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예금 지급에 문제가 있다는 시그널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면 그 여파가 걷잡을 수 확산될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이 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지난해 말과 같은 유동성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 당장 채권시장에서는 우량채인 은행채에 돈이 쏠리면서 다른 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채권시장 불안이 심화하자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중단시킨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으로서는 은행채 발행을 계속 제한하면 자금 확보를 위한 과도한 수신 경쟁으로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라며 “다만 이런 규제 완화가 일반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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