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텍사스 레인저스는 시리즈 3차전을 승리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중심타자 아돌리스 가르시아와 선발 맥스 슈어저가 부상으로 교체됐기 때문이다. 가르시아는 왼쪽 복사근, 슈어저는 허리를 다쳤다.
텍사스는 4차전에 앞서 두 선수를 로스터에서 제외했다. 가르시아 대신 에세키엘 듀란, 슈어저 대신 좌완 브록 버크가 합류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이자, 1차전 끝내기 홈런을 친 가르시아의 이탈은 매우 치명적으로 보였다.
두 선수의 공백은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체감될 것이다. 그러면 텍사스는 4차전을 가져오면서 최대한 시리즈를 빨리 끝내야 했다. 또한 가르시아가 없어도 타선이 건재하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브루스 보치 감독은 트래비스 잔코스키를 우익수로 기용하면서, 타순은 미치 가버를 3번, 조시 영을 5번으로 상향 조정했다.
야구는 평균으로 회귀하는 특징이 있다. 단기간에 스퍼트를 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검증이 끝난 선수라면 결국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감독들의 ‘믿음의 야구’도 이러한 부분에서 기인하는데, 단기전에서는 타이밍이 늦으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 된다.
텍사스는 가르시아가 빠졌지만,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마커스 시미언이었다.
시미언은 코리 시거와 함께 5억 달러 듀오로 불렸다. 지난해 나란히 텍사스에 입단하면서 시미언이 7년 1억7500만 달러, 시거가 10년 3억2500만 달러 계약을 받았다. 1번과 2번으로 나오는 두 선수는 LA 다저스 무키 베츠와 프레디 프리먼 다음으로 비싼 테이블 세터였다(베츠 & 프리먼 총 계약 규모 5억2700만 달러).
하지만 시미언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좀처럼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첫 10경기에서 44타수 7안타로 타율이 0.159였다. 출루율은 0.213, 장타율은 0.205로 OPS가 0.417밖에 되지 않았다. 펄펄 날아다니는 시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적이었다.
현지에서는 시미언이 체력적으로 고갈됐다고 지적했다. 3년 연속 정규시즌 최다 출장을 해온 선수였기 때문에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치 감독은 시미언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정규시즌 중 “2루수와 리드오프는 고민이 필요 없는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심지어 시미언의 타순을 내리는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시미언도 보치 감독의 지지 속에 포스트시즌 전 경기 출장을 이어갔다.
시미언은 정규시즌 OPS 0.826를 기록한 타자다. 162경기 29홈런 100타점, 최근 3년간 평균 33홈런을 때려냈다. 포스트시즌 내내 바닥을 칠 타자는 아니었다.
시미언은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에서 2안타 2볼넷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그리고 가르시아가 없는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이번 포스트시즌 첫 홈런을 신고했다. 홈런에 앞서 2타점 3루타도 때려낸 시미언은 2안타 5타점으로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월드시리즈에서 2안타 5타점 경기를 선보인 2루수는 시미언이 역대 세 번째다.
1960 3차전 : 바비 리차드슨 (2안타 6타점)
1978 1차전 : 데이비 롭스 (2안타 5타점)
2023 4차전 : 마커스 시미언 (2안타 5타점)
시미언은 반등하고 있다. 4차전 포함 최근 포스트시즌 6경기 27타수 8안타(0.296)다. 텍사스는 시거도 홈런을 추가하면서 5억 달러 테이블 세터가 모처럼 동반 활약을 했다.
3차전이 열리기 전 ‘MLB 네트워크’ 진행자 크리스 루소는 “그래도 돈의 힘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며 텍사스의 우위를 예측했다. 텍사스는 타선의 5억 달러 듀오뿐만 아니라 선발 앤드류 히니도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지난 겨울 투자한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텍사스는 5차전에서 또 한 번 투자가 결실을 맺길 바라고 있다. 지난 겨울 2년 3400만 달러 계약으로 영입한 네이선 이볼디가 선발 등판한다.
1차전에서 4⅔이닝 5실점으로 무너진 이볼디는 출발에 비해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까지 4경기는 4승 평균자책점 2.42로 완벽에 가까웠다. 마운드 운영은 꼼꼼하게 가져가는 보치 감독은, 혹시나 이볼디가 흔들리면 빨리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투수들을 총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급적 시리즈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텍사스는 4차전 승리로 포스트시즌 원정 10연승을 달성했다. 단일 포스트시즌이라는 조건을 배제해도 최고 기록이다. 뉴욕 양키스가 1937-42년, 1996-97년에 걸쳐 각각 포스트시즌 원정 9연승을 달린 적이 있다. 만약 원정 무패 행진이 중단되면 6,7차전이 홈에서 열린다고 해도 우승은 장담하기 힘들다. 전력 누수가 발생한 이상, 속전속결로 시리즈에 임해야 한다.
텍사스는 85%의 확률을 잡았다. 7전 4선승제 시리즈에서 3승1패로 리드한 팀은 92번 중 78번을 승리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2016년 시카고 컵스가 1승3패 열세를 딛고 우승한 마지막 팀이다.
텍사스는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방심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 보치 감독이다. 창단 첫 우승에 단 1승만이 남은 텍사스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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