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부가 과거 항일전쟁 때 중국을 도운 미국의 민간 의용항공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등 최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간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은 30일 베이징에서 방중한 ‘비호대(飛虎隊·Flying Tigers)’ 대표단을 만났다. 비호대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창설돼 일본군에 맞서 활약한 미국 의용항공대다.
한 부주석은 “중국 인민은 비호대 영웅들의 발자취를 항상 기억하며, 오랜 친구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80여 년 전 중국과 미국은 파시즘에 맞서 함께 싸웠으며, 비호대의 미담에는 양국 인민의 목숨과 피로 맺은 깊은 우정이 담겨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전 세계가 맞닥뜨린 각종 중대한 도전도 중·미가 함께 협력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부주석이 비호대를 접견한 소식은 이날 국영중앙(CC)TV 저녁 7시 메인뉴스 프로그램 ‘신원롄보(新聞聯播)’에도 소개됐다. CCTV는 비호대의 방중을 “대대로 우정을 이어가기 위한 여행”이라고 묘사했다.
이 소식은 다음날인 31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에도 실렸다. 인민일보는 이날부터 ‘비호대 정신 계승(傳承飛虎隊精神)’이란 고정 칼럼을 게재해 “중·미 협력의 소중한 정신적 재산을 계승하고 북돋아 양국 우호사업의 새로운 장을 계속해서 열어갈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날 인민일보는 사설 격인 ‘종성(鐘聲)’ 칼럼도 게재해 “중·미 양국간 최근 중요한 고위급 교류가 이뤄지고 민간 우호도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며 양국 관계에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 양국 각계와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비호대 정신’ 등은 양국간 인민의 깊은 우호와 협력 잠재력이 거대함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며 “중·미 관계가 안정되고 개선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만큼 중국 지도부가 미·중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달 비호대 참전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중 관계의 미래가 차세대 청년에게 달렸다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시 주석은 앞서 25일엔 중국을 방문한 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만나 “중국의 대미 정책은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호혜로 일관돼왔고, 계속해서 이 방향을 향해 노력할 것”이라며 “미국 역시 중국과 함께 가기를 희망한다”고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
미국의소리(VOA)는 이를 놓고 내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간 교류가 비록 작지만 점차 확대되는 흐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양국간 문화 인문교류도 회복되는 모습이다. 미국 주요 발레단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는 내달 초 상하이 공연이 예고돼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도 1973년 중국 첫 공연 50주년을 맞이해 내달 중국서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다.
양국이 갈등을 빚던 군사 분야에서도 ‘해빙 무드’가 예상되고 있다. 최근 러시아 무기 불법구매를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이었던 리상푸 중국 국방장관이 해임되면서다.
전날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라 불리는 중국 주도의 아태 지역 안보 포럼인 ‘샹산포럼’에서 장유샤 중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상호존중, 평화공존, 상생협력의 원칙에 따라 미국과 군사적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며 군사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시진핑 주석 다음 서열 2위인 장 부주석이 공식 석상에서 이러한 의지를 밝히며 향후 미중간 군사 교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내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APEC 회의를 계기로 미·중 양국이 정상회담을 조율하는 가운데, 중국 측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참석을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다.
최근 정상회담 조율차 미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도 실제 성사까지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를 놓고 현재 미·중 간에 신뢰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시 주석이 당황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중국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시 주석의 방미 기간 또는 전후로 중국을 겨냥한 추가 제재 등을 발표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받아내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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