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박물관과 함께 도요타 역사 담아…”개선·현지현물·고객우선 강조”
(나고야·도요타시=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세계 1위 자동차 판매업체이자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도요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은 일본에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는 도요타 산업기술 박물관이고, 나머지는 도요타 본사와 연구센터, 공장이 밀집한 도요타시에 위치한 쿠라카이게 기념관이다.
산업기술 박물관이 일본의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한 도요타 그룹의 탄생과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면 쿠라카이게 기념관은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의 자동차 창업기를 조명한다.
지난 27일 도요타의 시초를 볼 수 있는 쿠라카이게 기념관을 찾았다.
쿠라카이게 기념관은 1974년 9월 도요타의 자동차 생산 1천만대를 기념해 기이치로의 자택이 있었던 곳에 세워졌다.
당시 도요타는 창립 후 3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1천만대를 생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년에 1천만대를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했다고 안내를 맡은 미야코 요리야스 부관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기념관은 창업 전시실과 쿠라카이게 예술 살롱, 난잔농원으로 불린 기이치로의 저택으로 구성된다.
요리야스 부관장은 기념관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이치로가 강조한 3가지를 언급했다.
그는 “매일의 개선과 현지 현물(직접 현장에 가 물건을 만져보라는 뜻), 고객 우선이 기이치로가 강조한 세 가지”라며 “기이치로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 회장도 ‘상대방의 시선으로 일해야 한다’며 같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명왕으로 불렸던 도요다 사기치의 아들로 태어난 기이치로는 일본 최초의 동력직기(실로 천을 짜는 기계)를 개발한 아버지와 함께 ‘마법의 직기’로 불리는 G형 자동직기를 만들었다. 도요타는 이 직기로 올린 수익을 기반으로 자동차를 개발한다.
이런 역사를 보여주듯 기념관 맨 앞에는 G형 자동직기가 전시됐다.
이어 주 전시관인 차량전시실로 이동하자 거대한 기이치로 사진이 관람객을 맞았다.
사진 밑에는 “우리는 단순히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다. 일본의 두뇌와 기술로 우리는 반드시 자동차산업을 구축해야 한다”는 기이치로의 말이 적혀있었다.
차량전시실 둘레는 약 200m 정도로, 벽을 따라 연대순으로 디오라마(여러 모형을 배경과 함께 설치해 특정 장면을 보여주는 것)와 복원 자동차 등 240개 작품이 자리했다.
요리야스 부관장에 따르면 기이치로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미국 포드가 활약한 모습을 보고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또 유학 중인 뉴욕에서 차가 다니는 것을 보고 ‘차가 있는 나라가 이렇게 풍요롭게 살 수 있구나’라고 느끼면서 자동차 개발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기이치로는 사기치의 사후인 1933년 방직 회사 내 자동차부를 설치하고, 1937년 자동차 사업부를 분리·독립시킨다. 바로 도요타의 모태다.
전시물 중에는 초기 자동차부 원년 멤버 17명의 사진이 있었는데, 여성이 5명이나 포함됐다.
요리야스 부관장은 이와 관련, “이들은 뛰어난 직기 실력을 바탕으로 설계도를 그리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며 “자동차 제작에 있어 여성의 섬세함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디오라마는 승용차에 앞서 만든 트럭이 계속 고장 나자 화를 내는 고객을 달래기 위해 기이치로가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요리야스 부관장은 “고장이 잘 날 것을 알면서 도요타 상용 트럭을 구매한 고객이 화를 내자 사장인 기이치로가 차에서 바로 내려 사과하고, 짐을 바로 다른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며 “도요타의 고객 우선주의가 여기서도 엿보인다”고 힘줘 말했다.
이후 기이치로는 첫 승용 모델 AA형을 출시했는데, 전시장에서는 복원 모델을 볼 수 있었다.
크라이슬러의 디자인을 참고한 차량은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고도 편하게 탈 수 있도록 발판이 부착됐다.
과거 유산을 조명하기 위해 포니 쿠페 콘셉트를 복원하고 ‘포니의 시간’ 전시를 연 현대차와 같은 맥락이었다.
이 밖에도 전시장에는 일본 최초의 일반 자동차 제조 공장이었던 코로모 공장(현 도요타 본사 공장)을 400분의 1로 재현한 모형이 있었다.
당시 도요타는 직원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공장 인근에 백화점과 기숙사, 세탁소, 병원, 학교 등을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창고를 만들지 않았는데, “기이치로가 강조한 ‘저스트 인 타임’, 즉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 낭비를 없앤다는 개념에서 비롯됐다”고 요리야스 부관장은 강조했다.
비록 기이치로는 1952년 고혈압으로 사망해 도요타의 성장을 목도하진 못했지만, 그가 강조한 3가지 정신은 지금까지 도요타의 기본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는 기이치로 사망 후 1955년 출시된 도요타의 대표모델 민트색 크라운도 관람객과 만날 수 있었다.
한편, 전날인 25일 오후 방문한 산업기술박물관은 섬유기계관과 자동차관으로 구성됐다. 도요타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조 기술 역사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1994년 개관한 박물관은 다음 달이면 방문자 70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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